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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88> 전재민 구제 권투대시합 포스터

광복 후 상하이서 부산으로 돌아온 ‘권투왕’의 경기 포스터

  • 최지효 정관박물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4-02-05 19:35:17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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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박물관에는 ‘부산 대(對) 상해 권투 시합’을 알리는 포스터(사진)가 한 장 있다. 개최 목적은 전쟁 이재민 구제. 출전자는 상해 대표 상해 권투왕 박형권과 김계윤, 부산 대표 김일영 박철수 등으로 날짜는 6월 9일 오후 2시, 장소는 부산공설운동장이다. 재부산 상해귀환인·부산 권투구락부가 주최하고, 부산 권투연맹과 부산 각 신문사가 후원하며, 입장료는 2000엔.

포스터를 보고 있자니 의문이 든다. 전쟁 이재민 구제라는데 어떤 전쟁일까. 상해 권투왕은 무엇이고, 상해귀환인 단체는 또 뭔가? 부산에서 개최한다면서 입장료는 왜 ‘엔’일까?

이 포스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역사를 되짚어봐야 한다. 우리나라에 복싱이 최초로 소개된 것은 1912년 10월 7일 단성사(團成社) 주인 박승필(朴承弼)이 유각권구락부(柔角拳俱樂部)를 조직하면서부터이다. 1928년 조선중앙기독교청년회 주최, 동아일보 후원으로 제1회 전조선권투선수권대회를 서울에서 열어 1941년 제14회 대회까지 계속됐다. 1929년 9월 17일에는 조선복싱회를 발족하고 1934년 1월 20일 전조선아마튜어권투연맹을 창설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빼어난 선수들의 등장에 힘입어 권투는 인기 스포츠로 부상했다.

우리나라 복싱선수는 일본에서 선수권을 획득하고 일본 선수로 올림픽대회에 참가하는 등 한때 일본 복싱계를 주름잡았지만,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복싱을 적성국(미국) 스포츠라 하여 배격했다. 이 같은 분위기로 말기에는 많은 복싱선수가 중국으로 가 상해(上海)를 중심으로 활동한다. 이때 몇몇 선수는 독립투사를 돕는 일에 기여하기도 한다.

박형권은 1920년 평남 개천에서 태어나 원산 광명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14살 때부터 아마추어 선수로 활동해 18살 때 프로 선수가 된다. 하얼빈과 상해로 무대를 옮긴 후, 상해를 휩쓸고 유럽 각국 도전자를 이기며 ‘상해의 권투왕’으로 불린다. 박형권은 해방되던 해 겨울 고국으로 돌아와 이듬해 봄인 1946년 3월 17일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데뷔전을 펼쳤다.

상해에서 활약하던 박형권·김계윤을 맞아 국내파 대표로 김진용과 송방헌이 나서 대전을 벌였는데, 이 경기를 당시 포스터에는 ‘전 상해 대 전 조선의 일대 혈전’이란 자극적인 제목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경기에서 박형권은 당시 무적인 김진용을 물리치고 ‘라이언’이라는 애칭을 얻어 ‘타이거’로 불린 정복수, 송방헌과 더불어 권투계에 삼총사로 등장한다.

화려했던 그의 선수 경력은 한국전쟁 발발로 내리막을 걷는다. 북한 의용군으로 평양 근처까지 끌려가 한국군에게 구출된 뒤, 육군으로 입대했고, 제대한 후 부산에서 재기를 꾀했으나 실패해 1952년 매부가 살던 대전으로 간다. 여기서 그는 모 기관원에 끌려가 매를 맞고 척추신경을 다쳐 재기 불능이 되었다.

이제 앞서 질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으리라 생각한다. 권투 경기가 벌어진 것은 태평양전쟁이 끝난 뒤 상해에서 돌아온 박형권이 맹활약하던 1946년으로 추정된다. 광복 후 한동안은 일본 돈이 통용됐으므로 입장료는 엔화로 받았을 것이다.(한국은행권이 처음 나온 때는 한국전쟁 중인 1950년 7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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