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책팀(조봉권 부국장 겸 문화라이프부 선임기자·박현주 책 칼럼니스트)은 ‘2024년 하반기 인상 깊게 읽은 책 12선’을 선정했다. 국제신문 문화라이프부로 각 출판사가 보내온 책만을 대상으로 했으며, 올해 7월부터 12월까지 책면에 책팀이 소개한 책 가운데 골랐다. 

지난달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2024 부산국제아동도서전 현장이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국제아동도서전인 이 행사는 부산에 책의 향기가 스미게 했다. 시민은 이 도서전을 크게 반겼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책면뿐 아니라 문화면에 보도했던 책도 대상에 포함했다. 각자 ‘인상 깊게 읽은 책’을 독자와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골랐다.


◆조봉권 부국장 겸 선임기자의 인상 깊은 책 6선

# 차등과 평등시대 넘어… 대등의 사회로

- 대등의 길/조동일 지음/지식산업사/3만3000원

만약 여러 권이 아니라 한 권만 꼽아야 했다면, 이 책을 택했을 것이다. ‘한국문학통사’를 비롯해 숱한 역저를 쓴 석학 조동일 박사가 평생의 공부와 연구 성과를 집약했다. 예술·문화·문학 영역에서 동과 서, 고(古)와 금(今)을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폭과 깊이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철학, 새로운 미학을 내놓는다. 대등론이다. 차등의 철학과 세계관이 이제껏 세계를 지배한 차등론의 시대는 갔으며 차등론이 실은 꽤 촌스러운 주장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대신 대등론이 솟는다. 대등은 평등과는 또 다르다. 한국 문화의 특징, 한국 미의 원리, 한국이 나아갈 방향 또한 이 책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 이순신 50년 연구자, 난중일기 번역본

- 의역 난중일기/김종대 엮어 옮김/가디언/2만 원

이순신 장군이 후세에 남긴 최고의 선물인 ‘난중일기’의 새롭고 친절한 번역본을 우리는 또 하나 가지게 됐다. 이순신 연구자로 50여 년을 살아온 김종대 전 헌법재판관이 펴낸 ‘의역 난중일기’ 덕분이다. 김종대 저자는 ‘이순신, 죽을힘을 다해 하나가 되어 싸웠습니다’를 비롯해 이순신 장군의 삶과 임진왜란 역사를 정밀하고 정확하며 풍부하게 되살려낸 책을 여러 차례 냈다. 이번에 그가 펴낸 ‘의역 난중일기’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순신 장군이 직접 남긴 ‘육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난중일기를 저자의 오랜 연구 경험과 사유에 녹여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 형법학자가 안내하는 이병주 문학세계

- 밤은 깊었다/하태영 지음/법문사/3만5000원

형법학자 하태영 동아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대문호 나림 이병주(1921~1992) 깊이 읽기를 안내하는 책을 또 한 권 냈다. ‘밤은 깊었다’이다. 그는 2022년 나림 이병주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첫 책 ‘밤이 깔렸다’를 냈다. ‘밤은 깊었다’는 앞선 책보다 훨씬 단단하고 집요해졌다. 나림의 문학세계를 독자와 나누고자 하는 투지와 간절함이 느껴진다. 이병주 작가의 작품 ‘지적 생활의 즐거움’ ‘목격자’ ‘운명의 덫’ ‘거년의 곡’ ‘망명의 늪’ ‘세우지 않은 비명’에 나오는 좋은 대목, 인상 깊은 문장, 소리 내어 낭송할 대목을 반복해 제시한다. 독자는 그 흐름을 따라가면서 나림 문학을 마주한다.


# 언니의 학생운동이 일깨운 가족 사랑

- 책방, 나라사랑/강정아 지음/강/1만4000원

통영에 사는 1971년생 작가 강정아가 쓴 장편소설 ‘책방, 나라사랑’에는 1990년대 치열했던 학생운동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학생운동 이야기에만 붙들리거나 거기에 제한되지 않는다. 삶의 이야기이며 인생을 살아내는 우리의 이야기로 작품은 멋지게 확장한다. 이 책을 지면에 소개할 때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고 썼다. 아빠가 일찍 죽어버린 가난한 집에서 엄마와 두 딸이 버티고 사랑하고 살아가는 이야기. 그런 집안을 이끌던 언니가 시위 현장에서 경찰 폭력에 희생되는 현실, 동생이 사랑을 깨닫고 단단해지는 장면. 이야기 밀도가 높고 묘사가 생생하다. 오소소 소름이 돋을 만큼 공감의 힘도 컸다.


