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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의 조선 침략 예견했지만…그의 유비무환은 외로웠다

이병주 문학과 인문 클래식 <22> 청년 장수 홍계남: ‘천명’으로 위로하다 ②

  • 조광수 나림연구회 회장·전 한국아나키즘학회 회장
  •  |   입력 : 2025-01-12 18:05:09
  •  |   본지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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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란 2년 전 조선통신사로 떠나
- 왜의 침략 야욕 간파한 홍계남
- 하지만 선조는 너무 무능했고
- 조정 동인·서인은 당파 싸움만
- 부사의 말 믿었다가 국난 초래

- 주류의 역사에서 배척된 인물
- 나림은 그 업적 알리는 글쓰기

어떤 인물이든 어떤 사건이든 하나의 이야기만으로 성립하는 경우는 없다. 모든 인물 모든 사건은 다수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 여러 이야기엔 주류적 서사 이른바 정설(正說)도 있고, 야설(野說)과 외설(外說) 그리고 이설(異說)도 있다. 정통 서사는 승리자의 의견이다. 당대 힘 가진 자의 뜻이 담긴 이야기다.

나림 이병주는 정통 서사를 “햇볕에 바랜 역사”로 명명했고, 주류적 서사에서 비켜난 그 밖의 이야기를 “달빛에 물든”이라고 표현했다. 세상 모든 일이 다 기록되어 있을 수는 없다. 나림은 천지개벽 이래 대소사 중 기록된 사건보다 기록되지 않은 일이 훨씬 더 많고, 그나마 역사는 선택적 기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역사는 언제나 다시 쓰여야 한다는 자각이 분명했다. 신통한 인물, 희귀한 인물, 탁발한 인물들이 그 이름을 남기지 않고 사라져 간 예는 숱하다.

홍계남처럼 슬픈 소년 시절과 수모로 엮어진 청년 시절을 지낸 경우라면 더욱 그렇다. 사관(仕官·벼슬살이) 이후도 차별과 구별로 응당 받아야 할 대우를 받지 못했다. 최영 장군처럼 “죄가 공을 덮으면 민심이 품어줘야” 하듯, 홍계남 장군도 상(賞)이 공(功)에 못 미치면 민심이 메워줘야 한다. 장편 역사소설 ‘천명’은 그 메우는 작업에 충실한 작품이다.
위 그림은 부산 동래구 안락동 충렬사에 있는 임진왜란 항전 상상도.
■비극이 잉태된 시대

나림은 홍계남과 셰익스피어가 1564년 동갑내기라는 사실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피차 아무런 관련 없이 살다 간 두 인물을 병렬하는 건, 한갓 우연이지만 만일 홍계남이 영국에서 태어나고 셰익스피어가 조선에서 태어났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해 보는 의미가 있다. 돌아보기와 내다보기의 한 케이스이기 때문이다. 돌아보기와 내다보기의 균형 잡기는 지식인이 몽매(夢寐)간에도 지향하는 소망이다.

셰익스피어 시대 영국은 문화 경제 모두 신흥의 기운이 넘쳤다. 엘리자베스여왕 주도로 근대국가 기초를 닦았고, 스페인 무적함대를 격파해 제해권을 장악했으며, 아메리카 대륙에 버지니아 식민지를 건설했다.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체가 대도약하던 시기다. 조선은 성종까지의 안정기가 연산군 때부터 흔들리며 붕당의 알력이 드러나더니 선조 대에 당쟁의 악성이 짙어졌다.

한양 동쪽 건천동에 사는 김효원 일파를 동인이라 하고, 서쪽 정릉방에 거주하는 심의겸 일파를 서인이라 했다. 동인 대표 인물은 허엽 류성룡 김성일 곽재우 이산해 등이다. 퇴계·남명의 문인이 많았다. 서인은 박순 윤두수 정철 조헌 등이 주요 인물이다. 율곡·성혼의 문인·우인이 많았다. 율곡이 당쟁을 해소하려 무진 애를 썼으나 역부족이었다. 물론 정책 대결도 있었으나, 자리와 처신을 둔 다툼은 다분히 자해적이었다. 사화(士禍)가 거듭되며 당쟁은 사생결단으로 치달았다. 나림은 “임진왜란 화인(禍因)의 절반 이상은 조선 조정 책임이다”고 단언한다.

일본은 군웅할거 시대가 통일되는 과정에 무예가 정숙(精熟)해지고 무기도 진보한다. 1543년 조총을 입수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주군 오다 노부나가의 유지를 이어 조선과 명나라 침공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1586년 3월이었다. 전쟁은 의지와 역량으로 하는 것이다. 히데요시는 오사카성에서 포르투갈 선교사들과 회견한 후 최측근이자 기독교 신자인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전국 평정 뒤 명과 조선에 출병할 것이니 포르투갈에서 큰 배 두 척을 구입하라. 나가사키는 야소회(耶蘇會)에 기부하겠다”고 호언했다. 수도를 베이징으로 정해 천황 거처를 옮기고, 가토 기요마사 등 부하에게 분봉할 구상까지 세웠다. 망상(妄想)일망정 구체적이었다. 조선은 느끼지도 깨닫지도 못하는 동안 일본은 침공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데 비극이 있다.

■탁월했던 ‘서얼’ 장수

사진은 영화 ‘전, 란’(감독 김상만·2024)의 한 장면으로, 주인공 천영이 낮은 신분의 백성으로서 왜군에 맞서 싸워 공을 세운 점 등에서 홍계남을 떠올리게 한다.
홍계남이 수행한 조선통신사의 일본행은 ‘사건’이었다. 사건이란 기존과 다른 새로움이 선뜻 다가왔다는 의미다. 다만 그 불쑥 다가온 새로움과 낯섦을 수용하는 태도와 정도는 제각각이다. 더없는 문화적 충격도 결국 자신의 눈높이에서 수용할 수밖에 없다. 깊이 있는 지식인이라면 반성적 자기 인식의 계기가 되지만, 얼치기는 자기 고집에 매몰돼 보고도 못 보는 청맹과니가 된다.

