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소멸한 세계를 애도하며

‘더 원더스’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4-08-08 19:38:19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행복한 라짜로’(2018)에서 보았듯 알리체 로르바케르는 네오리얼리즘으로 표상되는 고전기 이탈리아 시네마의 충실한 계승자이다. 꾸밈없는 시골과 바다에서의 삶, 지중해의 문화적 전통은 이탈리아 영화의 큰 밑천이요 자산이 아닐 수 없는데, 칸영화제 심사위원대상을 안긴 ‘더 원더스’(2014)에서도 지역의 고유한 색채는 도저하게 묻어난다.
영화 ‘더 원더스’의 한 장면.
감독이 줄곧 고집하는 16㎜ 필름의 고색창연한 질감은 현대 배경이지만 과거를 보는 것과 같은, 회화적이면서도 시간성이 증발해 버린 진공 세계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이제는 존재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했고 그러기에 한 소녀에게는 추억으로 살아있을, 감독 본인의 자전적 시공 속으로 관객을 초대한다.

에트루리아 문명이 ‘키메라’(2023)의 중심 소재였던 것처럼, ‘더 원더스’의 기본 이야기는 그 지역에 전해오는 오래된 동화의 변주로 보인다. 시골의 가난한 농부 가족은 큰딸의 노동에 기대 근근이 생계를 꾸려가고, 가장 역할을 떠맡은 큰딸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요정에게 도움을 청한다. 젤소미나(알렉산드라 마리아 룽구)와 TV 프로그램 ‘전원의 기적’ 진행자 밀리 카테나(모니카 벨루치)의 관계는 동화 구도와 정확히 포개진다. 외부 영향에서 단절된 채 살던 가족은 경제 위기에 직면하고, 딸은 지역농산물 경연에 참가해 상금으로 난관을 타개하려 한다.

시칠리아 어촌 현실을 담은 루키노 비스콘티의 ‘흔들리는 대지‘(1948), 소작농의 험난한 삶을 급진적으로 다룬 에르만노 올미의 ’나막신 나무‘(1978)가 전반적인 내용과 형식을 결정지은 큰 바탕이라면, 여기에 페데리코 펠리니 후기작의 마술적 환상성이 덧대어진다. 뜬금없이 던져진 마당 한 가운데의 낙타는 ’아마코드‘(1973)의 눈 내리던 날 마을 광장에 출현한 공작을, 동굴에서 벌어지는 경연대회 시상식의 번들거리는 조명과 미술은 고대 로마의 방종과 타락상을 표현주의적 자유의 알리바이로 써먹은 ’사티리콘‘(1969)을 연상시킨다.

