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르게네프는 ‘니힐리스트(Nihilist, 허무주의자)’란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작가다. 이 고전 5장에 그 단어가 등장한다. 아르카디는 큰아버지 파벨 페트로비치가 바자로프를 소개받은 후 어떤 사람이냐고 묻자 “그는 니힐리스트예요”라고 답한다.
파벨은 무(無)를 뜻하는 라틴어 ‘니힐(nihil)’에서 나온 말이니 니힐리스트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이냐고 되묻은 후 “아무것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이지”라고 빈정댄다. 아르카디는 툴툴댄다. “모든 걸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이 같은 니힐리스트 논쟁에서, 우리나라를 포함해 현대 사회에 박힌 덫인 신구 세대 간 갈등과 시각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구세대인 파벨이 보기엔 좋게 말해서 비판 정신이지 사실상 신세대가 보이는 안하무인 행태다. 신세대아르카디는 어떤 권위 앞에서도 고개 숙이지 않고, 제아무리 존중받는 원칙이라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니힐리스트이며 그것은 사람에 따라 좋고 나쁨이 갈린다고 덧붙인다. 이에 파벨은 그건 무원칙이며 우리 세대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잘라 말한다.
얼마 뒤 파벨은 바자로프와 충돌하며 악감정이 쌓였는지 그와 권총 결투를 벌여 자신만 총상을 입는다. 결투한 원인은 바자로프가 아르카디 아버지와 동거하는 여인 페니치카에게 애정 공세를 펴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 파벨은 페니치카가 자신이 잊지 못하는 여인과 닮았다고 생각해 온 차에 바자로프가 집적거리자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이런 서사 설정은 신구 세대 충돌은 서로 상처만 주는 적의로 변해가는 속성에 대한 경고로 읽힌다. 세대 갈등이 심해져 가는 우리나라와도 무관치 않다.
허무주의는 러시아 혁명 운동이 전개된 1870년대 허무당이 행동 강령으로 받아들였다. 개인은 모든 제도와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풀려나 자유로운 사회를 구축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신세대가 숭배하는 사상 중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