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99> 동래 남문비

정발·송상현의 의연한 죽음 등 기록한 비석

  • 김정훈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 학예연구사
  •  |   입력 : 2024-04-29 19:22:25
  •  |   본지 18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인류는 기억하고 잊지 않기 위해 기록을 남겼다. 인류 최초의 기록은 선사시대부터 세계 곳곳에서 확인되는 벽화와 암각화이다.
돌에 새긴 기록은 점차 형태가 정제됐으며, 현재까지 비석의 비문이라는 형태로 이어지고 있다. 비석에 정성스럽게 새겨진 비문은 명확한 목적을 가지고 작성되기 때문에 신뢰도가 높고 역사 자료로 귀하게 사용된다. 그중 오늘 소개할 것은 부산박물관 야외전시관에 전시된 부산광역시기념물 ‘동래 남문비(사진)’다.

부산은 임진왜란 당시 일본군의 최초 상륙지이자 왜군이 가장 오랫동안 주둔한 지역이다. 그만큼 왜란으로 인한 피해도 컸다. 일본에 항전한 인물도 많다. 동래 남문비는 임진왜란이 터졌을 때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선열을 추모하기 위해 1670년(현종 11) 동래읍성 남문 밖에 건립했으며, 여러 차례 자리를 옮기다 부산박물관에서 전시하게 되었다.

부산 지역의 순절 사적(史蹟)을 빼곡하게 새겨 넣은 비문은 서인 세력의 좌장 송시열이 짓고 송준길이 썼다. 비석은 높이 2.25m, 너비 1.21m로 웅장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훼손이 심해 비신(碑身)의 박락이 심하고 비문 일부만 남아있다. 여의주를 입에 문 쌍룡(雙龍)을 새긴 머릿돌도 분리돼 옆에 따로 놓여있다. 다행히 훼손된 비문은 이전에 탁본해 놓은 자료가 있어, 비석의 내용과 형태를 유추할 수 있다.

비문에는 선조 25년(1592) 4월 13일 임진왜란 발발 후 부산진첨사 정발이 용감히 싸우다 전사한 일, 경상좌병사 이각의 비겁한 도망, 동래부사 송상현의 의연한 죽음과 왜병들에 맞선 처절한 전투, 동래부 전체의 순국 충절을 기록하고 비를 건립하기까지의 경위를 밝히고 있다.

비문에는 자랑스럽고 본받을 만한 내용뿐만 아니라 왜란의 수난을 겪었던 조선 조정으로서는 숨기고 싶을 수도 있는 경상좌병사 이각과 관련된 일화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동래 남문비에는 단순히 선열에 대한 추모뿐만 아니라 숨김없는 과거 기록으로 중요한 교훈과 통찰이 후손에게 영원히 전해지길 바라는 선조들의 염원이 새겨져 있다.

비석의 비문은 수정과 삭제가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에서 고민의 시간이 길 수밖에 없고, 그에 비례해 정해진 분량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깊어졌다. 이러한 점에서 비석은 엄청난 역사를 품은 귀한 유물이다. 하지만 비석이 빨래판으로 쓰이다 우연한 계기로 국가유산으로서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는 중원 고구려비를 비롯한 몇 가지 일화는 석조 유산을 대하는 우리 자세를 되돌아보게 한다.

1592년 음력 4월, 부산에서 임진왜란의 비극이 시작되었다. 432년이 지난 만큼 임진왜란 경험을 통해 느낀 바를 후세에 전달하고자 했던 선조들의 염원은 동래 남문비의 훼손된 비문처럼 옅어지고 있는 듯하다. 동래 남문비 내용이 담은 의미를 꾸준히 헤아릴 때 흐려졌던 비문은 다시 온전히 새겨질 수 있을 것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경남 9곳, 1인당 월 15만 원 농어촌 기본소득 쟁탈전
  2. 2창원문화복합타운 매각 불발
  3. 3[사설] 가덕도신공항 착공 늦춘 정부, 공사비 증액 확약하라
  4. 4‘김해공항 최장노선’ 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5. 5‘국민아버지’ 배우 최불암 떠나보내며
  6. 6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 뒷북 안전조치
  7. 7“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8. 8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9. 9[시민기자] 랜드마크 ‘범선형 관광시설’ 북항에 만들자
  10. 10‘창업도시 600억’ 품어라…부산, 해양·금융 앞세워 총력
  1. 1“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2. 2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3. 3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4. 4정치권 “능인선원 경영능력 불합격…국제신문 회생 동의를”
  5. 5이해충돌 빗장 풀려는 시의회…“사익추구” vs “전문성 강화”
  6. 6민주, 5일 조희대 국조요구서 보고…국힘 “탄핵 역풍 맞을까 질질 끌어”
  7. 7국힘 새 당무감사위원장 양준모 교수
  8. 8[속보] 北김여정, 바이낸스 사태에 "美 정치적 도발…예의주시"
  9. 9북한 해커들, 바이낸스서 탈취한 자금 '2차 세탁' 중
  10. 10[와이라노] “한국은 단검” 美 안보청구서 점점 커진다
  1. 1‘창업도시 600억’ 품어라…부산, 해양·금융 앞세워 총력
  2. 2주식 팔면 다음날 돈 받는다…증권시장 결제주기 하루 단축
  3. 3호반, 한진칼 최대주주 기업결합 신고
  4. 4K-팝 열풍 타고 부산관광 키운다…한류산업 진흥 조례 추진
  5. 5“9증9포 독보적 특허 ‘명품 홍삼’…글로벌 1위 도전”
  6. 6“올해 북극항로 이용 150척…역대 최다 전망”
  7. 7[한 손 뉴스] 부산·통영 ‘환경교육도시’로…특화 환경교육 행·재정 지원(종합)
  8. 811월 제철 삼치·가리비 맛보세요
  9. 9올 ‘산소부족 물덩어리’ 완전히 사라졌다
  10. 10팬스타엔터프라이즈, 해운·조선해양 중심 사업구조 재편
  1. 1경남 9곳, 1인당 월 15만 원 농어촌 기본소득 쟁탈전
  2. 2창원문화복합타운 매각 불발
  3. 3‘김해공항 최장노선’ 두바이 직항 내년 열린다
  4. 4영도 포차거리 해상추락 잇따르자 뒷북 안전조치
  5. 5모집 공고만 15차례…부산 보건소도 ‘의느님’ 모시기 진땀
  6. 6오늘의 날씨- 2026년 11월 3일
  7. 7국제사우회 “지광 손 뗄 때까지 함께 싸울 것”
  8. 8김해, 동아시아 람사르지역센터 유치
  9. 9인니 선원 모텔 감금 혐의 경호원들 송치(종합)
  10. 10봉사·일·문화 등 다양한 분야 경험·재능 나눠
  1. 1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2. 2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3. 3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4. 4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5. 5단거리 최강馬 위너클리어 짜릿한 역전승…국제신문배 우승
  6. 6“실책·기복 없어야 강팀…거인 맞춤 훈련 강화할 것”
  7. 7“좋은 젊은 피 많아…잠재력 극대화”
  8. 8삼성, KIA 6-1 꺾고 2년 만에 한국시리즈 진출
  9. 9BNK, 여자농구 개막전 ‘디펜딩챔프’ KB 완파
  10. 10‘친정 팀 복귀’ 이동욱 감독, “기본기 다져 승리하는 팀으로 만들겠다”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송현화-Magic Airs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3일 (음 9월 24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2일 (음 9월 23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이여가 가을 보름달을 바라보며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