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하드보일드 껍데기를 쓴 멜로드라마

‘리볼버(2024)’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4-08-22 18:57:20
  •  |   본지 13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형사는 곤경에 처해있다. 범죄조직 뒤를 봐주던 그의 이름이 용의선상에 오르자, 전모가 밝혀질 것을 염려한 일당은 모든 혐의를 홀로 뒤집어쓸 것을 제안한다. 대가는 7억 원과 아파트 한 채. 2년 형기를 마친 형사는 바깥 공기를 쐬지만 마중 나오는 사람도, 약속된 보상도 없고 남은 건 쥔 것 없는 빈손과 비리를 저지른 전직 경찰이라는 낙인뿐이다. 꼬리 자르기를 당했다는 걸 깨달은 그는 받아야 할 몫을 되찾고자 나선다. 구식 리볼버 권총 한 자루를 허리춤에 찔러 넣은 채.
오승욱 감독 ‘리볼버’ 한 장면.
‘리볼버’의 줄거리는 평범하다. 큰 틀에서 보면 ‘포인트 블랭크’(1967) ‘찰리 배릭’(1973) ‘차이나타운’(1974) 같은 하드보일드 범죄극을 신흥 아파트 개발지역이라는 한국 배경에 여성 주인공 판으로 바꾼 것 아닌가 싶어진다. 오승욱 감독의 놀라운 점은 이처럼 낡은 플롯의 각본을 쥐고 예상과 전혀 다른 결의 영화를 만들어낸다는 데 있다. 이건 늑대의 가죽을 뒤집어쓴 양, 필름느와르의 탈을 뒤집어쓴 멜로드라마이다. 통속적인 장르의 흥분과 쾌감을 걷어낸 자리에는, 파도가 휩쓸고 간 해변에 뻐끔거리는 소금거품처럼 씁쓸하고도 애잔한 인물의 감정과 무드만이 오롯이 남는다.

하수영(전도연)의 일차 동기는 받기로 한 돈과 아파트다. 이걸 얻기 위해선 감옥에 있는 동안 몰랐던 임석용(이정재)의 행적과 그의 석연찮은 자살에 얽힌 진실을 풀어야 한다. 돈과 아파트는 극을 끌고 가기 위한 핑계이자 구실에 지나지 않고, 어느 순간부터 더는 중요치 않아 진다. 수영은 “내 마음에서 썰물처럼 다 빠져나왔다”는 말로 석용에 대한 감정을 다 정리했다지만, 실은 전혀 그렇지 않음을 은연중 직감하게 된다. ‘한밤의 암살자’(1967)의 알랭 들롱이 그랬던 바처럼, 전도연은 감정의 군더더기를 덜어내고 과묵한 인물로 하수영을 건조하게 연기하지만, 그러기에 관객은 도리어 무표정의 이면에서 예민하고 복잡한 감정의 물결이 요동치고 있음을 읽어내게 된다.

진실을 찾는 전직 형사 수영의 여정은 세상에서 지워져 버린 자기 존재를 되찾는 과정이면서, 한 편으로 이미 강을 건너버려 영영 돌아올 수 없게 된 그 사람의 진심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의 추적이 된다. 죄를 저지른 비루한 인간, 속물에게도 그 안에 조금은 고결함이 있기 마련이다. 진흙탕에서도 연꽃은 피듯, 가장 속(俗)된 밑바닥에서 일말의 성(聖)스러움은 있으며, 비록 미약하지만 그러하기에 더없이 감동적일 수 있다. ‘리볼버’는 ‘무뢰한’(2015)에 이어 다시, 상이한 것의 충돌에서 사람다움의 온기를 찾는 오승욱식 휴머니즘 성격을 드러내 보인다.

