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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56> 동해안 밀복

독성을 무릅쓰게 하는 맛이라니…겨울 동해안 ‘속풀이 대장’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5-02-18 19:19:17
  •  |   본지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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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명 ‘검복’ 널리 밀복으로 불려
- 11월부터 봄까지 동해안서 어획
- 생복어국·활복어회로 주로 즐겨

- 알 내장 껍질에 두루 맹독 함유
- 시원하고 고소한 그맛 포기못해
- 잘 손질해 껍질도 무침·국 요리

겨울철 동해의 바다는 풍성하다. 온갖 바다 생명들이 봄을 맞기 전 동해안으로 몰려와, 산란 전의 왕성한 먹이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겨울 동해에서 어획되는 어종들은 모두가 실하고 알차다.
겨울철 동해 바다의 대표 어종 밀복으로 차린 한상. 밀복 껍질 무침과 수육 등의 음식이 차려져 있다. 밀복은 참복과 함께 가장 맛있는 복어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껍질에 가시 같이 까칠한 돌기가 없고 부드러우며 콜라겐이 풍부해 무침으로 많이 먹는다.
곰치 장치 도치 망치가 그렇고 대구 방어 청어 가자미도 좋으며 도루묵 양미리 임연수어도 알지다. 그중 강릉 주문진의 겨울 바다에는 제철의 밀복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한마디로 이맘때 주문진항은 밀복으로 지천을 이루는 것이다.

며칠 전에 들른 주문진항의 어선 대부분도 밀복으로 물 칸을 가득 채우고 귀항하고 있었다. 주문진항 위판장 바닥에는 밀복이 발에 채도록 쌓여 퍼드득대고, 주문진 수산물 풍물시장 활어판매장에도 밀복이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정도다.

■겨울철 동해 대표 어종 ‘밀복’

동해 주문진항 위판장에 쏟아진 밀복. 주문진 활어판매장에서 제일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많이 잡힌다.
이렇듯 밀복은 겨울철 동해의 대표적인 어종이다. 11월부터 4월여 동안 동해안을 중심으로 다량 어획된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동해 북단 고성 속초에서부터 주문진 울진 포항 등을 거쳐 남하하면서, 동해 최남단 부산 기장에 이르기까지 전 연안에서 두루 잡히고 있다.

밀복은 맹독을 지니고 있으면서 참복과 함께 가장 맛있는 복어로도 알려져 있다. 겨울 이즈음이 제철이고, 주로 생복어국과 활 복어회로 즐겨 먹는다. 특히 참복과 함께 수놈 정소인 이리를 먹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어종이기도 해서 복국으로 더욱 사랑받는다.

이리와 함께 끓인 밀복국은 아주 시원하고 고소하면서도 부드러워, 속을 푸는 술국으로 여타 해장국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천하일미로 손꼽힌다. 오죽하면 이리와 함께 끓여낸 복국을 중국 춘추전국 시대의 경국지색 ‘서시(西施)의 젖’에 비유해 ‘서시유(西施乳)’라 불렀을까?

밀복 껍질은 가시같이 까칠까칠한 돌기가 없어 부드럽고 콜라겐이 풍부해 새콤달콤한 무침으로 먹는다. 원래 밀복은 맹독을 가진 복어로 알과 간 내장 껍질에 이르기까지 독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동해 사람들은 이 밀복 껍질로 국으로, 무침으로 즐기고 있다.

밀복은 학명으로는 ‘검복’이다. 원래 밀복은 살까지 독을 가져 먹지 않는 어종이다. 동해 쪽에서는 밀복으로 불리는데 크기는 40~50㎝ 내외. 등 쪽은 검은색을 띠며 배는 희다. 등과 배 사이에 노란색 세로띠를 형성하고 있으며 피부에는 가시 같은 돌기가 없고 밋밋하다. 외부의 공격을 받으면 배를 부풀리며 이를 빠득빠득 간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밀복을 두고 ‘맛이 좋아 잘 삶아서 기름을 쳐서 먹는다’고 기술할 정도로 그 맛을 인정하고 있기도 하다. 지역에 따라 금복 수릉태 복장어 복쟁이 등으로도 불린다.

