- 선조에 보고한 장계 모음집
- 임란 전황·감정 생생히 묘사
1592년 9월 1일 아침, 이순신의 조선 수군은 부산 다대포에서 해안을 따라 동쪽으로 진격하면서 왜 전선 100여 척을 격파한다. 다른 해전과 비교하더라도 매우 큰 전투였으며 대단한 성과를 거둔 해전이었음에도 이순신의 부산포 출정과 해전은 부산 시민도 잘 알지 못한다. 이 해전을 ‘부산포해전’이라 하는데, 당시 상황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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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민공계초’의 일부. 부산포해전 내용이 선으로 표시돼 있다. 국립해양박물관 제공 |
임진왜란 발발 후 4개월 동안 조선 수군은 옥포 당포 한산도 등지에서 왜군을 공격해 큰 승리를 거둔다.
왜 수군은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두려워 가덕도 서쪽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동쪽에 근거지를 마련한다. 이를 공격하기 위해 이순신은 8월 24일 전선 74척과 협선 92척을 이끌고 출항하여, 9월 1일 왜 수군 근거지인 부산포를 격파한다.
‘충민공계초’는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모아놓은 전사본이다.
왼쪽 끝에서 네 번째 줄 중간의 ‘九月 初一日(구월초일일)…’부터 부산포해전 기록이다.
“1592년 9월 1일 진시(辰時)에 몰운대를 지나 다대포 사이, 다대포 앞바다, 서평포(현재 사하구 구평동), 절영도(영도)를 지나면서 왜군의 선박을 모두 깨부수고, 배 안에 실린 물건과 전쟁 도구도 모두 불살랐습니다.…초량목으로 돌진하여 왜선 4척을 깨부수고 불살랐습니다. 그러자 왜군들은 헤엄쳐 육지로 도망치려고 하는데, 뒤에 있던 배들이 깃발을 흔들고 북을 치면서 ‘장사진’을 펼치며 돌진하였습니다. 부산진에 이르자 왜군은 동쪽의 언덕 기슭에 진을 치고 470여 척이 정박해 있었는데, 우리의 위세와 무력을 바라보고 두려워서 선뜻 나서지 못하였습니다.” (‘충민공계초’ 내 부산포해전 기록·일부 수정)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선조에게 다음과 같이 부산포 대승을 보고한다
“대적의 소굴에 정박한 배가 400여 척이나 되었지만, 아군은 군대의 위세를 성대히 갖추어 승리의 기세를 타고 돌진하였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움에 꺾이지 않고 하루 종일 죽을힘을 다해 공격하여 적선 100여 척을 깨뜨려 적들로 하여금 심장이 떨리고 간담이 서늘해져 머리를 움츠린 채 두려움에 떨게 하였습니다.”
남해안 여러 지역과 바다가 그러하듯 부산에도 이순신과 관련한 이야기와 자료가 남아 있다. 부산시는 부산포해전 승리를 기념하고 기억하고자, 1592년 9월 1일을 양력으로 변환한 10월 5일을 ‘부산시민의 날’로 제정했다.
최근에는 북항 재개발 지역 내 신설도로를 ‘이순신대로’로 명명해 새로운 스토리텔링을 만들어 가고 있다.
부산포해전 당시 조선 수군의 해로를 바라보는 국립해양박물관(부산 영도구 동삼동)에도 여러 자료가 있다. 국립해양박물관을 방문하여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이 누빈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고, ‘충민공계초’를 통해 부산포해전을 되새겨보는 것도 부산시민의 날을 기념하고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 국립해양박물관·국제신문 공동 기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