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쉘터’로서 집의 의미 되새겨
- 빅데이터 녹여낸 전시 인상적

내 월급은 쥐꼬리만큼 오르는 것 같은데, 집값은 무서운 속도로 뛴다. 서울에서 적당한(중위 가격) 아파트 한 채를 사려면 매달 577만 원씩 10년 동안 모아야 한단다. 이러니 집 못 사서 결혼 못 하겠다는 말은 더 이상 ‘우는 소리’가 아닌, 현실이다. 이쯤 되니 집이란 사는(BUY) 것인지, 사는(LIVE) 것인지 궁금해진다.

전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기획한 박지민 큐레이터가 전시 작품 중 하나인 유리 스즈키의 ‘히비키 트리’앞에서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 제공

부산 수영구 F1963 내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에서 열리는 전시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는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전시는 물리적 거주지인 ‘집’이 진정 우리에게 안정을 주는 ‘쉘터(피난처)’인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한다. 이 같은 의문은 최근 전 세계 곳곳에서의 분쟁으로 불가피한 이동이 빈번해진 현실과 맞물리면서 확장성을 갖는다.

미국 LA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 루시 맥래의 ‘압축 카펫 2.0’. 사람이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주는 기계를 형상화해 정서적 의미의 쉘터를 고민한다. 현대모터스튜디오 부산 제공

전시를 기획한 박지민 큐레이터의 표현에 따르면, 집과 쉼터의 차이는 ‘관계성’ 유무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우리가 흔히 쉘터로 여기는 집은 정서적으로 안정감을 느끼는 공간이 될 때 공간을 넘어 추억을 담은 정서적 교류로 이어지며 진정한 쉘터로서 의미를 갖는다”고 설명했다. 박지민 큐레이터는 서울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가구 디자이너이자 기획자로, 현대자동차가 신진 큐레이터에게 수여하는 ‘현대 블루 프라이즈 디자인 2022’ 수상자이다.

이 전시에서는 리서치 기반 예술가, 사진가, 미디어 아티스트, 설치미술가 등 국내외 12개 팀이 제안하는 다양한 형태의 쉘터를 만날 수 있다.

첫 번째 파트인 ‘이동’에서는 고정된 거주지인 집이 진정한 쉘터인가 하는 의문을 던진다. 비행기 이동량을 실시간으로 보여줌으로써 분쟁, 전쟁 등으로 벌어지는 이동의 의미에 대해 되묻거나(펠릭스 렌츠 ‘정치적 기류’) 한국에 정착한 이주민들의 목소리를 통해 이동의 의미를 찾는다(오픈투베리어블스 ‘연착륙’).

두 번째 영역인 ‘확장’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쉘터를 본격적으로 찾아 나선다. 스튜디오 쉘터&기어이의 ‘이향정:기억으로 만든 집’은 과거 작가가 살았던 300년 된 고택을 VR로 재구성해, 집을 기억을 담는 그릇으로 제시한다. 아키 타입의 ‘아열대로부터’는 대표적인 이주 작물인 사탕수수의 이동과 서식지를 보여주면서 식물의 처지에서 본 쉘터의 모습을 되짚는다.

세 번째인 ‘관계’에서는 작가가 경험을 통해 만들어 낸 다양한 정서적 쉘터를 제안한다. 정봉채 사진가의 사진 작품 ‘UPOJBC130810’은 경남 창녕 우포늪 가시 연잎 위에 빼곡하게 모여 잠을 자는 백로의 모습에서 진정한 안식처의 모습을 엿본다. 루시 맥래의 ‘압축 카펫 2.0’은 사람이 꼭 안아주는 느낌을 주는 듯한 기계를 형상화한 작품으로, 포옹이라는 행위 자체가 정서적 의미의 쉘터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번 전시의 특이점은 무엇보다 ‘데이터’에서 찾을 수 있다. 박지민 큐레이터는 이번 전시를 위해 집과 관련된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전시에 녹여냈다. 이렇게 모인 데이터는 전시 주제에 설득력과 공감력을 부여함과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전시물이 되기도 한다.

마지막 파트인 ‘아카이브 라운지’는 전시팀이 그동안 전시를 준비하며 아카이빙한 서적과 이미지로 채워진 공간이다. 전시에 참여한 12팀이 제각각 생각한 쉘터의 의미를 글로 만날 수 있다. 전시는 내년 6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