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연말 국내 최정상 아이돌 그룹들이 총출동한 멜론뮤직어워드 무대에서 강렬한 록 사운드를 뿜어내는 밴드 실리카겔의 모습은 어쩐지 합성된 이미지처럼 생소했고 또 무지하게 반가웠다. 한국 록 밴드가 헤아릴 수 없는 군중으로 꽉 찬 대형 공연장을 뜨겁게 달구는 모습은 옛날 옛적 서태지가 록을 하던 시절 이후로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었다. 아니 저것은 말로만 듣던 ‘록스타’ 아닌가. 시대를 풍미했던 록 밴드의 시절은 까마득한 추억이 된 지 오래다. 대한민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전 지구적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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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데뷔한 밴드 ‘실리카겔’ |
90년대에 대학교를 다니던 시절 최정상 인기를 누리던 밴드는 ‘콜드플레이’였으나 세상이 3번 바뀌고도 남을 지금도 여전히 콜드플레이는 최정상을 지키고 있다. 세상에 독재도 이런 장기독재가 없다. 그 긴 세월 동안에도 ‘적폐청산’을 외치며 강하게 치고 올라오는 새로운 밴드는 찾아보기 힘들다. 밴드는 힙합과 아이돌 음악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버티기 어려웠다. 특히 무대 위에선 usb 하나면 어디든 편차 없는 안정된 사운드를 보장할 수 있는 힙합, 아이돌 음악에 비해 길고 긴 사운드 체크가 필요하고 편차가 심한 밴드의 라이브는 비효율적이고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허나 공장에서 찍어낸 듯 엇비슷한 음악이 판치고 있는 지금 비효율적이고 과장되고 불안 요소를 가득 담은 록 밴드의 사운드는 대체할 수 없는 매력이다.
실리카겔은 갑자기 혜성처럼 나타난 밴드가 아니라 2015년 ‘새삼스레 들이켜 본 무중력 사슴의 다섯 가지 시각’이란 난해한 타이틀의 EP로 데뷔한 중견 밴드다. 데뷔 당시엔 몽환적이며 실험적인 음악으로 수많은 마니아를 열광시켰지만 이제는 더 심플하고 록킹한 사운드와 여전히 난해하지만 매력 있는 가사, 뇌리에 강렬하게 박히는 멜로디로 떼창을 일으키는 록 페스티발 헤드라이너 급 인기 밴드로 부상하고 말았다.
단지 실리카겔이란 밴드의 인기일 수도 있지만, 밴드 시대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란 섣부른 설레발을 치고 싶은 욕구도 마구 치솟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실리카겔을 시작으로 대중에게 숨겨져 있는 수많은 국내 록 밴드들이 재조명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