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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위에도 판잣집 뚝딱…피란수도 곳곳 필사적 생존 흔적

상지건축과 함께하는 오 부산-유산과 미래 <4> 피란의 공간, 착란의 도시

  • 우신구 부산대 건축학과 교수
  •  |   입력 : 2023-10-08 18:45:14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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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 때 부산에 몰린 100만 명
- 골짜기까지 올라가 판자촌 형성
- 태극도 신도 감천동 집단이주
- 현재 감천문화마을 시초 되기도

- 휴전 뒤 무허가 정착촌 늘어나자
- 정부 아파트 공급·이주정책 펼쳐
- 영주 초량 수정동 살던 사람들
- 서동 반송 좁은 필지로 내몰려

- 혼란의 공간 부산의 생존 서사
- 우리는 얼마나 기억·보존하는가

부산이라는 도시에 대한 인식은 참으로 다양하다. 누구는 부산이 너무 예쁜 도시라고 하고, 누구는 정신없는 도시라고 한다. 사실, 부산은 300만이 넘는 인구를 가진 대도시가 되기에 부적합한 도시이다. 부산에는 산이 많은 대신 시가지를 조성할 만한 넓은 벌판이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왜구의 침략에 대비한 군사적 시설이 해안을 따라 늘어선 국경지대였다. 하지만 1876년 개항 뒤부터 부산은 빠른 속도로 성장해 1995년에는 인구가 400만 명에 근접할 정도로 대도시가 되었다. 개항 이후 약 150년 역사를 돌이켜보면, 부산이 대도시로 성장하는 과정은, 일정한 속도가 아니라, 두 번의 뚜렷한 변곡점을 가진 불연속적인 곡선을 그리면서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
1960년대 부산 중구 영주동 모습을 찍은 사진이다. 판잣집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오른쪽 사진은 오늘날의 사하구 감천문화마을. 우신구 교수 제공
■판잣집 판자촌 등장하다

첫 번째는 1945년 광복에서 1953년 한국전쟁 기간으로 볼 수 있다.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동안 약 30만 명 인구를 가진 도시로 점진적으로 발전한 부산은 광복을 기점으로 인구가 급증했다. 일본을 비롯해 중국에 있던 동포가 선박을 통해 부산으로 밀려들어 왔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귀국하는 사람들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한반도와 만주에 거주한 약 100만 명의 일본인 중 상당수가 일본으로 출국하기 위해 부산으로 모여들었다. 그러므로 1945년 광복 이후 몇 년 동안 부산은 들어오는 한국인과 나가는 일본인, 그 엄청난 인구이동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었다.

1950년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산은 1023일 동안 임시수도가 되었다. 대통령을 비롯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각급 학교, 기업, 외국 대사관까지 부산에 모여들었다. 정부가 부산으로 오면서 혼란도 함께 찾아왔다. 피란민이 모여든 부산의 인구는 갑자기 100만 명에 육박했다. 정부는 항만과 철도시설 주변 창고, 소막사, 공장을 임시 수용소로 활용했지만, 충분하지 않았다. 뒤늦게 도착한 피란민은 가마니 판자 종이박스 깡통양철 등 구할 수 있는 재료를 모두 이용해 도시 내 빈 공간에 판잣집을 지었다. 건물 담벼락, 하천 부지, 바닷가 바위 가리지 않고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섰다.

시가지에서 더는 빈 공간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산으로 올라가서 판잣집을 짓기 시작했다. 대청동 보수동 영주동 등 부두나 시장이 가까운 지역 경사지에는 이내 판자촌이 가득 들어섰다. 일부 피란민이 아미동 언덕의 과거 일본인 공동묘지로 올라가 묘지 위에 천막이나 판잣집을 짓고 거주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기묘한 동거는 죽음의 고비를 넘어 살아서 부산에 도착한 피란민에게 주어진 불가피한 선택지 중의 하나였다. 정부가 있는 도시 곳곳이 무정부 상태로 빠져들었다.

■감천마을 형성사(史)

한국전쟁이 분단 상태로 휴전되자 정부는 서울로 돌아갔지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없는 피란민과 함께 판자촌 문제는 그대로 부산에 남았다. 당국은 도시 기능을 저해하는 도심 판자촌을 적극적으로 철거하는 대신 후생주택, 국민주택, 난민주택 등 공공주택을 공급했으나 주거난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물량이었다.

뿐만 아니라 도심에서 철거된 판잣집은 자리를 옮겨 다른 곳에 다시 세워졌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보수천 주변에 집단 거주하던 태극도 신도들이 1955년 부산시와 합의 하에 감천동 골짜기로 집단 이주한 사건이다. 그들은 이주하면서 새 집을 지은 것이 아니라, 보수동 판잣집을 해체한 뒤 감천동 골짜기까지 운반해 가서 다시 조립하여 세웠다. 중장비의 도움도 없이 오로지 사람의 힘만으로 경사지 등고선을 따라 조성한 좁고 긴 계단식 부지에 긴 창고 같은 판잣집이 며칠 만에 한 동씩 세워졌다. 불과 몇 개월 만에 전기·상하수도·교통 등 기반시설이 전혀 없는 골짜기에 약 800세대의 신도들이 거주하는 수용소 같은 판자촌이 형성됐다. 기존 시가지와 격리된 계곡에 하나의 종교를 믿는 신도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마을은 한때 치외법권 지역으로 알려질 정도로 공권력이 미치지 못하는 공간이었다.