옛 상사 민기현(정재영)이 선뜻 권총을 내주는 건 도움이 아닌, 살인이라는 더 큰 죄를 짓고 추락해버리라는 독이 든 사탕에 가까운 것이다. 함정임을 영민하게 알아챈 수영은 궁지에 몰리기까지 방아쇠를 당기지 않고, 누구도 죽이지 않은 채 사건을 종결한다. 선을 넘지 않고 가능한 폭력 묘사를 절제하려는 ‘리볼버’의 영화적 품위에서 나는 복수의 당위성을 업고 유혈낭자하고 자극적인 이미지 전시에 거리낌 없는, 오늘날 한국영화의 윤리적 퇴락에 대한 묵직한 경고를 본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재수 금품수수 의혹 증거인멸 前 보좌진 4명 유죄…1명 법정구속
  2. 2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3. 3위용 드러낸 기장촬영소…부산 대작영화 길 열렸다
  4. 4檢, 횡령 혐의 사상구 새마을금고 이사장 9개월 만에 ‘늑장 기소’
  5. 5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6. 6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7. 7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8. 8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9. 9부산서 키운 대서양연어 첫 출하…“수입산 대체”
  10. 10“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1. 1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2. 2“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3. 3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4. 4[속보] 김여정, ‘DMZ 북한 지뢰’ 발표 전면부인…“서울의 자작광대극”
  5. 5예상보다 무뎠던 검증 칼날…TP원장 후보 기술고도화 초점
  6. 6軍 “향후 발생 상황 모든 책임 전적으로 北에…책임있는 조치 강력 촉구”
  7. 7유엔사 “DMZ 지뢰 폭발, 정전협정 위반 판단”
  8. 8“北 김주애 후계 내정자 입지 강화…키 160cm·몸무게 50kg 이상”
  9. 9‘핵잠수함 특별법’ 국무회의 통과(종합)
  10. 10與 “미래기금으로 지방정부 지원 축소될 일 없어”
  1. 1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2. 2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3. 3부산지역 건축물 노후화 심각… 63.3%가 지은 지 30년 이상
  4. 4삼정기업·삼정이앤시 회생계획 법원 인가…정상화 첫발(종합)
  5. 5亞·유럽게임 대거 참가…지스타 판 커진다
  6. 6부전~마산 복선 전철 터널 붕괴 원인 조사 기간 7주간 연장
  7. 7공정위, 5개 항공사의 부산~괌 노선 공급 좌석 축소 요구 거부
  8. 8정부 '발전 5사 통합준비委' 발족…내년 10월 단일법인 출범
  9. 9도토리 숲 언덕서 ‘휴식 한 모금’…바리스타과 겸임교수 깊은 손맛
  10. 10해양·AI 중심 ‘플라이아시아’ 내달 개최
  1. 1전재수 금품수수 의혹 증거인멸 前 보좌진 4명 유죄…1명 법정구속
  2. 2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3. 3檢, 횡령 혐의 사상구 새마을금고 이사장 9개월 만에 ‘늑장 기소’
  4. 4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5. 5부산서 키운 대서양연어 첫 출하…“수입산 대체”
  6. 6영도구 문화도시 사업, 간부간 소송다툼도 확인
  7. 7혈세 쓴 도시재생 거점시설 2년간 텅텅
  8. 8부산·울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6명뿐
  9. 9교실로 들어온 ‘북극항로’…지구본 만들며 배워가요
  10. 10윤산터널 돌발상황, AI 실시간 감지
  1. 1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2. 2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3. 3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중국에 역전승 거두고 결승 진출
  4. 4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5. 5고성군, 통영시 거제시와 손잡고 2029년 도민체전 공동개최
  6. 6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7. 7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8. 8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9. 9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10. 10‘세계 최강’ 안세영, 배드민턴 女단식 금메달…아시안게임 첫 2연패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日 70년史부터 ‘올나잇’ 상영회까지…애니 세계로 초대
미리보는 제31회 BIFF
연상호 ‘실낙원’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등 한자리에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자현-꾸지 않는 꿈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일 (음 8월 21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30일 (음 8월 20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