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하여 텅 빈 산에 누우니-술과 한시’를 단순히 술(酒)에 관한 옛날 한시(漢詩)를 골라 한데 모은 책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재미있고 품격 있는 문학서라는 느낌에 머무르고 말 수도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다. 관점을 조금 바꿔, 술과 한시라는 콘텐츠를 통해서 본 문화사이자 인간과 사회 탐구서로 대했더니 더 풍성한 내용, 선명한 통찰을 접할 수 있었다.

유병례 성신여자대학교 중국어문화학과 명예교수·윤현숙 한국교통대학교 중국어학과 교수가 함께 쓴 ‘취하여 텅 빈 산에 누우니 -술과 한시’에서 먼저 ‘시경(詩經)·소아·빈지초연’을 일부 인용한다. ‘시경’은 중국 최초 시가집으로, 기원전 9~7세기 완성된 책으로 알려졌다.

“손님들 처음 연회에 참석할 땐, 온화하고 공손하여, 술 취하기 전에는 몸가짐 바르더니, 취하고 나면 몸가짐 경망하여, 자기 자리 버리고 옮겨가서 덩실덩실 춤추기를 멈추지 않는다. 술 취하기 전에는 몸가짐 신중하더니, 술에 취하면 몸가짐 흐트러진다. 이를 일러 취하면 질서를 모른다는 것. 손님은 술 마시고 취하면 고함치고 떠들어서, 음식 그릇 흩트리고 비틀비틀 춤을 춘다. 이를 일러 취하면 허물을 모른다고 하지. 관은 삐딱하게 쓰고 쉬지 않고 춤을 춘다. 취한 뒤에 조용히 자리 뜨면 복 받으련만, 취하고도 계속 남아 소란 피우니,”(하략·60쪽)

이 시는 2600~2800년 전 작품이다. 술자리 풍경이 어쩜 이렇게까지 지금과 똑같을까? 소름이 끼쳤다. 술 취해 관을 삐딱하게 쓴 옛사람이나, 취기에 흥이 올라 넥타이 머리에 매고 이 자리 저 자리 다니는 현대인이나 신기할 만큼 같다. 그러니 인정하자. (다는 아니지만) 사람에게는 술을 좋아하는 기질·속성이 있다. 그러다 술이 지나치면, 망가지고 몸 상하며 뒷날 후회한다.

오랜 세월 중국 문학을 연구한 두 저자는 이런 인식을 바탕으로 깔되 거기 머무르지 않고 성큼성큼 문학과 술, 술과 한시 세계로 들어간다. 시인이 술을 만났을 때에야 비로소 쏟아져 나온 위대한 문학작품을 보여준다. 시선(詩仙) 이백이 쓴 ‘양양가(襄陽歌)’ 한 대목은 이렇다. “저 강물 변해서 모두 술이 된다면(此江若變作春酒·차강약변작춘주).” 아! 역시 이백.

책은 술과 시라는 렌즈로 문학사·사회사를 살피고, 시인의 성취와 문학 활력을 보여준다. 이백 두보 백거이 구양수 소식 소철 한유 도연명 원진 조조 육유 이야 설도 어현기 이청조 주숙진 등 중국 옛 시인, 이규보를 비롯한 고려 문인 작품을 제시한다. 두 저자는 술은 알맞음과 절제가 반드시 동반해야 함을 분명히 한다,

고려 대문호 이규보는 ‘주(酒)’라는 시를 이렇게 시작한다(62쪽). “술은 하루라도 없으면 안 되지만, 반 잔만 더 마셔도 안 된다네.”(酒不可一日無 飮不可半盞多·주불가일일무 음불가반잔다) 주량을 지켜 알맞음과 절제를 간직하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