임진왜란 발발 2년 전, 1590년 4월 말 부산포에서 출항한 통신사 일행은 대마도와 나니와를 거쳐 석 달 만에 목적지 교토에 도착한다. 홍계남은 항구마다 대선(大船)이 정박해 있고, 수십 리를 두른 성곽과 풍요한 자연을 보며 도깨비에 홀린 기분이 들었다. 오사카와 교토의 화미(華美)를 극한 거리 모습은 더욱 놀라웠다. 수백 개 다리와 사찰, 수천의 화려한 공후(公侯) 저택, 수만의 서민 주택 등 백년 전란이 계속되었다는데 거리가 어떻게 이처럼 윤택할 수 있을까 의아했다. 특히 서점에 중국 책 조선 책이 그득한 장면이 인상 깊었다.

여덟 달에 걸친 행차 중에 정사와 부사 사이에 숱한 다툼이 있었지만, 결정적인 갈등은 일본 사정을 살핀 결과 보고 대목이다. 정사 황윤길은 “풍신수길의 안광은 날카롭고 담지(膽智)도 있었다. 틀림없이 침략할 것이다”고 보고했다. 부사 김성일은 “그의 눈은 쥐눈 같고 인품 또한 볼품이 없었다. 한갓 용렬한 인물의 대언장어(大言壯語)에 현혹당할 필요 없다”고 반박했다. 동인은 김성일의 말이 옳다 하고 서인은 황윤길의 말이 옳다 하며 의론 분분, 사실 파악보다 당파성이 앞섰다. 서장관 허성은 동인이면서도 황윤길의 의견을 지지했으나, 선조는 김성일을 칭찬하고 당상관으로 승진시켰다. 8도에 명하여 진행 중인 방어 준비도 일체 중단케 했다. 쳐들어오지도 않을 적을 경계하여 민생을 괴롭힐 필요가 없다는 우아한 이유에서였다.

조선 27 임금 중 최악이 누구냐고 물으면 나는 단연 선조라고 답한다. 첫째, 율곡의 품인(品人)이다. “금상(今上)은 총명하고 영리하다. 그러나 왕자(王者)의 그릇은 못 된다. 왕은 신하의 현명을 시기하면 못 쓴다. 그런데 상감은 신하와 겨루어 스스로 우월을 나타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런 성미인 것 같다.”. 선조는 빈말로 칭찬하는 덴 인색하지 않으나 제청과 건의의 윤허엔 인색하다. 그런 임금에게 신임을 얻자면 반우반현(半愚半賢)이 최상인데 군자가 쓸 술수는 아니다. 이순신 같은 골기의 인물은 떠나거나 죽어야 한다.

둘째, 무능하고 아랫사람을 질투하는 지도자는 하루라도 빨리 물러나는 게 그나마 도와주는 건데 선조는 재위에 41년이나 있었다. 전란이 나자마자 1등으로 줄행랑치고도 꾸역꾸역 자리보전했으니 참 비루하고 고약하다. 무능하면서도 버티는 통치자는 만참(萬斬)해도 모자랄 역사의 죄인이다.

■홍계남에 주목한 나림 이병주

홍계남은 일본이 침략할 역량이 있음을 간파했다. 그런데 김성일 같은 명민한 인물이 그런 사정을 못 봤다니 아이러니다. 나림은 그 이유를 이렇게 해석한다. “김성일이 일본의 대거 침략을 믿지 않은 것은 총명한 탓에 저지른 과오다. 수길이 정사와 민심에 대한 배려가 있다면 백년 전란을 겨우 평정한 뒤 그렇게 무모한 짓을 할 순 없다고 판단했다.” 상식적 시선으로 광인의 망상을 예측할 수는 없는 것도 사실이다.

홍계남도 정상적인 마음으로 병사(兵事)를 일으킬 수는 없다고 여겼다. 하지만 승패를 도외시하면 거사를 치를 실력은 있어 보인다고 했다. 의지의 문제이지 역량은 갖추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방비와 준비를 서둘러야 했다. ‘유비무환’, 홍계남도 이순신 장군만큼 외로웠다.

정(情)이 중할까 아니면 의(義)가 중할까. 나림은 이몽학의 난에 연루돼 옥사를 치르는 홍계남 김덕령 두 의병장의 대화를 통해 답을 구한다. 김덕령은 3년 애상(哀喪) 중 상복을 전투복으로 갈아입고 칼을 들고 일어섰으나 촌공(寸功)도 이루지 못하고 억울하게 역모라는 대죄를 쓰게 되었다며, 충성도 펴보지 못하고 효도에도 어긋났으니 만사(萬死)를 피할 수 없다고 자책한다. 차라리 모친상이라도 마쳤더라면 하는 스물아홉 의병장의 통곡이 홍계남을 의분케 한다.

의가 없는 세상에선 정이라도 붙들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글 배운 사람의 선택은 언제나 괴롭다.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이 예술이다.” 나림이 자주 인용하는 독일 시인 노발리스의 아포리즘이다.

*편집자 주 ‘홍계남 장군 고루비’에 따르면 서얼 출신 홍계남 장군은 임진왜란 기간 탁월한 전공을 세우고, 34세인 1597년 5월 진중에서 운명했다( 나무위키 등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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