독일계 아버지는 도시화를 거부하고 종래 방식을 고집하는 완고한 시골 사나이지만, 사춘기에 접어든 소녀에게 바깥에서 도래한 신문물의 화려함은 동경과 매혹으로 다가온다. 벌을 키우고 꿀을 얻는 걸 업으로 삼는, 엄격한 전통적 가부장제와 고된 노동의 척박하고 궁상맞은 현실이 다큐멘터리의 카메라로 포착한 네오리얼리즘 영역이라면, 로케이션 촬영지에서 신화 속 여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 밀리 카테라와 TV 프로그램 제작진의 상업적 마케팅은 머잖아 밀어닥쳐 지역을 잠식할 자본주의 물결, 풍요와 번영의 환상으로 대비를 이룬다. 그리고 젤소미나는 살아온 터전 너머 다른 세계로 넘어가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희비(喜悲)가 엇갈리는, 서부극마저 떠올리게 하는 계승과 단절의 역사법칙이 있다. 젤소미나는 밀리 카테나의 가발을 건네받으며 상징적으로 자본주의와 도시화에 포섭되겠지만, 가업을 이어받을 아들이 없는 아버지의 촌 동네는 농약에 중독돼 죽은 벌처럼 소멸하고야 말 것이다. ‘더 원더스’의 심층에 깔린 정서는 지나간 한 시대의 멸망에 대한 쓸쓸한 회고, 그리고 깊은 애도(哀悼)이다. 언젠가 돌아가 품에 안길 수 있는 공동체의 자리, ‘돈으로 살 수 없는’ 어떤 것의 세계는 언제까지 남아있을 수 있을지를, 영화는 묻는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3. 3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4. 4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5. 5“끝내 알 수 없었던 어머니 마음…그 알 수 없음이 인간이죠”
  6. 6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7. 7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8. 8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9. 9“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10. 10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1. 1국회의원 112명 서명…원내 주요 5개 정당 동참
  2. 2김민석 “신천지 與 입당 증거 없다” 사과(종합)
  3. 3李 “집값 놀라울 정도로 하락…통계 제대로 알려야”
  4. 4정계 “지역언론 독립·공공성 훼손없게 계속 관심을”
  5. 5국힘 신임 부산행복연구원장에 오경은 전 구의원
  6. 6시의회 상임위 제한 폐지 논란일자 결국 심사 보류
  7. 7美 중간선거 시작, 우주서도 투표는 계속된다
  8. 8“지방주도 성장 33조 투자…공공기관 이전 내년 착수”
  9. 9정파·지역도 초월…‘국제신문 회생’ 국회 팔 걷었다
  10. 10국힘 “가덕 건설 의지 없는 정부…공사비 증액 확약해야”
  1. 146년 감속기 외길…ICT 입힌 액추에이터 개발 성공
  2. 2부산 매출액 돛 달아준 ‘해운 빅3’…6년 만에 전국 기준 100대 기업도(종합)
  3. 3“부산 해양수도·북극항로 육성, 선원 역할 중요”
  4. 4한진칼 주식 더 사는 조원태…호반과 지분경쟁 2R
  5. 5[증시와이드] 불확실성 커진 증시…우량주 중심 냉정한 대응을
  6. 62050년 중간저장시설·2060년 영구시설…정부, 방폐물 관리 3차 계획안 여론 수렴
  7. 7석유류·공업제품값 ‘고공 행진’ 지속…부산 10월 물가상승 4개월만에 최고(종합)
  8. 8‘반도체 소부장’ 원익 공채에 1만2000명 몰려
  9. 9한양증권도 털렸다…고객·임직원 정보 일부 유출
  10. 10주가지수- 2026년 11월 3일
  1. 1축제 때도 도개 못 한 영도대교…한 달째 원인불명
  2. 2청년도 “국제신문 지키자”…대학가로 지지 확산
  3. 3반려견 비비탄 학대 20대들 징역 8개월(종합)
  4. 4“북항개발 市-BPA 방향 같아…돔 아레나 규모 등 협의할 것”
  5. 5에코델타에 유치원·초·고교 추가 신설
  6. 6해군 3600t급 디젤잠수함 ‘서희함’ 진수
  7. 7첫 공소청 수장 후보, 이정현·박철우·예세민 물망(종합)
  8. 8면세유 23억 원어치 빼돌린 유통업자 집유
  9. 9수능 ‘AI 안경 커닝’ 막는다지만…전문 탐지기 없어 실효성 의문(종합)
  10. 10141개 시민단체도 노동계도 ‘국제신문 회생’ 인가 촉구
  1. 1레이예스 맑음…이이무라 흐림…‘로·비’ 안갯속
  2. 22027 아시안컵 내년 12월로 연기…차기 감독 선임 여유
  3. 3MLB 애틀랜타 김하성, 퀄리파잉 오퍼 못 받아
  4. 4KLPGA 상금왕·대상 놓고 ‘림-솔(서교림·김민솔) 대전’
  5. 5김지율, 고교 최동원상 수상…부산고 하현승 아쉽게 고배
  6. 6박항서 향해 “김치맨”…태국 관중들 인종차별
  7. 7BNK 개막전 첫 승…두터워진 선수층 빛났다
  8. 8[뭐라노] 롯데가 스마트 야구를?
  9. 9체력 비축한 마법사, 타선 폭발한 사자…누가 웃을까
  10. 10동의과학대학교,‘제1회 부산지역 전문대학 유학생 축구대회’ 준우승
우리은행
얼굴에 담긴 이야기
자연에는 길흉이 없다
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비밀이 사라진 섬, 농담으로 건네는 회한
응원하고 함께하는 마음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커넥티드’…9.5 대 1 뚫은 신인 작가 10팀 한자리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아이마다 다르게 자라는 이유 外
실크로드 연구자이자 간첩 ‘깐수’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노력과 성공은 비례하는가…현대사회 씁쓸한 이면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장 마리 해슬리-Gymnopedies(짐노페디)
배미정-나무에 기대어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곰 두 마리 /황인숙
시간이 지나고 보니 /설상수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누적 250만 넘은 ‘치이카와’ 4주째 1위…브래드 피트 ‘하트 오브 비스트’ 2위
‘치이카와’ 3주째 정상…관객 200만 돌파 올해 열 번째 영화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4일 (음 9월 25일)
오늘의 운세- 2026년 11월 3일 (음 9월 24일)
오늘의 BIFF [전체보기]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4일
오늘의 BIFF- 2026년 10월 13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깊어가는 가을에 밤하늘 별을 읊은 이덕무의 시
조선 중기 문신 김인후가 소쇄원 단풍을 읊은 시
  • 국제신문 골프대회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