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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37> 오징어 중의 오징어, 갑오징어

맛도 활용도도 甲…이 오징어 뼛가루로 지혈하고 먹물로 글 썼네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4-04-23 18:51:15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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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철 맞아 씨알 굵은 갑오징어
- 갑옷 같은 뼈 지녀 이름에 ‘甲’
- 뼈 갈아낸 가루는 상처에 특효
- 윤기나는 먹물은 선비들 애용

- 일반 오징어 비해 살 두툼·쫄깃
- 여수 먹물 숙회 들큰하고 고소
- 목포 꼬들꼬들 반건조 구이 진미

경북 경주 감포항 어민 활어센터에 들렀을 때이다. 어부의 아내가 남편이 갓 잡은 갑오징어를 팔면서 “오징어가 보리밥이면 갑오징어는 쌀밥”이라며 너스레를 떠는 것이다. 하기야 보리밥과 쌀밥의 차이는 맛을 아는 이들에게는 찰떡같이 알아들을 비유이기도 하겠다.

이 말에 입맛이 동해서 갑오징어 한 마리를 회로 떠서 먹었는데, 가히 고슬고슬하면서도 고봉으로 푸짐한 쌀밥 한 그릇의 맛이었다. 동해안 어느 따스한 봄볕의 포구에서 물결 글썽이는 바다를 보며 맛보았던 바다의 쌀밥, 갑오징어회 맛은 꽤 오랫동안 맛있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갑오징어 먹물숙회.
■오징어는 국내 80여 종 서식

최근에는 진해 용원어시장에 들리니 큰 고무 대야 수조마다 갑오징어가 가득가득했다. 봄이 익는 4월부터 남해안을 중심으로 잡히기 시작하기에 이즈음부터 제철이다. 4~6월이 씨알이 굵고 맛 또한 좋다.

오징어는 생물분류학 상 두족(頭足)강 십완상(十腕上)목의 연체어류이다. 흔히 두족류, 십완목 어류라고 칭한다. 머리와 다리가 붙어있는 어류들을 두족류라 부르는데, 우리가 주로 접할 수 있는 오징어 꼴뚜기 문어 낚지 주꾸미 등이 이들이다.

갑오징어.
그리고 10개의 발을 가지고 있어 십완목에 속한다. 흔히 우리가 알고 있는 두족류들의 다리는 학술적으로 팔로 분류한다. ‘완(腕)자’가 ‘팔’이라는 뜻인 것만 봐도 알 수가 있다. 이 두족류는 팔완목이 있고, 십완목이 있다. 즉 여덟 개의 팔을 가진 것과 열 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 두족류가 있다는 말이다.

문어 낚지 주꾸미 등이 팔을 8개 가진 팔완목 어족이고, 오징어 꼴뚜기 등이 팔을 10개 가진 십완목 어종이다. 원래 두족류의 팔은 모두 여덟 개다. 십완목 어종들은 이 여덟 개의 팔에 더해서 한 쌍의 촉수를 포함해 10개의 팔을 가지고 있다.

오징어는 전 세계 460여 종이 분포하는데 우리나라에는 80여 종이 서식한단다. 그중 흔히 우리 밥상에 오르는 식재류로는 대표적으로 살오징어 창오징어 화살오징어 흰오징어 꼴뚜기 참오징어 등이 있다.

‘살오징어’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오징어’라 부르는 동해가 주산지인 오징어를 말한다. ‘창오징어’는 제주도 연안을 중심으로 어획되는 ‘한치’를 말한다. ‘화살오징어’ 또한 한치라 부르는데, 창오징어보다 머리 부분이 더 뾰족하고 동해 지역에서 주로 잡힌다.

‘흰오징어’는 ‘무늬오징어’라고 널리 부른다. 흔히 우리가 귀라고 부르는 지느러미가 크게 발달한 어종으로 경남 통영, 전남 여수 인근 등 남해에서 주로 잡힌다.

‘꼴뚜기’는 경남 해안을 중심으로 주로 어획되는데 그 크기가 다른 오징어보다 작다. 경남지역에서는 흔히 ‘호래기’로 불리며 회로 먹거나 젓갈을 담가 먹는다. 그리고 ‘참오징어’는 ‘갑오징어’로 불리는데, 몸에 뼈를 지니고 있으며 몸체가 도톰한 타원형으로 생겼다.

■오징어 먹물로 글 쓰던 선비들

갑오징어회.
오징어는 오래전 ‘오적어(烏賊魚)’라 불렸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 이르면 ‘남월지(南越志)에서 이르기를 ‘그 성질이 까마귀를 즐겨 먹어서 매일 물 위에 떠 있다가 날아가던 까마귀가 이것을 보고 죽은 줄 알고 쪼면 곧 그 까마귀를 감아 잡아가지고 물속으로 들어가 먹으므로 오적(烏賊)이라고 이름 지었는데, 까마귀를 해치는 도적이다’고 하였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두족류들은 대부분 먹물을 가지고 있는데 이 먹물로 포식자들을 피하거나 공격하는 등의 도구로 쓴다. 인간에게 있어 이 먹물은 항암 효과 등 약리적인 활용 가치도 있지만, 옛 사대부가의 선비들에게는 글씨를 쓰는 먹으로 쓰이기도 했다.

