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반인 통제 지하통로·소화조
- SF·액션물 찍기 좋은 이색장소
지난 19일 부산 동래구 안락동 부산환경공단 수영하수처리시설 지하통로. 한낮인데도 어두워 플래시를 켜고 가파른 계단을 조심스럽게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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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영하수처리시설 지하통로에서 촬영된 걸그룹 ‘르세라핌’의 미니앨범 ‘EASY’ 트레일러 영상 ‘굿 본즈’의 한 장면. 멤버들의 카리스마 있는 연기와 지하통로 특유의 느낌이 강렬히 어우러진다. 르세라핌 뮤직비디오 캡처 |
빗물이 고인 하수처리장 지하통로에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려 퍼졌다. 낮고 좁은 통로에서는 금방이라도 도사 ‘전우치’가 튀어나오거나 지구를 침공하려는 외계인이 몰래 숨어들 것만 같다. 별도의 세트장이나 소품이 없이도 이곳만이 가진 특유의 분위기가 공간을 단숨에 액션·SF 영화 속으로 바꾸었다.
기피시설, 심지어 혐오시설 등으로 인식돼 왔던 대도시의 하수처리장과 소각장 등이 영화·드라마 촬영지로 꾸준히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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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장소에서 촬영한 최동훈 감독의 영화 ‘외계+인’ 촬영 장면. 부산환경공단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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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부산환경공단에 따르면 공단이 관리하는 하수처리장, 소각장 등 환경기초시설에서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30여 편의 영화 드라마 뮤직비디오 등이 촬영됐다.
영화 ‘전우치’(2009) ‘부당거래’(2010) ‘베테랑’(2015) ‘승리호’(2021) ‘외계+인’(2022) 등 다양한 장르 영화는 물론이고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2015), 드라마 ‘빅 마우스’(2022), 넷플릭스 시리즈 ‘스위트홈 시즌 2’(2023) 등 다양한 콘텐츠의 촬영이 바로 이곳에서 진행됐다.
이 가운데 K-팝의 인기를 이끄는 세계적인 걸그룹 ‘르세라핌’은 미니앨범 ‘EASY’ 발매를 위해 지난해 연말께 부산환경공단 강변하수처리시설에서 뮤직비디오 트레일러 영상 ‘굿 본즈’(Good Bones)를 촬영했다. ‘굿 본즈’ 영상은 공개된 지 5주 만인 지난 19일 기준 조회 수 513만 회를 돌파하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멤버들의 강렬한 모습 뒤로 이곳 하수처리장 지하통로 등이 등장한다.
부산환경공단은 좁은 하수처리장 지하통로와 하수찌꺼기를 처리하는 소화조, 쓰레기 크레인실 등은 시민이 자주 볼 수 없는 시설인 데다 공간 특유의 느낌이 액션 영상물이나 SF 등과 같은 장르물과 잘 어울린다고 분석했다. 또 대중이 좋아하는 콘텐츠에 자주 등장하면서 평소 기피시설로 여겨지던 하수처리장 등을 시민에 친숙하게 알릴 기회가 되기도 한다.
부산환경공단 관계자는 “환경기초시설은 아파트 등 인근 주거단지가 생기기 훨씬 전에 건립됐다. 지역 주민과 상생·소통하기 위한 매개체를 찾다 보니 문화 분야에서 답을 찾았고, 영화 촬영 지원도 그중 하나라 생각해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산은 산 바다 강 온천 항구 등이 어우러진 천혜의 환경과 드높은 마천루, 꼬불꼬불한 산복도로 등 다채로운 요소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풍경 덕분에 로케이션 장소로 인기가 높은 도시다. 특히 좁고 가파른 산복도로와 항구, 일제강점기와 근현대의 흔적이 남은 독특한 양식의 건물은 있는 그대로 근사한 세트장이 된다. 공단 환경기초시설 역시 별도의 세트장을 짓지 않아도 카메라 앵글에서 특유의 강렬한 분위기를 낸다.
다른 지역에도 환경기초시설이 있지만, 한 도시에서 실내외 촬영이 다양하게 이뤄질수록 제작의 효율성이 높은 만큼 부산환경공단은 인기 촬영지로 꼽힌다. 공단은 “연간 5회 이상 촬영 장소 선정을 위한 헌팅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한편 공단은 환경공원과 체육시설을 무료 개방해 축구 테니스 농구 족구 배드민턴 등을 시민이 즐길 수 있게 하고 있다. 방문하는 부산 시민이 연간 69만 명에 달한다. 안전상의 이유 등으로 대규모 인원수용은 어려워 지역민을 대상으로 한 작은 음악회도 열고 있다. 아이들을 대상으로 쓰레기 처리 과정 등을 견학토록 해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일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