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달 8일까지 박영환 작가 ‘흰’
- 흑백구체 통해 기억·감정 표현

하얀 함박눈이 내리는 창밖 풍경 속에 크고, 희고, 둥그런 ‘무언가’가 놓여있다. 때로는 덤불 속, 때로는 숲속이다. 그런데, 창 안에도 역시 크고 둥그런 ‘무언가’가 있다. 이번엔 짙고 검다는 점이 다르다. 이 ‘무언가’는 겨울 풍경 속에 묻혀있는 창밖의 흰 ‘무언가’를 아련하게 바라보는 듯하다.

‘지나기 전엔 알지 못했던’. 맥화랑 제공

박영환 작가에게 있어 구체(球體)는 개인의 기억이자 시간이다. 짙은 색의 구체는 현재의 선명한 기억을 의미하며 상대적으로 밝은 구체는 희미해져 가는 과거의 행적, 추억, 감정이다.

그의 작품은 창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듯한 시점을 취하고 있다. 현재의 ‘나’가 과거의 ‘나’를 보는 셈. 소복하게 쌓여있거나 연방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은 아스라이 사라져가는 과거의 모습을 역설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낸다.

창의 안과 밖의 시점으로 구성된 이중 구조가 아닌 온전히 야외 풍경을 담은 작품에선 시간, 감정을 표현한 그의 감각이 더욱 도드라진다. 원경에서 바라본 눈 덮인 언덕에는 검고 큰 구체와 이에 비해 상대적으로 아주 작고 작은 사람들이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은 때로는 큰 구체를 밀고 있고, 때로는 곁에서 불을 쬔다. 검은 구체가 현재를 의미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사람들은 현재를 함께 살아가는 동반자 관계다. 있을 법한 풍경 속에 놓인 비현실적인 구체는 지극히 낯선 산수화를 완성해 낸다.

흑과 백. 한지에 먹만으로 그린 동양화기법이지만 단조롭지 않은 것은 먹의 다채로움 덕분이다. 그의 먹은 흑(黑), 청(靑), 다(茶)를 분주히 오가면서 흑백의 밋밋함을 덜어냈다. 먹의 밀도를 조절해 채색으로서 먹의 효과를 극대화한 것도 특징이다.

1998년생으로 올해 부산대 미술학과를 졸업한 박영환 작가는 맥화랑이 매년 진행하는 신진·청년작가지원전 맥화랑미술상 8번째 주인공이다. 박영환 개인전 ‘흰’은 다음 달 8일까지 부산 해운대 맥화랑에서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