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래 동해서 고둥류 부르던 말
- 통조림 골뱅이 전국적 인기로
- 상품명이 아예 표준어 돼 통용
- 삶고 굽거나 야채와 무쳐 먹기도
- 서울 을지로엔 골뱅이무침 골목
- 난전서 빠지지 않는 ‘국민 안주’
- 낙동강에도 큰구슬우렁이 서식
1980년대 서울에서 몇 년 호구지책의 시절이 있었다. 바다가 없는 서울 생활은 팍팍하기 그지없었는데, 그나마 삶의 큰 위안거리가 되어준 음식이 ‘골뱅이무침’이었다. 당시 서울 충무로, 을지로에는 저물 무렵이면 골뱅이무침 난전이 펼쳐져 골목을 이루고 있었고, 저녁이면 호주머니 가벼운 젊은이들과 일단의 직장인들이 난전 술상에서 골뱅이무침에 한잔 술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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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뱅이류는 삶아서 수육으로 만들거나 무쳐서 먹고, 소면과 함께 곁들이는 등 조리법이 다양하다. 사진은 골뱅이소면. |
쫀득쫀득한 골뱅이와 식감이 좋았던 명태 채, 쥐포 채를 섞고 알싸한 파 채를 수북하게 올려 새콤달콤하게 무쳐낸 골뱅이무침은 참 착한 술안주였다. 비록 통조림 골뱅이로 설렁설렁 무쳐 낸 음식이었지만, 시원하게 바람 맞으며 난전에서 벌이던 낭만 술상은 꽤 오랫동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가끔 7번 국도를 타고 바다 풍경이 좋은 동해안에 며칠씩 머무르곤 한다. 동해안은 동해안만의 독특한 수산물이 철 따라 다종다양하게 난다. 과메기의 원료인 청어 꽁치와 더불어 제사상에 올리는 대왕문어, 수육으로 즐겨 먹는 개복치, 동해 별미 오징어, 가자미…. 그중에서도 한때 국민 술안주로 인기를 끌었던 ‘골뱅이무침’의 식재료인 골뱅이도 동해안의 특산 수산물 중의 하나이다.
■골뱅이 주생산지는 동해‘골뱅이’란 식재료의 전국화는 서울 을지로 골뱅이무침 골목에서 시작했지만, 기실 골뱅이는 동해가 주생산지이다. 동해의 골뱅이가 서울로 와 전국적으로 인기를 끌며 국민 술안주가 된 것이다. 동해가 주생산지이다 보니 동해 연안 사람들이 쓰는 지역 말 또한 전국화가 되었다. ‘골뱅이’란 단어가 바로 그것이다.
원래 골뱅이는 고둥류를 달리 부르는 일부 지역의 말이다. 지금은 국립국어원이 편찬한 ‘표준국어대사전’에 표준어로 등재되어 있지만, 원래 ‘골뱅이’는 다슬기, 우렁이류를 총칭하는 동해 연안 지역의 말이었다. 일명 방언, 사투리란 뜻이다. 주로 경상도 강원도 함경도 지역에서 널리 쓰였다.
그중에서 맛이 달고 부드러운 ‘물레고둥류’들은 통조림으로도 출시됐는데, 당시 골뱅이란 상품명을 썼기에 골뱅이란 말이 전국으로 통용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요즘 골뱅이라 불리는 고둥은 주로 물레고둥류를 특정해서 쓰이는 말이기도 하다. 동해 연안 어부나 상인들은 이들을 종류에 따라 ‘백골뱅이’, ‘흑골뱅이’, ‘왕골뱅이’ 등으로 분류해서 부르고 있다. 이를 줄여 ‘백고둥’, ‘흑고둥’ 등으로도 부른다.
‘물레고둥’은 우리나라 동해에 사는 고둥으로 경주 감포, 포항을 시작으로 울진 죽변 속초에 이르기까지 동해 모든 연안 어시장에서 쉬 볼 수가 있다. 수심 100m 이상 깊은 해저에 서식하며 주로 통발로 어획한다. 껍데기가 약해 흔히들 보면 주둥이가 깨진 채 판매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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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뱅이무침. |
물레고둥류 중에서도 ‘물레고둥’과 ‘고운띠물레고둥’ 등을 흔히 ‘백고둥’, ‘백골뱅이’로 부르는데, 껍데기 색이 흰 편이라 그렇게 불린다. 골뱅이 중에서도 가장 보편적이고 널리 대중화된 종류이다. 삶아 먹거나 골뱅이탕으로 먹는데, 동해 지역에서는 석쇠 등에 통째로 구워 술안주로도 즐긴다. 맛이 좋아 비싼 가격으로 거래되기에 ‘참골뱅이’로도 불린다.
