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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95> 대한도기 변관식 필 진양풍경 접시

예술로 승화된 피란기 韓 도자기…산수화가 변관식 작품

  • 신동조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4-04-01 19:35:36
  •  |   본지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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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영도구 봉래동 2가 112. 한때 일제 수탈이 자행된 비극의 장소였으며, 한국전쟁기에는 피란민을 포용한 열린 장이었고, 이후에는 부산의 자부심이 된 자랑스러운 공간이었다. 이곳에 우리나라 최대 도자기 회사, 대한도기주식회사(이하 대한도기)가 있었다.

대한도기는 1917년 일본인 사업가가 세운 조선경질도기주식회사가 그 전신이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전쟁무기 재료로 쓰기 위해 뺏어간 놋그릇 대신 보급한 도자기 그릇을 만드는 등 어두운 역사가 있다. 그러나 한국전쟁 시기 부산으로 피란 온 화가들의 예술적 감각을 수용하고 그들에게 생계수단을 제공하며 ‘핸드페인팅 도자 접시’라는, 부산의 산업과 예술이 결합한 최초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핸드페인팅 도자 접시 제작에는 김은호 장우성 김환기 등 당대 쟁쟁한 화가도 참여했다. 그러나 그림 소재는 한복 입은 고아한 여인이나 널뛰기·연날리기 등 세시풍속을 즐기는 장면처럼 주 고객층인 귀국하는 외국 군인, 기자 등의 이국 취향을 반영한 것이 많았다. 모두가 고단했던 시절이었기에 아무리 명성을 얻은 이라도 작가의 예술적 지향보다는 기념품 가치가 우선되는 그림을 그려야 했다. 그러한 연유로 대부분 화가는 회화 작품과는 다른 사인을 남겼다.

이런 제약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예술세계를 펼친 이가 있었다. 근대 대표 산수화가 변관식(卞寬植, 1899~1976)이다. 그는 도자 접시에도 산수화를 전문으로 그리고 본인을 뜻하는 소정(小亭)을 명기해 상품이 아닌 작품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고자 했다. 지름 35.8㎝ 큰 백자 접시에 진양(진주) 풍경을 그린 이 작품(사진)은 촉석루 아래 갈 지(之) 자 사선 구도로 흐르는 남강, 논개가 몸을 던진 의암(義巖) 등을 생생하게 묘사했다. 화면 중앙 너른 바위는 변관식 특유의 물기 없는 붓을 문지르듯 그리는 갈필(渴筆)의 맛도 잘 드러낸다.

강가에서 빨래하는 아낙네들, 비탈 언덕을 올라가는 갓을 쓴 촌로, 파릇한 이파리가 돋은 나무, 붉은 꽃이 핀 나무는 생동감을 더한다. 가장자리에는 촉석루 기둥에 쓰인 조선 문장가 신유한(申維翰, 1681~?)의 시 일부를 적어 서화(書畵) 일치를 추구한 문인화 면모도 드러난다. 초벌된 도자기는 안료를 흡수하는 힘이 강해 종이에 그리는 것과 사뭇 다름에도 작가의 거침없는 필력을 느낄 수 있다. 그가 그린 산수화 계열 핸드페인팅 도자 접시 중 단연 수작으로 손꼽힌다.

대한도기 핸드페인팅 도자 접시는 예술가의 숨결을 간직한 예술품이자, 근현대 부산 도자기 산업 성장과 쇠퇴를 담은 사료이다. 대한도기가 문을 닫은 지 50여 년이 지났다. 그 역사를 톺아보아야 할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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