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대중 탄생 100주년 기념 다큐
- 사업가에서 대선 후보까지의 삶
- 주변인물 육성 증언 곁들여 조명
- 사형수 시절 이희호 여사 면회 등
- 미공개 영상자료 보는 재미까지
- “작업하며 그 분 소명의식에 감동
- 갈수록 커지는 정치 혐오와 냉소
- 작은 관심이 변화의 시작점이죠”
제15대 대통령이자 한국인 최초로 노벨 평화상을 받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에 크게 이바지했다. 그래서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자, 한국 정치를 대표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1924년 1월 6일 전남 신안에서 태어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길위에 김대중’(개봉 10일)에는 목포 청년 사업가로서 탄탄대로를 버리고 정치인의 삶을 살며 국민과 함께 파란곡절의 길을 걸은 그의 인생이 담겨 있다. 김 전 대통령과 관련된 미공개 자료와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를 끌어모으고 그와 역사적 순간을 함께 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담아 제작했다.
‘길위에 김대중’을 연출한 민환기 감독은 “탄생 100주년과 무관하게 제작한 것은 아니지만 다큐멘터리라는 것이 프로젝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정확히 언제 나올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은가. 그런데 탄생 100주년과 잘 맞아떨어졌다”며 “민주주의를 향한 험하고 고독한 길 위에 인간 김대중이 남긴 필사의 발걸음과 파란만장했던 삶의 궤적을 따라 밟고자 했다”고 연출의도를 전했다. 고 노회찬 전 국회의원의 삶을 다룬 ‘노회찬6411’에 이어 두 번째 정치인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민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공부한 뒤 연출을 수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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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을 연출한 민환기 감독. 그는 고 노회찬 전 의원을 다룬 ‘노회찬6411’에 이어 두 번째 정치인 다큐멘터리를 완성했다.
명필름·시네마6411 제공 |
‘길위에 김대중’의 시작은 7, 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명필름의 이은 대표와 시네마6411의 최낙용 대표, 그리고 민 감독은 남북 탁구 단일팀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위한 이야기를 나눴다. “남북 탁구 단일팀이니까 여러 가지로 북한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예를 들어 북한 선수들 인터뷰를 할 수 있으면 좋으니까. 그런데 평창동계올림픽 이듬해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그것이 힘들어지며 제작이 어떻게 될지 모르게 됐다. 그러던 와중에 이분들과 ‘노회찬6411’을 제작했다.”
용접공에서 진보 정치인이 된 고 노회찬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노회찬6411’은 높은 완성도를 보이며 정치인 다큐멘터리로는 드문 3만 명 관객을 모았다. 이후 김대중추모사업회는 명필름에게 김 전 대통령의 다큐멘터리 제작을 제안했고, 2021년 말에 민 감독에게 연출 제의가 들어왔다. “바로 하겠다고 얘기는 안 했고, 고민의 시간을 가졌다. 먼저 김 대통령에 대해서 제가 잘 몰랐고, 정치인 다큐멘터리를 또 해야 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노회찬6411’을 하면서 정치인은 저랑 다른 종류의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민 감독뿐만 아니라 다른 어떤 감독이라도 한국 현대사의 거목인 김 전 대통령의 삶을 담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이 있었을 것이다.
고민은 길었다. 할지 말지에 대한 고민만 한 것은 아니다. 1년 가깝게 김 전 대통령을 공부한 것이다. “연출을 수락하기까지 거의 1년 동안 김 대통령에 대한 서적은 거의 다 읽은 것 같다. 어떤 분인지 공부했고, 김대중평화센터에서 김 대통령에 대해 인터뷰한 영상을 봤다. 그러면서 제가 이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연출할 수 있는지 판단했다.”
연출을 결심한 민 감독은 김 전 대통령의 다양한 면모 중 어떤 모습을 그릴지 결정했다. “김 대통령은 서명이나 방명록 등에 사인할 때 ‘정치인 김대중’으로 하시는 것 같았다. 당신이 원했던 모습이 정치인인 것 같았고, 그 모습으로 살아오시려고 노력한 것 같아 정치인으로 그려야겠다고 판단했다.”