물레고둥 중 ‘깊은골물레고둥’은 표면이 백골뱅이에 비해 검은색을 띤다. 그래서 ‘흑고둥’, ‘흑골뱅이’로 불린다. 백골뱅이에 비해 개체 수가 많고 가격 또한 싸기에 일부 상인은 이를 백골뱅이와 섞어 파는 등 얌체 상술을 부리기도 한다. 현지 어민들은 ‘똥골뱅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흑골뱅이 또한 동해 깊은 수심의 바다에 서식하는 고둥 중 하나이다.
물레고둥과 더불어 골뱅이 삼총사로 통하는 고둥 중 ‘명주매물고둥’이 있다. 골뱅이류 중에서도 몸집이 큰 편에 속한다. 크기가 거의 어른 주먹만 하다. 그래서 ‘왕골뱅이’라고들 하기도 하고 나팔처럼 생겼다 ‘나발고둥’이라고도 부른다. 동해 200~600m 깊은 수심에서 서식하기에 ‘심해고둥’이라고도 한다. 색깔은 담갈색, 담홍색 또는 황백색이다. 식감이 부드럽고 기분 좋은 단맛과 감칠맛이 뛰어나 고급 횟감으로 널리 쓰인다.
■수육·초밥 등 다양한 활용  |
| 골뱅이탕. |
이들 골뱅이류는 여러 방법으로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데 주로 삶아서 수육으로 바로 먹거나 무쳐서 먹고, 탕으로도 먹고 굽거나 볶아서도 먹는다. 소면과 함께 곁들이기도 하거니와 싱싱한 놈은 회로도 널리 먹는데 고급 일식집에서는 초밥 재료로도 그 인기가 높다.
이들을 이용해 통조림을 생산하기도 하는데, 시중의 골뱅이 통조림을 살펴보면 이상한 점을 한 가지 발견할 수가 있다. 골뱅이 통조림의 내용물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혀 다른 고둥류 중 하나가 골뱅이 통조림으로 판매되고 있다는 점이다.
골뱅이 통조림에 쓰이는 골뱅이는 크게 나누어 ‘물레고둥류’와 ‘큰구슬우렁이’ 등 두 종류이다. 지금은 거의 수입 골뱅이를 쓰지만, 서식지로 보자면 동해안 골뱅이와 서남해안 골뱅이로 나뉘는 셈이다. 동해안 골뱅이는 앞에 소개한 대로 ‘물레고둥류’를 일컫는다. 모두에게 널리 사랑받는 골뱅이다. 그러나 서남해안 골뱅이는 몸체가 동글동글한 ‘큰구슬우렁이’를 말한다. 주로 서해와 남해의 모래밭과 갯벌 지대에 널리 분포한다.
‘큰구슬우렁이’는 몸체가 동글동글하면서 연한 황갈색으로 반들반들 윤기가 도는데, 말 그대로 큰 구슬처럼 예쁘게 생겼다. 식감이 질기고 특유의 아릿한 맛이 있어 호불호가 갈린다. 그래도 마니아나 식도락가는 이런 특징을 좋아하기도.
부산에도 낙동강 유역 기수지역에 ‘큰구슬우렁이’가 서식하는데, 강서구 명지 사람들은 큰구슬우렁이를 ‘골뱅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패각 밖으로 흰색 발을 치마 같이 펼치고 나풀거린다고 ‘백고둥’으로 부르기도 하며 즐겨 먹는다.
한때 국민 술안주로 서민의 힘든 삶과 애환을 다독여 주던 골뱅이. 생산지에서 부르던 지역 말이 이제는 표준어로 인정받을 정도로 전 국민이 사랑하여 즐겨 먹어왔던 식재료가 골뱅이이기도 하다.
찬 바람이 불 때쯤 동해안 사람들은 연탄불 석쇠에 골뱅이를 얹어 두런두런 구워 먹을 것이다. 노릇노릇 다디단 골뱅이 굽는 냄새가 사람을 불러 모으고, 한 순배 두 순배 술잔이 정겹게 돌아갈 것이다. 가을이 깊어 가는 동해의 일상 풍경이 눈에 선하게 그려지는 이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