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장 불빛 구공탄 동네가 따뜻했다
겨울 준비 분분한데 김장 배추 꼴랑 세 포기
손맛이 빈방에 맴돌다 바람 따라 떠났네
이모집 밀떡 맛을 찾아 나선 서녘 바람
빈 마당 갈잎 소리 낮달만 들락대고
갈바람 날리고 간다 사람이 맛이라고
시인이 불러온 가난하지만 따뜻했던 겨울날 기억이 밀쳐두었던 어린 나를 불러 세운다.
집집마다 메주가 달리고 술이 익어가면 겨울이 성큼 우리들 곁으로 다가왔다. 바람이 너무 빨리 밀려 들어와 문풍지는 울었지만 윗목에는 고구마 가마니가, 아랫목에는 우리 형제들이 줄줄이 누워 겨울밤을 재촉했다. 겨울바람이 싸리 울타리를 넘어 길게 울어도 서로의 온기가 있어 살 만했다. 겨울 동백이 꽃을 피우면 양지바른 돌담 밑에선 자치기 놀이에 바쁜 우리들 웃음꽃이 왁자하게 울려 퍼졌다. 사람 맛이 온 마을 가득 물들고 무논 둑 아래서 날리는 연은 파랗게 언 겨울 하늘을 헤엄쳤다.
무슨 염치인지 어린 우리는 이웃집 잔치와 크고 작은 친구네 기제사를 죄다 꿰고 있었다. 뭉근히 달궈진 가마솥에서 끓는 떡국 냄새가 온 동네에 진동하면 잔치는 우리들 가슴을 달구어 놓았다. 사람이 살맛 나는 세상이었다.
외풍 부는 문풍지 사이로 깊은 겨울밤이 찾아왔지만, 우리가 나눈 온기로 겨울 무는 단물을 머금고 윗목의 고구마는 씨눈을 틔우기 시작했다. 부족했기에 서로에게 귀한 존재였고 마음으로 보듬은 시절이었다. 시인이 몰고 온 서녘 바람은 사람이 맛이었던 인정의 세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