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8년 마지막 날. 꼬박 50년을 작업에 매달려 왔던 70대 작가가 기습 선언을 했다. 작가 본인의 설명에 따르면 갑자기 계시받은 것. 그 계시는 이름하여 ‘물감 소진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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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익 작가의 ‘물감소진 프로젝트 23-3-1: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
국제갤러리 제공 |
여생 동안 남은 화구를 다 쓰는 작업을 시작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주인공은 ‘땡땡이 작가’ 김용익. 오는 21일까지 부산 수영구 국제갤러리 부산점과 서울점 한옥에서 ‘아련하고 희미한 유토피아’로 지난 5년 프로젝트 결과물을 선보이는 그를 지난달 국제갤러리 부산점에서 만났다.
“여러 색이 있으니 골고루 소진해 나가자. 그래서 떠올린 것이 칸을 나눠서 척척 바르자는 아이디어였어요. 그런데 한두 점 해보니까 엄청 지루한 거예요. 사람이 할 짓이 못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씩 변화를 주기 시작했죠. 조형적 요소가 들어가고 색깔의 배치, 어울림과 안 어울림 이런 것도 들어가면서 발전해 오고 있어요.” 그는 ‘작가는 자기 작업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는 생각에서 이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됐다고 했다. 미술 이론으로부터, 예술 작품을 만든다는 그 사실로부터, 더 나아가서는 삶이나 죽음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진짜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물감 소진 프로젝트는 말하자면 죽음에서 자유로워지기 위한 제의적 행위”라며 “망막적 회화로 위장한 개념적 회화다. 겉으로 보이는 작품은 위장이며 그 이면엔 나의 삶과 예술이 동시에 종말을 맞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설명대로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세모 네모 동그라미가 제각각의 색깔과 형태로 색을 입고 있다. 화구를 아껴 써서 나온 페인팅은 대체로 흐릿하고 색이 옅다. 색상도 도형의 배열도 불규칙해 보이지만 묘하게 조화롭다.
“이번 작업을 설명할 또 하나의 키워드는 헤테로토피아에요. 기존의 배치와 사회의 질서에 대항, 저항하는 거죠. 모더니즘 공간 속의 이질 공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항의 흔적은 전시장 한 가운데 설치된 ‘땡땡이 화가의 변신은 무죄’ 작품에서 정점을 찍는다. 땡땡이 이미지를 반전시켜 네거티브 형식으로 그린 두 캔버스를 이어 붙인 후 프레임을 씌워 제작한 작품을 전시장 바닥에 기대어 놓음으로써 ‘회화는 벽에 걸리는 것’이라는 상식에 저항한다. 때로는 캔버스에 때 묻지 말라고 붙여놓은 테이프를 그대로 놔두거나 작품 위에 비닐을 씌워 물감을 바른 후 그대로 걸어놓는 방식으로 자유를 실현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멀리서 감상한 후 ‘가까이 더 가까이’서 보면 또 다른 묘미를 만날 수 있다. 자세히 보면 작품 곳곳에 깨알 같은 글씨가 숨어있는데, 작업 과정에서 느낀 작가의 고뇌가 오롯이 담겨있다. 우연히 장식물에 붙어 말라죽은 작고 작은 모기도 그의 작품의 일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