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1월 28일 밤.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 직후 당대 팝 스타 40여 명이 지친 모습으로 한자리에 모였다. 그들은 함께 노래하는 것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했다. 기근에 시달리는 아프리카를 돕기 위해서였다. 노래로 세상을 바꾼다는 발상은 아무래도 80년대식 이상과 낭만 가득한 무모한 도전으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그 자리에 모인 이들의 명단을 보면 무모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We are the world’ 뮤직비디오를 처음 보았을 때 어린이였던 나도 이거 보통 일이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중파 예능에서도 최신 팝송 뮤직비디오를 자주 소개할 만큼 때는 바야흐로 팝송의 시대였다. 학교 운동장이나 하굣길에서도 마이클 잭슨과 스티비 원더에 빙의해 위아더 월드 위아더 칠드런, 동년배 어린이들과 떼창하며 세계는 좀 더 멋진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고 막연히 믿고 감격했다.
‘팝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밤’은 예상했던 수많은 난관과 예상치 못한 더 많은 돌발 상황을 이겨내고 ‘We are the world’ 녹음에 성공한 그 역사적인 밤을 기록한 넷플릭스 다큐멘터리다.
누군가는 지치고 예민해져 있었고, 누군가는 이미 술에 취한 채 파티를 즐기고 있고, 대부분은 녹음할 노래를 숙지하지 못한 와중에, 스티비 원더는 생소한 아프리카 언어를 가사에 추가해야 한다고 아이디어를 낸다.
그때나 지금이나 전설로 불리는 밥 딜런의 동공은 몹시 흔들리고 있다. 무려 밥 딜런 씩이나 되는 사람이 저렇게 멘탈 붕괴되는 모습을 엿보는 기회는 흔치 않다. 밥 딜런 역시 살면서 마이클 잭슨과 라이오넬 리치가 함께 만든 노래를, 경쟁하듯 파워풀한 가창력을 뽐내는 팝스타들 사이에서 부를 거라고는 실감하지 못했을 것이다. 스티비 원더의 밥 딜런 모창에 겨우 웃음을 되찾고 솔로 녹음을 멋지게 마무리하는 모습에서 밥 딜런과의 내적 친밀감이 급상승한다.
설 연휴 내내 ‘We are the world’ 뮤직비디오를 반복 시청하며 흥얼거렸다. 여기저기서 다시 전쟁이 터지고, 여러 이유로 인류애가 바닥나는 2024년에 저 기적 같은 하모니가 더욱 아련하고 새삼 웅장하다. 지금의 우리는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