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튀르키예 작가 쥴퓌 리바넬리
- 실존인 알둘하미드 2세 내세워
- 역사·정치적 상황 소설로 풀어
작가 쥴퓌 리바넬리(78)의 장편소설 ‘호랑이 등에서’는 역사·정치에 관한 모색과 해석, 그리고 상상의 나래를 사방으로 뻗도록 해준다. 자전거 바퀴살의 중심이나 교차로 또는 허브 공항 같은 인상이다. 현대 튀르키예 작가의 작품이라는 점에서 약간 낯설게 느낄 독자도 있겠다. 미국 유럽 일본 중국과 비교하면 튀르키예 문학은 익숙지는 않은 편이다. 그래서 호기심이 더 강하게 동한다. 이 소설은 역사·정치의 표면을 뚫고 이면을 열어젖힌다. 기존 지식이나 판단을 흔들어 버리는 폭발력을 내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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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 제2도시 테살로니키에 있는 레프코스 피르고스(백탑) 전경이다. 오스만 제국 통치 시기 세워졌으며 테살로니키 명물이다. 테살로니키를 주요 무대로 펼쳐지는 ‘호랑이 등에서’에도 이 탑이 언급된다. 위키백과 |
독자는 소설에서 발칸 반도가 왜 세계의 화약고인지 그 뿌리를 비로소 확인할 수도 있다. 열강에 둘러싸여 제 갈 길 잃고 나락에 빠진 조선 말기와 고종 임금을 떠올릴 수도 있다. 고종도 이 소설 주인공인 오스만 제국 말기 황제 알둘하미드 2세와 비슷한 데가 있지 않았을까? 충분히 모색해볼 만한 주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걸작 영화 ‘라쇼몽’을 본 뒤처럼 ‘과연 진실은 뭘까’ 하고 물으며 역사에 관한 깊은 사색에 들어설 수도 있다.
이 책에 ‘독재자는 회고록을 남긴다’는 해설을 실은 소설가 장정일은 ‘호랑이 등에서’의 유일한 주인공으로 오스만 제국(1299~1922) 제34대 술탄 압둘하미드 2세(1842~1918)를 꼽는다.
오스만 제국은 압둘하미드가 제34대 술탄에 즉위할 즈음 최악의 위기 상태에 빠져 있었다. 제국주의 열강은 (원유를 노리고) 쳐들어왔다. 600년에 3개 대륙에 걸쳐 건설한 제국은 ‘세상에서 가장 복잡한 나라’가 되어 분열과 해체가 진행 중이었다. 압둘하미드 2세는 이런 황혼의 제국을 33년 동안 통치했다.
“이교도 국가들은 전 세계 원유의 절반이 매장되어 있는 오스만 제국 영토를 조각낸 다음 원유를 손에 넣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은 없었다. 서구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 내 서른 개가 넘는 민족들을 부추겨서 이 목표에 도달하고자 했다. 제국은 무너지고 있었다.”(194쪽)
“키프로스뿐만 아니라, 오스만 제국 영토 내에 거주하는 모든 터키인, 그러니까 그리스계 터키인, 그리스인, 유대인, 아르메니아인, 쿠르드인, 세르비아인, 몬테네그로인, 불가리아인, 루마니아인, 아랍인, 조지아인, 크리미아인, 왈라키아인, 슬라브계 무슬림, 알바니아인, 보스니아인, 레반트인들도 같은 분위기 속에 있을 게 분명했다.”(121쪽)
이렇게 복잡한 나라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과 분열정책에 따라 해체되다 보니 뒷날 발칸 반도나 중동이 세계 최악 화약고가 된 씨앗은 이때 뿌려졌다. 그런데 압둘하미드 2세는 청년 장교들이 만든 집단에 의해 폐위돼 (지금은 그리스에 속하는) 테살로니키에 유폐된다. 이어, 오스만 제국을 유럽식으로 혁신하기를 꿈꾼 청년 장교 집단에 속한 젊은 군의관 아프트 휴세인이 압둘하미드 2세와 그 가족의 주치의가 된다.
이 젊은 군의관은 당연히 황제에게 증오심을 품고 있었다. 나라를 망친 주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제와 줄곧 이야기를 나누며 그는 부정-혼란 단계를 넘어 판단이 흔들릴 지경까지 간다. 황제가 제국을 어떻게든 지켜내려고 능란한 외교 수완 등을 발휘한 사실에 공감까지 느낀다. 소설은 이와 함께 압둘하미드 2세가 근대적 치료법을 거부하는 모습, 그가 통치할 때 강력히 시행한 언론 통제, 개인 축재 등을 보여주며 ‘큰 방향을 잘못 잡은 전근대 인물’로서 그를 비춘다.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놀랍도록 복잡했던 말기 오스만 제국의 다채로운 역사 에피소드를 펼쳐 보이는 이 작품은 그 자체로 읽는 재미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