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 특별전
- 하인두·박서보·고영훈과 4인전
- 부산 작가론 유일하게 참여 주목
- 환경 주제 발광 대형 드로잉 설치
- 갤러리 오른쪽 외벽 휘감아 눈길
비엔날레가 열리는 기간이 되면 이탈리아 베니스에서는 공식 전시 말고도 곳곳에서 수 많은 특별전이 동시에 펼쳐진다. 지난 20일부터 오는 11월 24일까지 열리는 제6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이탈리아 비영리 문화재단인 콘실리오 유럽 델아르테 파운데이션이 개최한 특별전 ‘한국 현대미술의 정수 :손에서 정신으로의 여정’도 그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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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베니스에 위치한 인파라디소 아트 갤러리 외부에 전시된 정혜련 작가의 작품. 정혜련 작가 제공 |
수많은 행사 가운데 이 전시를 주목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공모에서 한국 현대미술을 주제로 한 기획전이 당선됐다는 점이고, 또 하나는 하인두 박서보 고영훈 등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거장과 더불어 부산 작가 중에선 유일하게 정혜련 작가의 작품이 내걸려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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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혜련 작가가 박정자 배우와 함께 자신의 작품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정혜련 작가 제공 |
베니스 비엔날레 현장에서 막 돌아온 정혜련 작가를 지난 29일 만났다. 정 작가는 ‘입체 드로잉’이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빛과 선으로 공간의 의미를 재해석하는 작업에 주력해 왔다. 2021년부터는 J.H.R이라는 이름의 ‘부캐’로 환경과 기후변화 등을 주제로 한 미디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발광 대형 설치 드로잉을 내놨다. 기후변화 데이터를 바탕으로 환경 문제에 접근하는 그의 작품은 현지 갤러리의 오른편 외벽 전체를 휘감고 있다.
“이번 전시 감독을 맡은 최정주 전 제주도립미술관장에게서 지난해 연락을 받았어요. 야외 작업이 매력적이었고, 저에게 매우 좋은 기회였지요. 모듈을 환경과 지형에 맞게 설치하고 마무리 영상작업까지 하는 데 10일 정도 걸린 것 같아요.”
그가 해외 비엔날레에 초청된 것은 2016년 일본 이바라키현 일대에서 열린 예술 축제(KENPOKU ART) 이후 처음이다. 정 작가는 이번 전시에 대해 “예술에 대한 고정관념을 넘어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시선을 확장시키는 계기가 됐다”며 “장소가 바뀌니 생각도 바뀔 수밖에 없었다. 내 활동 영역의 확장성도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무엇보다 그가 유럽 등 해외로 가는 밑거름이 됐다. 이번 공모 과정에서 정 작가의 작품을 관심 있게 지켜본 한 심사위원의 추천으로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열리는 ‘인터액션 나폴리 2024’에 초청돼 지난달부터 작품을 전시 중이다. 이 행사에 참여한 한국 작가는 정혜련 작가가가 유일하다.
그곳에서 펼친 작품은 이전과는 결이 다른 ‘신작’이다. 그는 이 작품에 대해 “동일한 형태의 모듈이 지형에 맞게 자리를 찾아가는 형식은 이전과 같지만 동시에 고의적으로, 겹겹이 쌓아 올린 것을 긁고 깎아내면서 빛을 찾아가는 점은 다르다. 비정형적인 나무와 화산재가 섞인 드로잉이 같이 들어가서 이전보단 거친 느낌”이라며 “재료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달랐다”고 설명했다. 덧붙여 “나폴리 설치(작품)는 이동이 용이하다. 재료와 모듈의 형식은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기에 이는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번 비엔날레를 계기로 스페인과 영국에서도 ‘러브콜’이 왔다. 유럽의 한 조명회사는 그에게 상업 라이트(조명) 디자인을 의뢰하기도 했다고 한다.
해외 진출의 물꼬를 텄지만 그의 두 발은 여전히 부산에 뿌리 박고 있다. 부산이 좋아 부산에 머무르고, 각종 공모를 통해 지역에서도 전시 기회를 잡아 성장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이번 비엔날레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안국선원 수불 스님의 후원을 받는 등 지역사회의 도움을 체감했다. 올해의 다음 전시도 부산 금정문화회관 금샘미술관 기획전이다. 이렇듯 ‘부산 작가’인 그는 지역은 장벽이 아니라고 했다.
“지금까지는 베니스 비엔날레를 가더라도 미술계 동향 파악 정도만 고려했는데, 기획 과정에 참여해 보니 오히려 장벽이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기회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고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