■정치인 김대중을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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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포 청년 사업가로서 탄탄대로의 길을 버리고 정치인의 삶을 살면서파란곡절의 길을 걸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인생을 담은 다큐멘터리 ‘길위에 김대중’. 명필름·시네마6411 제공 |
‘길위에 김대중’은 청년 사업가였던 김대중이 갖은 고초를 겪으며 정치인 김대중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1987년 대선 후보로 나서기까지 이야기를 그린다. 그 속에는 1964년 한일협정 반대투쟁, 1969년 3선 개헌, 1971년 제7대 대통령 선거, 1972년 유신 체제, 1979년 10·26 사건, 1979년 12·12 군사반란, 1980년 5·18 민주화운동, 1987년 6·29 민주화선언 등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순간 속에 김 전 대통령이 ‘행동하는 양심’으로서 어떤 모습을 보였는지 드러난다.
민주주의를 향한 필사의 발걸음과 파란만장했던 삶의 궤적을 스크린으로 옮기기 위해 방대한 양의 아카이브 자료를 끌어모았다. “1700시간 정도의 영상자료를 본 것 같다. 시기별로 시간을 조정해야 했고, 어떤 것을 집어넣는 것이 현대사를 관객이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까 고민 했다. 흑백시절 영상도 많아 가능하면 1시간 이내에 컬러 화면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기점이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이 아닌가 싶다.” ‘길위에 김대중’을 처음 편집했을 때는 3시간 분량이었고, 이를 줄이고 줄여 126분 러닝타임을 맞췄다.
‘길위에 김대중’에는 미공개 영상 자료도 있다. 김 전 대통령의 첫 번째 부인의 동생인 차은경 씨 육성 증언과 전두환 정권이 조작한 내란음모사건으로 1980년 사형선고를 받은 김 전 대통령이 수감 생활 중 면회실에서 이희호 여사와 마주 앉은 모습, 감옥에서 겨울용 수의 차림으로 미국 망명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공개된다.
영화에는 담기지 못했지만 민 감독이 김 전 대통령이 대단하다고 느낀 또 다른 장면이 있다. “영화에는 이야기 전개상 담지 못했지만, 인터넷에 대해 말씀하는 장면이 있었다. 앞으로 인터넷이 세상을 어떻게 바꿀지 내다보고, 그게 왜 한국에 기회가 될 것인지 이야기한다. 1980년 무기수로 교도소에 갇혀 있는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도 세상 돌아가는 일에 관심을 갖고 미래를 준비한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쉽지 않았을 터다.”
또 ‘길위에 김대중’을 연출하면서 감동받은 점도 있다. “1980년대 초반 미국 워싱턴 망명 시기에 수많은 강연을 하며 다니셨는데, 한 번은 주위에서 좀 쉬시라고 1주일간 별장을 예약해 줬다고 하더라. 그런데 김 대통령은 하루만 자고 복귀했다. 그분이 가진 소명의식을 느꼈다.” 또 있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예를 들어 해외 순방을 가면 공식 일정 외에는 다른 일정을 안 잡고 호텔에서 회담 준비를 하셨다고 한다. 항상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은 놀라운 분이다.” 이 또한 김 전 대통령의 소명의식을 엿볼 수 있는 일면이 아닐까 싶다.
■정치인 다큐를 연출한다는 것
민 감독은 이 작품을 연출하며 새삼 우리에게 정치인은 어떤 존재인지 다시 생각했다. “영화에는 목포 선거나 1971년 대통령 선거 유세에서 김 대통령을 바라보는 많은 시민의 얼굴이 등장한다. 그 얼굴들을 보면 정치인을 중요한 존재로 생각하고, 그만큼 기대를 걸었던 것 같다. 정치인이 내 안의 열망을 대신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믿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 혐오, 정치 냉소 시대로 불리는 요즘 민 감독은 ‘길위에 김대중’이 어떤 의미가 되길 바랄까?
“정치에 대해 냉소적인 태도를 보이게 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이유를 만들어낸 사람들을 욕해서는 바뀌지 않을 테니까 자신이 바라는 정치인의 모습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좋겠다. 그리고 각자 바라는 세상이 있는가에 대해서 가볍게 질문하면 좋겠다.”
현재 중앙대학교 영화학과 교수이기도 한 민 감독은 학생을 가르치는 바쁜 가운데 ‘길위에 김대중’을 완성했다. “김 대통령에 관한 공부를 1년 했고, 실제 작업도 1년 했다. 다큐멘터리이니까 병행이 가능했던 것 같다. 시간을 제가 조절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사람을 다루는 다큐멘터리는 너무 힘들어 이제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실은 제가 사람보다는 시스템과 그 시스템이 사람한테 주는 상호작용 같은 것에 관심이 많다. 재연이 중요한 다큐멘터리를 통해 제가 본 것을 다른 사람들한테 분명히 드러낼 수 있는 작업을 하고 싶다.” 자신만의 시각으로 세상을 보는 민 감독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