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산메디클럽

[조재휘의 시네필] 살기 위해 죽는 삶, 지구적 관점으로 승화

룸 넥스트 도어

  • 조재휘 영화평론가
  •  |   입력 : 2024-11-07 19:04:33
  •  |   본지 14면
  • 글자 크기 
  • 글씨 크게
  • 글씨 작게
‘룸 넥스트 도어’(2024)로 유럽을 떠나 처음으로 미국에서 (그리고 드물게 원작 소설이 있는) 영화를 작업했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개성은 퇴색함 없이 여전하다.
‘룸 넥스트 도어’의 한 장면. 공식 홈페이지 제공
‘페인 앤 글로리’(2019)와 ‘패러렐 마더스’(2021)에 이어 어느덧 일흔을 넘긴 노장의 작품에는 갈수록 점점 죽음과 불안, 회한과 근심의 그림자가 짙어져가지만, 의상과 인테리어의 현란한 색감과 모던한 디자인이 자아내는 시각적 풍부함, 그리고 반복되는 특유의 멜로드라마적 구도와 모티브는 바다 건너서도 알모도바르가 여전히 본인의 색채를 잊지 않았음을 증명한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잉그리드(줄리안 무어)는 한동안 연락이 끊긴 종군기자 친구 마사(틸다 스윈튼)의 병환이 위중함을 알게 되고 문병을 간다. 영화는 말기 암환자로 투병 중인 마사가 몰래 자신의 안락사를 계획하고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함께 보낼 동무로 잉그리드를 끌어들이는 과정을 다루면서 틈틈이 두 사람의 개인사를 들추어낸다. 그런데 레토릭이 다분히 알모도바르답다. 준비되지 않은 채 어머니가 돼 딸 미셸에게 버림받고 차가운 애증의 대상이 된 마사의 처지는 ‘하이 힐’(1991)과 ‘귀향’(2006) ‘줄리에타’(2016)의 망가진 모녀 관계를, 사회적 시선의 감시를 피해 금기를 범하면서 자신의 욕망에 솔직하고 충실하려는 소수자에 대한 연민과 관능에 대한 이해는 ‘그녀에게’(2002)와 ‘나쁜 교육’(2004)을 떠올리게 한다.

뜨거운 감자일 법한 안락사는 영화의 중심 소재가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주제를 위해 동원된 도구에 가깝다. 동성애 불륜 신성모독 페티시즘…. 경력 내내 온갖 자극적인 소재를 끌어들여가며 법과 시스템, 정상적 사회규범의 부르주아적 위선을 비꼬고 모욕해 온 이 무정부적 허무주의자의 괴팍한 이면에는 관객에게 화두를 던지고 풍자를 통해 진정으로 인간적인 삶, 자유와 행복이 무엇인가를 되묻고 깨닫게 하려는 윤리적 열망이 자리하고 있었다.

알모도바르의 영화 속 여성들은 늘 죽음과 밀접해있고 불운과 비극적 사건을 겪으면서 통념을 넘어 다른 각도에서 세상과 삶을 바라보는 통찰의 시선을 갖게 되는데, 보스니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의 전장을 돌아다니며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시로 드나든 마사 역시 그러한 인물의 계보에 한 줄을 보탠다.

알모도바르의 영화에서 모성(母性)은 언제나 중요한 테마이다. 모녀는 서로를 사랑함과 동시에 증오하며, 떠나간 딸은 언젠가 자신의 근원, 돌아와야 할 고향이자 상징적 자궁인 어머니의 자리로 돌아와 다음 세대의 어머니가 됨으로써 삶은 계승되고 역사가 된다. ‘패러렐 마더스’에서 두 여성의 미시적인 개인사가 집단의 거시적 역사와 분리되지 않음을 이야기했던 감독은 ‘룸 넥스트 도어’에선 암으로 죽어가는 마사의 처지를 기후변화로 종말을 예감케 하는 지구 환경이라는 대지모(大地母), 또 다른 ‘어머니’의 상황과 대응시켜 전 지구적 차원으로 비약시키며 그 의미를 강화한다.

파국을 목전에 둔 우리에게 필요한 건 공포에 굴복해 무기력해지지 않고, 마사가 그랬듯 가능한 유쾌하게, 가치 있게 남아있는 나날을 살아내는 일일 것이다. 스피노자도 ’에티카’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자유인은 죽음 같은 것에 대해서는 생각지 않으며, 그의 지혜는 죽음에 대한 것이 아니라 삶에 대한 숙고이다.”
ⓒ국제신문(www.kookj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제신문 뉴스레터
국제신문 네이버 뉴스스탠드 구독하기
국제신문 네이버 구독하기
뭐라노 뉴스