특히 오징어 먹물은 진하고 윤기가 나 글씨를 쓰면 일반 먹보다 보기가 더 좋았다고 한다. 그러나 오래되면 그 글씨가 지워져 버리는 단점도 있었다고. 이 때문에 우리나라 최초의 백과사전 격인 이수광의 ‘지봉유설’에서는 ‘오징어의 먹물로 글씨를 쓰면 해를 지나서 먹이 없어지고 빈 종이가 된다. 사람을 간사하게 속이는 자는 이것을 써서 속인다’고 기술하기도 했다.

갑오징어가 여타 오징어와 확연히 다른 점은 몸속에 뼈를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몸통 안에 석회질의 길고 납작한 갑옷 같은 뼈가 있어 ‘갑옷 갑(甲)자’를 따서 갑오징어라는 이름이 붙기도 한 것이다.

이 뼈는 의료용 지혈제로 널리 쓰이기도 했다. 말린 갑오징어 뼈를 곱게 갈아낸 가루를 오적골(烏賊骨)이라 불렀는데, 출혈이 심한 부위에 이 가루를 뿌리면 지혈을 돕는다고 했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도 ‘오적어(烏賊魚, 갑오징어)의 뼈는 상처를 아물게 하는 효능이 있다’고 적혀 있다.

■맛도 활용도도 오징어 중 ‘갑’

갑오징어구이.
갑오징어는 일반 오징어에 비해 살이 두툼하고 식감이 부드러우면서 적당히 쫄깃해 그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감칠맛도 일품이라 살이 달고 그 맛이 아주 짙다. 주로 회나 회무침, 여름에는 물회로도 먹는다.

갑오징어 생물은 숙회로 먹어도 맛있다. 데쳐서 무침으로 먹기도 하고 불고기처럼 볶아서 먹기도 한다. 제철에는 다량으로 잡아서 말려두었다가 두고두고 구워 먹거나 볶고 조려 먹어도 좋다. 요즘은 냉동시설이 좋아 얼려두었다가 다양한 음식으로 조리해 먹기도 한다.

지역마다 여러 음식으로 만들어 먹는데, 개인적으로는 여수 금오도의 ‘갑오징어 먹물 숙회’와 목포의 ‘갑오징어구이’가 기억에 남는다. 금오도에서 지역 음식문화 연구자들과 한 이틀 묵은 적이 있었다. 이때 낭장망으로 어로를 하는 자그마한 배에 동승한 적이 있다.

낭장망 어업은 물살이 센 곳에 긴 자루 모양의 그물을 고정해 놓고 조류에 휩쓸려 오는 물고기를 어획하는 어로법이다. 한 식경 정도 그물을 터는데 갑오징어가 셀 수 없을 정도로 와글와글 들어가 있었다.

이 갑오징어 몇 마리를 민박 주인장이 회로도 떠주고 숙회로도 장만해 주었다. 그중에서도 갑오징어의 새카만 먹물로 범벅이 된 먹물 숙회가 그 비주얼로나 맛으로나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한 점 먹어보니 식감은 부드럽게 씹히면서도 쫀득쫀득 쫄깃쫄깃 버팅기는 탄성이 일품이고, 먹물이 섞인 부분은 들큰하면서 고소하고, 진하면서도 입에 착착 감기는 걸쭉한 ‘먹물 맛’이 그야말로 진미였다. ‘두족류는 먹물 맛’이란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그때 비로소 알았다.

목포에서는 지역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비어 펍’에서 갑오징어구이를 맛보았다. 제철 갑오징어를 다량 구매해 급속 냉동 후, 이를 수요에 따라 해동해 구워서 술안주로 제공하는 것이었다.

반건조 과정을 거쳐서 그런지 아주 진한 감칠맛과, 달곰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기껍기 이를 데가 없었다. 식감 또한 적당히 꼬들꼬들하고 부드러워 남녀노소 부담 없이 먹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일반 건조 오징어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갑(甲)의 맛’이었다.

‘자산어보’에 ‘맛이 감미로워서 회로 먹거나 말려서 포를 만들어 먹으면 좋다’고 소개한 갑오징어. 얇게 썰어 회로도 좋고 데쳐서 갖은 채소와 함께 무쳐 먹어도 좋을 뿐더러, 매운 양념에 볶거나 조려도 좋다. 꾸덕꾸덕 말려서 살살 구워 술안주로도 좋은 갑오징어. 맛이나 활용도나 여러모로 ‘오징어 중에 갑’, 갑오징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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