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통사람 첫 끼 책임졌던 재첩국
- 피란민 허기 달래줬던 꼼장어 등
- 부산의 맛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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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첩국을 팔기 위해 동이를 이고 오는 재첩국 아지매들. 1980년 부산시 사하구청 사진. 문학동네 제공 |
“재치국 사이소!~” 지난 시절 부산의 새벽을 깨우는 소리였다. 맛이 아니라 소리로 기억되는 음식이 부산의 재첩국이다.
부산에 오래 살며 부산 음식을 먹고 자란 인문학자 열네 사람이 부산의 맛에 담긴 역사와 이야기를 풀어낸 책 ‘부산미각’은 재첩국부터 시작한다. 재첩국 복국 돼지국밥 완당 고등어 대구 웅어 꼼장어 낙지 암소갈비 밀면 간짜장 구포국수와 영도 조내기 고구마, 부산오뎅 양갱 동래파전 금정산성 막걸리, 대선소주. 차례로 열거하고 보니,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푸짐하게 차려진 만찬이다.
열네 명 저자를 대표하여 부산대 중어중문학과 최진아 교수는 서문에서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부산을 경험하고 싶은 독자들은 마치 음식을 주문하듯이 ‘부산미각’의 차림표를 보며 이 책을 맛보아주면 된다”고 썼다.
부산은 육지의 끝이며, 바다의 시작이다. 따라서 역사적으로 부산은 대륙과 해양의 관문이었다. 부산을 통해 한·중·일은 물론 동남아, 유라시아 문화가 교류했다. 그 역사는 음식에 고스란히 남았다. 이국이 만나고 변모한 부산의 흥미로운 역사, 전쟁의 파고를 헤쳐온 평범한 사람들의 힘찬 생명력, 이 모든 이야기가 부산에서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음식에 담겨 있다.
재첩국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재첩국 아지매들의 소리는 학창 시절의 알람이었다. 잠자리에서 발딱 일어나 학교 갈 준비 하라는 정겨운 잔소리 같았던, 구성진 목청의 재첩국 아지매 얼굴이 늘 궁금했던 시절이 있었다. 부산 사람의 공통 기억일 것이다. 낙동강 하구에서 캔 재첩으로 만든 재첩국은 보통 사람의 첫 끼로, 새벽 배송의 원조(?)다.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낙동강 하류는 맛있는 재첩이 자라기에 좋은 환경이었고, 당일 건져 올린 싱싱한 재첩으로 끓인 국을 새벽마다 기다리는 대도시 부산이 있었고, 재첩국 동이를 이고 골목 끝 집까지 다니던 부산 아지매들이 있었다. 부산 재첩국이 전국적으로 유명했던 이유이다. 환경이 오염되면서 흔하게 먹던 재첩국은 점차 사라졌다. 아쉽고 그리운 부산의 맛이다.
꼼장어도 흥미롭다. 꼼장어를 본격적으로 먹은 건 근대로 접어들면서이다. 일제강점기 일본인은 꼼장어의 부드럽고 질긴 껍질로 나막신 끈이나 모자 테두리를 만들고, 고기는 버렸다. 배고픈 조선인은 그 고기를 구워 먹었다고 한다. 우리 역사의 아픈 기억이 밴 음식인 꼼장어는 한국전쟁 때는 살기 위해 부산으로 피란 온 피란민의 배고픔을 달래주었다. 일본이 떠난 뒤에도 부산은 꼼장어 피혁 가공업 중심지였다. 껍질 벗긴 고기로 만든 음식은 멋지게 살아남았다. 지금은 자갈치시장 별미다.
책을 읽는 동안 부산 맛을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든다. 다른 지역에서 사는 부산 사람이 읽으면 당장 부산으로 향하고 싶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