1970년대 이후 태극도 교단이 쇠퇴하면서 주민들은 종교 대신 경제를 추구하게 되었다. 소득이 늘면서 각자 형편에 맞게 판잣집을 단층 슬레이트 블록집으로, 2층 슬라브집으로 개축하고 증축했다. 초창기 낡은 수용소같던 태극도마을이 알록달록 색칠한 다양한 주택이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을 가진 감천문화마을로 바뀐 배경이다.

1970년대 토지구획정리사업이 이뤄진 영주동 일대 모습.
■주택의 백과사전

두 번째 인구 급변기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산업화 기간으로 볼 수 있다. 1970년 184만 명의 인구는 1980년 316만 명으로 급증했다. 일자리를 찾아 농촌을 떠나 부산으로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한국전쟁이 남긴 무허가 판자촌은 영주동을 넘어 초량동 수정동 좌천동 범일동 산기슭으로 오히려 더 확산했다. 급해진 시 당국은 1967년부터 정부와 함께 토지구획정리사업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해 도심 주변 경사지를 가득 메웠던 판자촌을 강압적으로 철거하는 대신 시영아파트를 짓고, 단독주택 택지를 조성했다.

이 시대 경사지 판자촌 철거의 대표적 지역은 영주동이다. 영주동 골짜기를 가득 메웠던 판잣집은 1968년 몇 개월 만에 철거됐고, 그 자리에는 단독주택 택지와 함께 1977년까지 시민아파트 등 51동의 아파트가 조성되었다. 단독주택 택지에는 산업화의 수혜를 입은 부산 중산층이 ‘드림하우스’를 상상하며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주택을 지었다. 경사가 심해 계단길을 통해 접근해야 하는 높은 축대 위의 택지라는 불리한 조건이었지만, 지형조건을 오히려 창조적으로 활용하여 3개 층에 걸쳐 외부에서 접근 가능한 독특한 주택 등 1970년대 중산층 주택의 백과사전을 지금도 볼 수 있다.

그러면 영주동 초량동수정동 판자촌에 살던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일부 주민을 제외하고 대부분 하루아침에 오지나 다름없었던 서동 반송동 반여동 등 정책이주지역으로 내몰렸다. 반송동의 경우 한 세대 당 5m x 7m, 35㎡(약10.6평), 서동의 경우 7.6m x 6.7m, 약51㎡(약15.4평) 면적의 협소한 땅이 주어졌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 이주민은 블록벽 위에 슬레이트 지붕을 얹은, 그 작은 땅보다 더 작은 단층주택을 지어 살았다.

수도나 전기 등 부족한 기반시설은 그 이후 오래도록 민원의 대상이 되었다. 배차시간을 준수하지 않아 출근과 통학의 고통을 가중시키는 버스회사에 항의해 주민들은 단체로 걷기시위를 통해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영주동 판자촌의 외형적 무질서는 중산층의 고급주택으로 정비됐지만, 그 원인은 정책이주지역의 불편과 분노로 이전되었을 뿐이었다.

■함께·홀로 창조적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정책이주지역에도 조금씩 새로운 희망이 나타났다. 도시가 확장하고 공단이 주변에 들어서면서 방을 구하는 세입자들이 정책이주지에 모여들었다. 주민들은 그 좁은 필지 위에 갖가지 형태의 급경사 계단과 입체 퍼즐같은 공간을 기발하게 결합해 2층, 3층, 4층까지 증축했다. 법을 벗어나는 과다한 증축은 하루아침에 오지로 내몰린 1세대 정책이주민의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사후에 일시에 양성화되곤 했다.

개항 이후 광복과 한국전쟁, 산업화에 이르기까지 부산의 짧은 역사를 돌이켜보면 도시 기본 질서를 뒤흔드는 격변이 연이어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부산은 정부와 무정부, 질서와 무질서, 죽음과 삶, 정착과 배제, 합법과 탈법이 하나의 공간에서 교차하는 착란의 도시였다. 하지만 그 혼란의 공간 속에서 부산 사람들은 함께 또는 홀로, 필사적으로 또는 창조적으로 집을 지어 왔다. 도시 곳곳에 새겨진 생존과 희망의 공간적 서사 중에서 우리는 겨우 감천문화마을 하나를 제대로 활용하고 있을 뿐이다.

※ 공동기획 : 국제신문, 상지건축

*‘오! 부산’ 강연 일정 blog.naver.com/osangji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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