# 어린이 눈높이 부동산… 경제가 쏙쏙

- 캥거루 복덕방/김나월 지음/국민지 그림/주니어 김영사/1만4000원

살아가는 데 사랑이 그렇게 중요한 요소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랑에 관해 배우고 공부해야 한다. 막연히 사랑이 내게도 오겠지 하고 기대만 하고 있다간 기껏 다가와 준 사랑도 놓치기 쉽다. 경제 교육도 이와 비슷하다. 돈을 너무 밝히는 아이로 키우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돈에 관해, 경제 흐름에 관해 공부할 기회를 얻은 아이는 분별력이 좋아질 것이다. ‘캥거루 복덕방’은 동물이 주인공으로 나와 부동산과 집 등에 관해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집과 부동산 핵심 원리와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책을 보며 20년 넘게 잘 팔리는 어린이 경제 동화 ‘열두 살에 부자가 된 키라’가 떠올랐다.


# 지방소멸지역 사람냄새로 채운 소설

- 마산/김기창 장편소설/민음사/1만8000원

김기창 작가는 경남 마산 출신이다. 마산은 지금은 창원시에 속한다. 그는 장편소설 ‘모나코’ ‘방콕’, 소설집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 ‘크리스마스이브의 방문객’을 냈다. 이번에 고향을 무대로 한 ‘마산’을 내며 그의 장편소설 목록은 지명으로 계속 이어지게 됐다. 너무 많이 들은 까닭에 이젠 둔감해져 가는 말에 지방소멸이 있다. 뉴스나 논문 등에서 쓰는 지방소멸이라는 표현에는 피가 돌지 않는 느낌이다. 사람 냄새도 잘 안 난다. 수치와 그래프만 기억난다. 장편소설 ‘마산’은 사람 숨결이 느껴진다. 피가 돈다. 지방소멸이나 한 도시의 역사, 한 고장의 운명은 등장인물을 통해 생생하게 다가온다.



◆박현주 책 칼럼니스트의 인상 깊은 책 6선

# 시와 사진으로 담은 아름다운 부산

- 부산, 사람/최주식 시, 임재천 사진/C2미디어/2만8000원

50편 시와 50장 사진으로 부산을 담은 시·사진집. 최주식 시인은 “부산 사람도 잘 모르는 부산의 모습을 담아낸 임재천의 사진은, 단지 영감을 주었다는 말로 부족하다”고 하고, 임재천 사진가는 “공간적으로 부산을 다루고 있지만 이 시들은 하나의 지역 정서를 넘어 이 땅 어느 곳에 사는 누구나에게 울림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을숙도’를 노래한 시와 사진. 바다를 물들이는 부산의 야경을 담은 ‘도시의 불빛’. 황령산 정상이 큰 말씀을 내리는 것 같은 ‘황령산이 말하기를’. 86번 버스가 지나가는 산복도로에서 살아온 삶을 생각하게 하는 ‘산복도로는 없다’ 등. 시와 사진이 하나로 어우러진다.


# 뇌성마비 아들 둔 어머니 삶의 기록

- 통곡하고 싶었지만/이순희 지음/빨간소금/1만8000원

김형수 장애인학생지원네트워크 대표의 어머니 이순희가 쓴 50년 육아일기. 뇌성마비 판정을 받은 아들을 키우며 차별과 혐오와 싸운 삶의 기록이다. 어머니는 아들을 일반 학교에 보냈고, 운동회와 소풍에도 꼭 참여했다. 뇌성마비 정보를 얻을 곳은 병원이나 물리치료실뿐이었다. 이순희는 병원에서 배워 집에서 물리치료, 작업치료를 직접 했다. 아이의 행동과 발달을 돕기 위해 쏟은 애정 어린 어머니의 노력은 읽는 사람의 가슴을 저릿저릿하게 한다. 어머니는 통곡하고 싶었지만 울지 않았다. 어머니는 아들이 아니라 시대 앞에서 절망했고, 온통 아들로 가득했던 세상을 자신으로 채워나갔다.