 많이 본 뉴스RSS

  1. 1전재수 금품수수 의혹 증거인멸 前 보좌진 4명 유죄…1명 법정구속
  2. 2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3. 3위용 드러낸 기장촬영소…부산 대작영화 길 열렸다
  4. 4檢, 횡령 혐의 사상구 새마을금고 이사장 9개월 만에 ‘늑장 기소’
  5. 5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6. 6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7. 7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8. 8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9. 9부산서 키운 대서양연어 첫 출하…“수입산 대체”
  10. 10“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1. 1北지뢰 1발 추가 발견…대북 방송 재개 등 상응조치 촉각(종합)
  2. 2“통합 논의 항만公 정부 지분, 지자체로 넘겨야”
  3. 3새 광역단체장 재산 1위 김상욱 50억…전재수 6억(종합)
  4. 4[속보] 김여정, ‘DMZ 북한 지뢰’ 발표 전면부인…“서울의 자작광대극”
  5. 5예상보다 무뎠던 검증 칼날…TP원장 후보 기술고도화 초점
  6. 6軍 “향후 발생 상황 모든 책임 전적으로 北에…책임있는 조치 강력 촉구”
  7. 7유엔사 “DMZ 지뢰 폭발, 정전협정 위반 판단”
  8. 8“北 김주애 후계 내정자 입지 강화…키 160cm·몸무게 50kg 이상”
  9. 9‘핵잠수함 특별법’ 국무회의 통과(종합)
  10. 10與 “미래기금으로 지방정부 지원 축소될 일 없어”
  1. 1서울대 경영동아리 출신 카르텔, 미공개 정보로 200억 부당이득
  2. 2충북 11.9% vs 부산 2.3%…반도체가 가른 경제성장률(종합)
  3. 3부산지역 건축물 노후화 심각… 63.3%가 지은 지 30년 이상
  4. 4삼정기업·삼정이앤시 회생계획 법원 인가…정상화 첫발(종합)
  5. 5亞·유럽게임 대거 참가…지스타 판 커진다
  6. 6공정위, 5개 항공사의 부산~괌 노선 공급 좌석 축소 요구 거부
  7. 7부전~마산 복선 전철 터널 붕괴 원인 조사 기간 7주간 연장
  8. 8정부 '발전 5사 통합준비委' 발족…내년 10월 단일법인 출범
  9. 9도토리 숲 언덕서 ‘휴식 한 모금’…바리스타과 겸임교수 깊은 손맛
  10. 10해양·AI 중심 ‘플라이아시아’ 내달 개최
  1. 1전재수 금품수수 의혹 증거인멸 前 보좌진 4명 유죄…1명 법정구속
  2. 24시간 쫓고 쫓긴 ‘부캉이 퇴거’ 작전…주말 그물로 재시도(종합)
  3. 3檢, 횡령 혐의 사상구 새마을금고 이사장 9개월 만에 ‘늑장 기소’
  4. 4첫 공소청 인사…부산광역청장에 이종혁 고검장
  5. 5부산서 키운 대서양연어 첫 출하…“수입산 대체”
  6. 6영도구 문화도시 사업, 간부간 소송다툼도 확인
  7. 7혈세 쓴 도시재생 거점시설 2년간 텅텅
  8. 8부산·울산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6명뿐
  9. 9교실로 들어온 ‘북극항로’…지구본 만들며 배워가요
  10. 10부산 동아대 인근 도로서 싱크홀 발생…노후 상수도관 누수 원인
  1. 1역시 안세영…AG 2번째 ‘금빛포효’(종합)
  2. 2아시안게임 남자축구, 중국에 역전승 거두고 결승 진출
  3. 3공격에 쏟아붓다가 골문 열린 모레노호
  4. 4일본 대회운영 왜 이러나…한국 육상 남자 400m 계주, 판정 논란 딛고 동메달 지켰다
  5. 5고성군, 통영시 거제시와 손잡고 2029년 도민체전 공동개최
  6. 69회 4실점 진땀…롯데, 키움에 가까스로 승리
  7. 7한동희 시즌 23호 홈런 '쾅'…롯데, 키움에 4-2 역전승
  8. 8큰 日날 뻔한 韓야구…日 아마추어 상대로 3-1 설욕전
  9. 9큰 日낸 女핸드볼…결승서 일본 꺾고 8년 만에 우승
  10. 10중국에 두 번 진 이민성호, 이번엔 벼른다
우리은행
미리보는 제31회 BIFF
日 70년史부터 ‘올나잇’ 상영회까지…애니 세계로 초대
미리보는 제31회 BIFF
연상호 ‘실낙원’ 홍상수 ‘눈 둘 데가 없네’ 등 한자리에
궁리와 시도 [전체보기]
노동 운동부터 계엄까지…예술로 사회문제 비추다
비바람 견뎌낸 그의 회화…마침내 ‘고정관념 감옥’서 해방
김민우의 인서트 [전체보기]
사랑이 불가능한 시대의 가능한 사랑
환상이 불러일으킨 파국
문화레시피 [전체보기]
‘부산 발레’ 낙동강 타고 새 물길 열다
붉은 빛 조명, 배우·합창단의 호연…눈앞에 다가온 부산오페라하우스
박현주의 신간돋보기 [전체보기]
익숙한 물건에 깃든 삶의 온기 外
인간 빈자리 차지한 반려 로봇 外
박현주의 책 이야기 [전체보기]
히말라야 빙하 붕괴로 대참사…더 심각해진 기후 재난
세계유산 ‘한국의 갯벌’ 얼마나 알고 있나요
아침의 갤러리 [전체보기]
박자현-꾸지 않는 꿈
장승택-ayered Painting P60-11
이 한편의 시조 [전체보기]
기다림의 미학 /윤종순
빨래 /심여혜
주말 영화 박스오피스 [전체보기]
추석 연휴 ‘암살자(들)’ 정상…2위 ‘타짜: 벨제붑의 노래’
‘인턴’, ‘오디세이’ 제치고 정상…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예매율 1위
오늘의 운세- [전체보기]
오늘의 운세- 2026년 10월 1일 (음 8월 21일)
오늘의 운세- 2026년 9월 30일 (음 8월 20일)
조해훈의 고전 속 이 문장 [전체보기]
할아버지·아버지·본인·아들까지 정쟁으로 죽은 김제겸의 글
아침 산안개를 읊은 조선 전기의 문신 월헌 정수강
  • 맘편한 부산
  • 부산국제마라톤
  • BNK생명나눔챌린지
  • 유콘서트
걷고 싶은 부산 그린워킹 홈페이지
국제신문 대관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