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 나은 세상 위한 희망됐으면…”
“비인간적인 일이 아무렇지 않게 여겨지는 현대사회를 보며 무저갱(바닥없는 구덩이)을 떠올렸어요. 더 나은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내고 싶어 글을 쓰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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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회 어댑터씨어터 대본 공모전 당선작 ‘무저갱’을 공동 집필한 신호권(왼쪽), 박은우 작가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
지진으로 건물이 무너진다. 건물 안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잔해에 깔린다. 건물 더미에 파묻힌 상황에서도 이들은 ‘기업은 신뢰가 최우선’이라며 119가 아닌 바이어에게 전화를 건다. 결국 한 동료가 목숨을 잃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시신을 옆에 두고 산재를 걱정하기 시작한다.
‘무저갱’은 재난으로 고립된 직장인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인간성을 잃은 현대사회의 단면을 포착한 블랙코미디 장르의 희곡이다. 부산의 소극장 어댑터씨어터(수영구 광안동)가 주최한 ‘제1회 어댑터씨어터 대본 공모전’(국제신문 지난달 13일 자 13면 보도) 당선작이다. 부산의 민간 소극장이 대본 공모전을 주최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총 43편의 작품이 접수되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이 작품은 근래 찾아보기 드문 공동 창작극이다. 대본을 쓴 신호권(37) 박은우(32) 작가는 부부 사이로, 극단에 소속되지 않은 아마추어 극작가다. 고등학교 국어 교사인 신 씨는 지금껏 5편의 작품을 무대에 올린 경험이 있고, 가정주부인 박 씨는 본인의 첫 희곡이다. 두 작가가 집필한 ‘무저갱’은 내년 어댑터씨어터 무대에 오를 예정이다.
아이디어는 박 씨의 손에서 탄생했다. 그는 직장에서 퇴사한 뒤 그간 사회생활을 하며 느낀 생각들을 원고지 80장짜리 단막극에 녹여냈다. 박 씨는 “작품의 첫 장면은 재난안전문자를 확인하고도 일에 쫓겨 회사로 향하는 직장인들의 모습으로 시작한다. 사람보다 돈이 앞선 말도 안 되는 상황인데, 이런 일에 무뎌진 한국사회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후 아내의 글을 읽게 된 신 씨가 대본을 장막극으로 다듬었다. 덕분에 극의 1부는 아내가, 2부는 남편이 쓴 독특한 형태를 갖추게 됐다. 신 씨는 “처음 아내의 글을 읽었을 때만 하더라도 일상에 만족하고 있던 시기였으나 최근 일어난 비인간적인 일들을 지켜보기도 하고, 직장에서 힘든 일을 겪기도 하면서 저 역시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부조리한 사회 모습을 꼬집고 싶다는 생각에 아내의 글을 이어받게 됐다”고 설명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도 작품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박 씨는 “평소 혼자 글을 쓰고 남겨두는 것에 만족하는 편이었는데 이번 작품을 쓰며 활동을 이어가고 싶은 욕심이 생겨 계속 글을 쓸 생각”이라고 말했다. 신 씨 역시 “돈이나 직장 등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꿈을 포기하고 무너지는 학생을 많이 보며 교사로서 미안한 마음이 컸다. 이 작품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위로의 목소리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