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인생…’ 삶을 돌아보는 계기
- ‘여전히 나는’ 한 편의 영화 본 듯
- 전 세대가 읽을 수 있는 그림책
공공도서관 어린이 자료실에 들렀다가 어린 딸 옆에 앉아 그림책을 읽고 있는 젊은 엄마를 보았다. 그림책을 몇 권씩 둔 채 아이는 책장을 빨리 넘기며 뭔가 해치우듯 ‘보고’ 있었고, 젊은 엄마는 글도 그림도 꼼꼼히 ‘읽고’ 있었다.
그림책은 아이들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전 세대가 읽을 수 있다. 희망 용기 사랑 우정 행복 배려 화해 평화 자연…. 그림책 속 주제는 그야말로 빛나는 가치들이다. 쉬운 말로 쓴 문장은 시처럼 아름답다. 그림은 그 자체로 회화예술이다.
나이 어린 독자용이라는 편견 없이 그림책을 보면, 더없이 즐거운 새 장르가 펼쳐진다. 나는 그림책 ‘여우난골족’(백석 시, 홍성찬 풀어 쓰고 그림/창비)을 보았을 때 큰 감동을 받았다. ‘한국 일러스트레이션의 역사’라 불리는 화가 홍성찬은 우리의 옛 모습, 옛 정서를 가장 잘 그려내는 화가로 철저한 고증과 답사를 통해 독창적인 그림을 그린다. 그는 ‘여우난골족’을 그리기 위해 평안도 사람들이 이주해 옛 방식대로 살고 있다는 연변 산골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설을 쇠며 그림책의 뼈대를 잡고 그래도 부족한 부분들은 백석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평안도 실향민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태어난 그림책을 보면서 나는 백석의 시 ‘여우난골족’을 비로소 완전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들의 명절 풍경을 구수한 평안도 사투리로 자연스럽고 진실하게 담아낸 시를 어린이들이 볼 수 있게 만든 그림책이나, 가장 아끼는 책이 되었다. 설명절이 되면 자동으로 펼쳐보는 책이다.
어른을 위한 그림책도 있다. ‘100 인생 그림책’(하이케 팔러 저자(글) · 김서정 번역 · 발레리오 비달리 그림/사계절). 0세부터 100세까지, 종이 한 장을 넘길 때마다 계속 흘러가는 인생을 그렸다. 누구라도 이 책을 잡으면 자기 나이의 페이지부터 펼칠 것이라고 확신한다. 비 탓에 밖에 나가 놀지 못해 속상한 9살, 산다는 것이 스트레스 가득한 일임을 알게 되는 41살,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법을 배우는 43살…. 구체적인 삶이 이어진다. 모든 일이 힘들다가도, 또 모든 것이 가뿐해지기도 하는 우리네 삶이다. 이렇게 살아왔구나, 이렇게 살고 있구나, 이렇게 살아가겠구나 하면서 읽는 그림책이다. 한 사람의 긴 그림일기 같다.
‘여전히 나는’(다비드 칼리 저자(글) · 모니카 바렌고 그림/오후의소묘)은 본격 어른을 위한 그림책이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일의 아름다움을 속삭여준다. 주인공은 사랑하는 이에게 편지를 쓰듯 말을 건넨다. 나는 여전히 당신의 미소를 보고 싶고, 목소리를 듣고 싶고, 같이 걷고 싶다고. 당신을 이토록 선명히 기억하며, 여전히 함께하고 싶다는 속삭임은 로맨틱하고 아름답고, 조금은 슬프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다.
빽빽한 줄글의 부담 없이, 많은 시간의 투자 없이, 별로 공들인 것도 없이 보석을 찾은 것 같은 책 읽기가 그림책 보기이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아이들 손에 들린 그림책을 호시탐탐 엿본다. 어른이 먼저 읽어야 할 그림책을 보면 덥석 잡고 싶어진다. 본격 어른을 위한 그림책을 만나면 그보다 반가운 일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