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에 따뜻한 차 한 잔이 생각나는 계절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커피가 일상이듯, 고려시대에는 귀족뿐만 아니라 일반 백성들도 차를 마시는 것이 일상이었다. 오늘날의 카페처럼 사람들이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던 ‘다점(茶店)’이 있었으며, 차를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장인집단의 행정 구역인 ‘다소(茶所)’도 설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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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박물관 미술실에서 만날 수 있는 고려백자. 부산박물관 제공 |
고려시대 차 문화의 확산과 함께 도자기로 만든 다기(茶器) 수요도 늘어났다. 중국 수입품만으로는 수요를 감당할 수 없자 중국의 도자기 제작 기술을 받아들여 다기를 직접 생산했다. 발굴 조사된 고려시대 초기 도자기 가마터에서는 찻잔으로 사용된 완(碗)이 출토 유물의 절반에 달한다. 차를 즐기는 문화가 도자기 생산 기술의 유입과 발달에 영향을 끼쳤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름답고 찬란한 청자의 나라, 고려는 이렇게 탄생했다.
고려시대에 청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경기도 용인 서리 가마터의 발굴 조사에서 고려시대 초기부터 청자와 백자가 함께 제작된 사실이 밝혀졌다. 이 가마터는 청자와 백자를 함께 제작하다가 차츰 백자의 비중이 높아지며 고려백자 전문 가마로 바뀌게 된다. 비색청자와 상감청자로 고려청자의 전성기를 이끈 전라도 부안과 강진의 가마터에서도 그릇의 형태, 문양, 제작 방법까지 청자와 거의 같은 백자가 출토됐다. 청자의 전성기에 백자는 꾸준히 제작, 사용되어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완형으로 전해지는 고려시대 백자는 매우 드물다. 고려백자 대부분이 청자와 함께 구워졌기 때문이다. 도자기는 태토 속 유리질 성분이 녹아야 비로소 단단해진다. 청자와 백자가 함께 구워지면서 가마의 온도는 소성온도가 1300℃에 달하는 백자가 아니라 이보다 낮은 청자에 맞추어졌다. 낮은 소성온도로 인해 고려백자는 특유의 부드러운 백색을 띠게 되었으나, 제대로 익지 못해 연질(軟質)인 것이 많고 유약도 쉽게 떨어졌다. 천여 년의 세월을 이겨낼 수 있는 강인함을 갖추지 못했다.
다행스럽게도 부산박물관 미술실에 들어서면 고려백자를 만날 수 있다. 차를 마실 때 사용하는 주자(注子), 잔과 잔받침, 찻잔으로 사용한 완, 접시로 구성된 고려백자 일괄이다. 따뜻한 물을 담아낸 주자는 나팔상으로 벌어지는 주둥이를 가진 병 모양에 얇고 넓적한 손잡이를 달아 소박하면서 정갈한 멋을 내었다. 간결한 형태의 잔과 짝을 이루는 잔받침은 잔을 놓는 자리를 높게 돋우어 품격을 더하였다. 꽃잎 모양 접시와 둥근 접시는 차와 함께 먹던 다과를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모두 10~11세기에 제작된 연질 백자로, 고려 초기 백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한 문화유산이다.
따스한 햇살이 소중한 계절, 부산박물관에 방문하시어 고려백자의 담백하고 따뜻한 아름다움을 느껴보시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