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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0년전 대문호 이규보(동국이상국집 저자)도 탈모·똥배가 고민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강민경 지음/푸른역사/2만 원

  • 조봉권 기자 bgjoe@kookje.co.kr
  •  |   입력 : 2024-04-25 19:28:52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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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사상·철학산맥서 큰 봉우리
- 평소 詩·술·거문고를 끼고 살아
- 스스로를 ‘삼혹호선생’이라 칭해
- 흥미로운 소재에 그림도 곁들여
- 당시 일상 이야기 상세하게 담아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을 어떻게 끊어 읽어야 하는지 몰랐다는 것을. 수십 년 동안 ‘동국+이상+국집’인 줄 알았다.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저자 강민경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이 책에서 듣고 보니 ‘동국+이상국+집’으로 끊어 읽어야 맞다. ‘고려(동국)의 이씨 성을 가진 재상(이상국=이규보)의 문집(집)’이라는 뜻(28쪽))이다. 그렇다면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는 어떻게 끊어 읽어야 하고 그 뜻은 과연 뭔지 궁금함과 걱정이 한꺼번에 밀려오기는 하지만, 어쨌든 수십 년 오해를 풀어준 강민경 저자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저자 강민경이 그린 삽화. 술병을 든 이가 이규보 선생이다. 푸른역사 제공
이규보(1168~1241)라는 이름은 좀 거대하고 무거운 느낌이 있었다. 한국 사상사·철학사·문학사를 공부하고 말할 때 이규보는 절대 빠질 수 없다. 신라의 원효 스님부터 조선 후기 최한기로 이어지는 한국 사상·철학 산맥에서 이규보는 언제나 우뚝한 고봉준령이다. 이 사람을 빼고는 이야기가 안 되는 분위기다. 게다가 ‘동국이상국집의 동명왕편’이 있다.

이규보 선생이 20대에 당시 문헌·기록·역사를 두루 접하고 썼을 ‘동명왕편’을 ‘동국이상국집’에 넣어놓지 않았다면 한민족 시원을 놓고 얼마나 더 큰 에너지 낭비가 있었을 것이며, 일본·한국의 제국주의 식민사학이 우리 역사를 얼마나 더 잘라 먹고 괴롭혔을지 생각하니 머리가 띵하다.

‘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에서 저자 강민경은 완연히 다른 ‘이규보 접근법’을 선사한다. ‘거대하고 무겁게’가 아니라 경쾌하고 통통 튀고 재미있고 심지어 그림까지 직접 그려 넣어 이 대문호를 우리 곁으로 데려다준다. 이규보 선생과 ‘동국이상국집’을 통해 “800여 년 전 고려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을, 이토록 생동감 있고 새로운 도전을 저자는 해낸다. 그렇다면 일단 이규보와 ‘동국이상국집’에 관해 조금만 더 알아보자.

“이규보는 스스로를 ‘삼혹호선생(三酷好先生)’이라 불렀다. 시와 술, 거문고 세 가지를 좋아하여 끼고 산다는 뜻이었다.… 그는 틈만 나면 시를 짓고 글을 썼다.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시만 해도 2000수가 넘는다. 젊은 시절의 글들을 때때로 불태우곤 했다니 아마 평생 1만 수는 족히 짓지 않았을까 싶다.” “일흔이 넘은 이규보가 병을 얻어 앓아눕자 집권자 최이가 직접 그의 문집을 만들라는 명을 내렸다.… 이에 그의 아들 이함이 부지런히 곳곳에서 아버지의 글을 모아 1241년(고종 28) 8월에 전집 41권을 우선 만들었다(뒤에 후집·後集 12권이 추가됨).”

이렇게 태어난 ‘동국이상국집’은 아주 다양한 면모가 있는데, 그중 800년 전 고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생생하게 알려주는 멋진 타임캡슐이 되어준 점을 책은 잡아낸다. 이규보는 이 책에서 머리가 빠지고 배가 나오는 걸 고민하고, 술 담아 마시는 질항아리를 예찬하며, 곤충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고, 파리를 귀찮아하며, 역사를 논하고, 세태를 풍자하며, 전설과 학문을 이야기한다.

책에서 저자는 조선 후기 유명한 학자 김창협이 이규보의 글 세계를 낮잡았음을 알려준다. 김창협은 이규보의 글이 비루하고 용렬하며 잡되고 자잘하다고 비판한다. 그 시대에는 그렇게 볼 수 있다. 그렇게 비평할 수 있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지금 시대에 들여다보니 아무리 궁리하고 거듭 생각해도, 이규보의 글은 ‘대체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까지 답답하고 꽉 막히며 관념만의 세계에 사로잡힐 수 있을까’ 싶은 수많은 조선 후기 학자들 글과는 비교도 안 되게, 생생하다, 살아있다, 솔직하다, 아름답다, 다양하다, 깊다,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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