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간제 아내 노인지 역 서현진
- 상처 많은 남자 한정원에게 끌려
- 서로 위로하며 결핍 채우는 인물
- 외로움 표현하는 방식이 좋았다
# 전 아내 이서연 역 정윤하
- 한정원과 이혼 후에도 집착·질투
- 소유욕 표현 위해 파격 베드신도
- 존경하는 서현진과 촬영 땐 울컥
넷플릭스의 새로운 드라마 한 편이 화제다. 지난달 29일 공개한 ‘트렁크’는 처음에는 서현진 공유 주연의 멜로드라마로 눈길을 끌었지만, 공개 후에는 드라마의 만만치 않은 내공 때문에 어렵다는 말이 나왔다. 숏폼이 유행하는 시대에 ‘트렁크’는 서서히 침잠하는 느낌으로 푹 빠져 시청해야 인물들의 관계와 심리를 가깝게 느낄 수 있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렸다. 그럼에도 공개 2주 차에 넷플릭스 TOP10 TV(비영어) 부문 3위, 41개국 TOP10에 올랐다.
 |
| 서현진(왼쪽), 정윤하 |
김려령 작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트렁크’에는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 커플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가 있다. 기간제 결혼 매칭 업체 직원으로 다섯 번째 결혼을 하는 노인지와 가정 폭력 아버지에 대한 트라우마로 불안과 외로움에 잠식된 음악 프로듀서 한정원. 그리고 그의 이혼한 아내이자 관계 회복을 위해 자신은 새로운 결혼 생활을 하면서 한정원에게 노인지와의 1년간 기간제 결혼을 제안하는 이서연과 그녀와 결혼한 또 한 명의 기간제 결혼 매칭 업체 직원 윤지오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기묘해 보이는 이들의 관계이지만 남모를 아픔을 지닌 인물들과 이들이 만들어 내는 속 깊은 관계를 들여다보면 ‘사랑과 구원’이라는 보편적 메시지가 수면 위에 드러난다. 그 중심에는 한정원을 두고 묘한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노인지 역의 서현진과 이서연 역의 정윤하가 있다.
■결혼하는 여자, 서현진
드라마 ‘또 오해영’ ‘왜 오수재인가’ 등으로 로코 퀸에 등극한 서현진이 ‘트렁크’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목소리는 차분해지고 웃음기는 지웠다. 대신 때론 차갑게, 때론 따뜻한 눈빛으로 사랑과 구원, 그리고 아픔을 연기한다. 그녀는 “대본을 봤을 때부터 제 취향에 맞는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완성된 작품을 보니 더 제 취향에 가깝더라. 슬프다는 감정이 뒷모습으로 표현된다거나 공간에서 인물이 덩그러니 있는 것으로 그 사람의 외로움을 표현한다든지 하는 것이 너무 좋았다”고 드라마의 정서에 아직도 빠져 있는 모습이었다.
서현진이 연기한 노인지는 양성애자인 약혼자 때문에 혼자가 돼 결혼은 역겹다고 생각하지만 결혼을 직업으로 선택한 아이러니한 인물이다. 그녀는 “노인지가 결혼이 역겹다고 말하는 건 내가 하려고 했던 그 결혼에서의 내 선택이 역겹다고 하는 것이다. 양성애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내가 그 사람을 방어해 줄 수 있어, 어떤 세상의 편견에서 내가 그 사람을 구해줄 수 있어’라는 이기심으로 결혼하려 했고, 그래서 약혼자는 떠나게 된다. 노인지가 기간제 결혼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도 죄책감에서 자기에게 벌을 주려 했던 것 같다”고 캐릭터를 분석했다.
공허하고 메마른 삶을 살던 그녀는 자기방어가 강한 한정원을 만나 끌림을 느낀다. 서현진은 “끌렸다기보다 그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극 중 대사처럼 정말 온 우주의 그 순간에 서로를 위로할 수 있고, 말하지 않아도 저 사람이 지금 나랑 똑같은 상처가 있는 사람임을 안 것이다”며 “나와 똑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은 아무 말 하지 않고 바라보고만 있어도 위로가 될 때가 있지 않나. 서로 힘든 상황이었기 때문에 알아봤을 것”이라고 결핍을 지닌 두 인물의 만남에 대해 설명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끌리는 감정은 한순간에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서서히 스며들듯 발전한다. 섬세한 감정 표현이 요구되는 연기였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노인지의 감정 상태를 계속 확인해야 했다. 서현진은 “알다시피 촬영은 순서대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연기하면서 감정의 상태가 튈 수 있어 때때로 대본을 처음부터 끝까지 통으로 다시 읽어가며 장면 장면의 감정을 잊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공유 선배님도 그랬다고 하더라. 이렇게 촬영하기는 처음이었다”며 디테일한 감정 표현을 연결하기 쉽지 않았음을 전했다.
