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별·혐오와 싸운 삶의 기록
“뇌성마비아, 아주 경한 정도입니다.” 아무렇지 않은 듯, 별문제 아닌 듯 가볍게 말씀하셨다. “성인이 될 때까지 꾸준히 운동을 해 주면 많이 좋아집니다. 언어 장애나 다른 장애는 없는 것 같지만, 지능은 지금 진찰이 되지 않으니 네다섯 살이 되면 그때 검사하세요.” 분명히 하늘이 캄캄해질 정도로 놀라야 하는데 그저 멍하니 형수만 바라보았다.
 |
| 2024년 가을의 김형수 씨(왼쪽)와 어머니 이순희 씨. 빨간소금 제공 |
‘50년생 이순희의 육아일기-통곡하고 싶었지만’의 일기 한 대목이다. 아들이 장애아라는 이야기를 의사에게 듣는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 상상하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대표의 어머니 이순희가 쓴 일기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아들을 키우며 차별과 혐오와 싸운 삶과 생활의 기록이다.
이순희는 1950년 울산 울주군에서 태어났다. 부산에서 중고등학교를 마쳤다. 서울에 가 전자 회사에서 근무했고, 오빠 친구와 결혼했다. 스물세 살에 첫째를 낳았다. 둘째 아들 형수는 뇌성마비 판정을 받았다. 두 아들을 키우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꽃꽂이를 놓지 않았다. 인생 후반부에는 사회복지 분야로 관심을 돌려, 현재 주로 여성 장애인 가정을 지원하는 홈헬퍼 노동자로 일한다.
1975년 10월 28일, 형수를 낳으면서 시작한 일기에는 스물다섯 살 여성이 부산에서 아들 둘을 키우면서 겪은 하루하루가 담겼다. 형수의 목발 때문에 버스 타는 것이 불가능한데 택시는 매번 잡히지 않았다. 형수를 특수학교 대신 일반 학교에 보냈고, 운동회와 소풍에도 꼭 참여했다. 뇌성마비 정보를 얻을 곳은 병원이나 물리치료실뿐이었다. 보조기를 여러 차례 바꿨지만, 국가의 보조를 받지 못했다. 이순희는 병원에서 배워 집에서 물리치료, 작업치료를 직접 했다. 아이의 행동과 발달을 돕기 위해 쏟은 애정 어린 어머니의 노력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한다.
어머니는 통곡하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아니라 시대 앞에서 절망했고, 온통 아들로 가득했던 세상을 자신으로 채워나갔다. 그 힘으로 다시 세상과 싸웠다. 고통을 숨기지 않았고, 침묵하지 않았다. 이 일기에 세상이 흔히 바라는 성공 스토리는 없다. 형수는 여전히 목발 없이 걷지 못하며, 이순희가 유명한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하지만 모자는 환하게 웃으며 이 일기를 마무리한다. 책 마지막 장에 2004년 가을에 찍은 어머니 이순희와 아들 김형수의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