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활은 늘 한민족의 상징이었다. 삼국시대 유적을 발굴하면 심심치 않게 확인되는 것이 화살촉이며, 주몽과 이성계는 활을 잘 쏘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기도 한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활쏘기가 남녀노소 예의를 익히는 심신 단련의 장이기도 하였으며, 무과 시험 7개 과목 중 4개 이상이 활과 관련된 시험이었다. 한민족에게 활은 무기 그 이상의 의미를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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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기장군 고촌리 생활 유적에서 나온 화살통. 상태가 좋아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로 평가된다. 부산박물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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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늘 가는 데 실 간다’는 말이 있듯이 활을 보면 단연 화살통이 떠오를 것이다. 천하의 주몽도 화살통 없이는 화살을 휴대할 수 없었을 것인데 오늘 독자들에게 풀어놓을 유물이 바로 활의 영원한 단짝, 화살통이다. 화살통은 나무나 천 등의 유기질로 만들기 때문에 잘 남아 있지 않다. 그런데 2008년 고촌 택지개발사업지구에서 조사된 기장군 고촌리 생활 유적은 저습지 유적이라 목기 칠기 등 유기질의 유물들이 많이 확인되었는데, 그중 상태가 매우 좋은 화살통이 출토되었다. 화살통은 전국적으로 출토량이 많지 않기에, 고촌리 생활 유적에서 출토된 화살통은 역사적 가치가 높은 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화살통은 원통형의 형태를 가지며 길이 약 50㎝이다. 바깥 부분에는 가죽을 일정한 간격을 두고 감은 후 그 위에 검은색으로 칠을 하여 외관을 꾸몄고, 입구 부분에 가죽을 덧대어 마무리했다. 수종 조사 결과 화살통의 주재료는 소나무로, 재질이 균일하고 단단해 화살통을 만들기 적합한 나무였을 것이다. 남아있는 칠 단면을 여러 과학적 분석을 통해 관찰해보니 목탄을 갈아 눈메움(나뭇결에 평활한 칠 바탕을 해 나무면의 방수성을 높이는 행위)의 용도로 사용한 후 한지와 가죽을 바르고 옻칠을 한 흔적이 확인되었다.
현재 부산박물관에서는 고촌리 생활 유적 배후 구릉에서 ‘고촌리 고분군 3차 발굴 조사’를 진행 중이다. 생활 유적이 내려다보이는 고분군에서, 한민족의 혼이 담겨 있을 화살통이 발견되기를 오늘도 고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