‘트렁크’에서 서현진의 가장 큰 도우미는 한정원 역을 맡은 공유였다. 그녀는 “잘 모르겠을 때 공유 선배님께 ‘이거 왜 이러는 걸까요?’라고 하면 한정원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해주는데 그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이어 “촬영하면서 공유 선배님의 새로운 얼굴을 참 많이 봤다. 선배님도 저의 얼굴을 구경했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감정 연기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서현진이 가장 어려움을 느꼈던 장면은 액션 신이었다. 이서연과 아파트 공사장 엘리베이터에서 주먹다짐을 벌이는 장면으로, 질투심을 느낀 두 여자의 감정이 폭발한다. 서현진은 “실제 내려가는 철제 엘리베이터에서 촬영하려니 겁이 나더라. 정윤하 씨와 합을 맞추긴 했지만 차라리 철망에 제 손이 찍히는 게 낫지 주먹이 얼굴에 맞으면 안 되니까 주의를 많이 기울였다”고 말했다. ‘트렁크’에서 빛나는 연기를 보여준 중고 신인 정윤하에 대해 “목소리가 주는 힘이 큰 배우다. 그리고 준비를 정말 많이 해오는 착실한 배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맹목적 사랑을 원하는 여자, 정윤하
 |
| ‘트렁크’에서 서현진과 정윤하가 팽팽히 대립하는 장면. ‘트렁크’는 비밀스러운 결혼 서비스와 그 안에 놓인 두 남녀의 이상한 결혼 이야기를 그린 멜로 드라마이다. 넷플릭스 제공 |
이름이 낯선 정윤하는 올해 가장 눈부신 한 해를 보냈다. 그녀는 영화 ‘파묘’에서 박지용 아내 역을 맡아 일명 ‘미국 며느리’라고 불릴 정도로 짧지만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줬다. 이전에는 드라마 ‘카지노’에서 술집 마담 역을 맡았다. 실은 2007년 미국 유학 시절 CF로 데뷔했으며,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서 조단역으로 출연한 중고 신인이다. 대학에서 역사와 국제학을 전공한 정윤하는 연기자 생활을 병행했고, 오랜 기다림 속에 ‘트렁크’에서 주연으로 캐스팅되며 자신의 색깔을 제대로 빛낼 수 있었다. 그녀는 “김 감독님과 3일 동안 12시간에 걸쳐 만나면서 오디션과 살아온 이야기를 나눴다. 김 감독님을 비롯해 공유 서현진 선배님 등 대단한 분들과 함께 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첫 주연 소감을 전했다.
‘트렁크’에서 정윤하가 연기한 이서연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 인물이다. 그녀는 한정원과 이혼 후에도 여전히 그에게 집착하며 맹목적 애정을 시험한다. 그래서 노인지와의 기간제 결혼을 제안하고, 자신에게만 매달리고 의지하는 한정원을 보며 묘한 안도감과 만족감을 느낀다. 하지만 한정원이 노인지에게 의지하기 시작하자 심한 질투심을 느낀다. 정윤하는 “제가 이 사람을 이해할 수 없으면 표현에 제한이 있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했다.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는 인물은 아니어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선생님께 자문을 얻기도 했다”고 이서연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한 과정을 전했다. 이어 “의사 선생님과 상의했을 때 ‘양가감정’에 대해 이야기해 줬다. 사랑을 받고 싶지만 증오가 있는 감정으로, 한정원에 대한 소유욕이 어긋난 모습으로 표현되는 것 같다”고 이서연의 심리를 설명했다. 과거 교통사고로 유산이 됐을 때 병원에서 ‘아이부터 살려달라’고 한 한정원의 말을 들은 이후 생긴 감정이라는 것이다.
또 정윤하는 이서연의 한정원에 대한 소유욕을 표현하기 위해서 적나라한 베드신도 마다하지 않았다. 한정원에 불안감, 초조함이 표출되는 수단 중 하나가 성욕인 것이다. 그녀는 “베드신을 비롯해 다른 신 전체가 저에게는 고민이었다. 감독님과 4개월의 시간 동안 굉장히 많이 상의 했고, 이서연의 파괴적인 내적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 조금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대역 배우분과 액션 연기처럼 합을 맞추고 신중하게 촬영했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윤하도 서현진과 마찬가지로 아파트 엘리베이터 장면을 힘들었던 장면으로 떠올렸다. 그녀는 “이서연이 건축가이기 때문에 엘리베이터 안에서 절대로 흔들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실은 덜컹하면 너무 무서웠다. 대신 액션은 이전 영화에서 국정원이나 경호원 역할을 해서 어렵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체적, 감정적으로 부딪친 서현진에 대해서는 “제가 워낙 존경하는 선배님이었다. 오디션 볼 때 ‘또 오해영’ 대사를 굉장히 많이 준비해 갔었다. 선배님과 둘이 서서 테스트 촬영할 때 너무 울컥했다”고 진심을 전했다.
조단역 생활을 하며 연기의 꿈을 오랫동안 지켜온 정윤하. 그녀는 “다양한 모습으로 친근하게 느껴지면서 열심히 연기하는 배우로 비치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