# 말이 가진 힘… 소문에 현명한 대처를

- 그 소문 진짜야?/안 크라에 글·그림/김자연 옮김/라임/1만4000원

소문을 대하는 현명한 태도에 관한 우화 그림책. 저자 안 크라에는 벨기에 그래픽 디자이너.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지은 우화 ‘말을 거르는 세 가지 체’에서 영감을 받은 이 책은 말의 힘과 무게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콜라주 방식, 그리고 물감과 연필을 혼합해 그린 따뜻한 그림은 내용을 더욱 생생하게 전한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소문을 접한다. 어떤 소문은 진실을 밝혀내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나쁜 쪽으로 왜곡되고 부풀려진다. 소문이 어른 아이 가리지 않고 파고드는 것처럼, 이 책도 어른 아이 모두에게 감동과 재미를 준다. 함께 읽고 소문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의견을 나눠 보면 좋겠다.


# 국내 생물 1602종 실제같은 세밀화

- 보리 생태 사전/윤구병 기획/보리 사전 편집부 엮음/보리/6만 원

30년간 우리나라 동식물을 한 점 한 점 세밀화로 기록하며 도감을 출간해 온 보리에서 그동안 펴낸 모든 세밀화 도감을 밑바탕으로 집대성한 생태 사전. 우리나라 생물종 1602종의 세밀화가 실려 있다. 한 장의 생물 그림이 완성되기까지 그 생물을 전공한 학자에게 묻고 또 물어서 정보가 잘 드러나고, 오류가 없도록 오랜 시간과 정성을 들였다. 보리의 세밀화는 우리 예술 전통과 감각에 걸맞은 아름다움을 담고 있어 세계적인 도서전에서도 늘 주목받는다. 동식물의 정확한 과학 정보와 살림살이와 관계된 이야기도 간결해 머리에 쏙 들어온다. 우리나라의 자연 생태가 오롯이 마음에 스며드는 책이다.


# 소중하다면서 쉽게 혐오받는 어린이

- 우리 모두는 어린이였다/김지은 외 지음/교육공동체벗/1만9000원

찬양의 대상이면서 동시에 손쉽게 무시당하거나, 혐오 당하는 어린 사람들. 한때 우리도 그 이름으로 불렸던 존재, ‘어린이’를 생각해 보는 책. 오랜 시간 어린이의 삶과 문화를 위해 활동해 온 12명의 저자들은 한국 사회에서 ‘어린이 담론’이 지나치게 빈약하다고 지적한다.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 선언’이라 할 수 있는 ‘어린이날 선언’이 발표된 지 100여 년이 지났지만, 어린이 보호나 성장이 아닌 현재의 어린이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사상서나 연구서는 드물다. 어린이를 바라보는 시선과 인식도 형식에 그친다. 이 책은 가장 약한 존재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가 모두를 위한 사회라고 강조한다.


# 원양선원 아빠를 향한 그리움 ‘넘실’

- 아빠, 나의 바다/이경아 그림책/창비/1만6000원

어린이들은 물론이고, 부산에서 나고 자란 시민에게도 꼭 소개하고 싶은 그림책이다. 원양어선을 타는 아빠를 그리워하면서 자랑스러워하는 친구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책을 펼치면 선원인 아빠가 들려준 바다 이야기를 전하는 아이의 목소리 사이로 바다가 넘실거린다. 작가는 부산의 대청동 높은 동네, 영도의 흰여울마을을 다니며 아이가 살던 마을의 풍경들을 재구성해서 그렸다. 그림책 안에 그려진 선원들이 적도제를 지내는 모습이나 바다거북을 만나면 자신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는 용왕님이라고 여겼다는 내용 등은 국제신문 해양 특집 기사를 참고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