밀복은 주로 채낚이로 잡는데, 불빛에 잘 모이는 밀복의 습성을 이용해 배에 집어등을 켜고 배 주위로 유인해 길게 드리운 외줄낚시로 낚아채 잡는다. 캄캄한 바다에서 한 줄기 빛을 보고 홀리듯 모인 밀복은 채낚이 낚싯줄에 부나비처럼 속절없이 줄줄이 잡혀 올라오는 것이다. 이렇게 채낚이로 잡힌 밀복은 신선도가 좋고 맛 또한 월등해 인기가 많다.

■최고의 해장국, 뱃사람의 노동음식

뜨끈하게 끓인 밀복국. 숙취 해소에 최고의 해장국이다.
복국은 숙취 해소와 신진대사에 유효해 해장국으로 최고 반열이다. 숙취가 심할수록 복국이 풀어주는 ‘속풀이’의 깊이는 웅숭깊다. 속을 뜨겁게 파고들면서 시원하게 어루만져 주는 것이, 뼛속까지 후련한 맛을 제공한다. 그중 밀복과 까치복 해장은 어느 해장국과도 비교할 수 없는 경지로 여기고 있다.

개인적으로 ‘일미(一味)의 밀복’ 맛에 대한 기억은 적지가 않다. 겨울 경주 폐사지를 답사하면서 장항리사지, 감은사지를 돌아들다, 감포항에서 얼어붙은 몸을 녹였던 밀복국, 동생과 함께 오랜만에 눈 내리는 속초 바다에서 차가운 소주와 함께 곁들여 먹었던 밀복회, 음식문화 취재 중 부산 기장 학리항의 어느 선장이 끓여준, 창자까지 시원하고 깊은 감칠맛의 밀복 김칫국….

특히 ‘밀복 김치 국밥’의 기억은 새삼스럽다. 봄이 오는 초입 밀복은 기장 연안에서도 곧잘 잡힌다. 해방 전후로는 기장 일대가 밀복 어업의 전진기지였을 정도로 어획량이 상당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학리에서는 겨울마다 밀복을 장만해 김치, 콩나물 등속을 넣고 밥과 수제비, 그리고 기장의 해초 까시리(가사리)를 넣어 ‘밀복 김치 국밥’을 걸쭉하게 끓여 먹었다. 밀복 조업 중 시장할 때 배 위에서 간단하게 해 먹던, 뱃사람의 삶이 깃든 노동음식이기도 했다.

밀복의 맛을 기억하며 주문진 수산물 풍물시장을 들른다. 이곳에서도 당일 위판한 동해 활 밀복이 수조마다 그득그득하다. 밀복 두어 마리 사서 할복집에 밀복회 장만을 맡긴다. 이 시장에는 활어 판매하는 곳과 할복비를 받고 생선회를 떠 주는 곳, 초장비를 받고 회를 먹는 곳이 따로 구분되어 있다.

밀복회를 떠서 인근 주문진 소돌해변에 자리를 잡는다. 푸른 동해가 눈앞에서 푸르게 일렁이다 파도처럼 달려들고, 밀복회는 동해 깊은 수심처럼 입안에서 계속 속살거린다. 쫄깃하고 쫀듯하며 씹을수록 깊은 감칠맛이 돈다. 동해의 밀복회가 끊임없이 사람에게 은밀하게 소곤대는 것이다.

복어는 세계적으로 120여 종이 서식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인근에 분포하고 있는 복어는 40여 종. 그중에서 10여 종을 식용한다. 그만큼 복어는 맹독이 많아 조리하기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독성을 약성으로 법제화해야 비로소 식재료가 되는 것이 복어라는 뜻이다.

오죽하면 ‘죽음과도 맞바꾸는 맛’ ‘유서를 써놓고 먹어야 할 맛’ ‘복어 한 말에 물이 서 말’이라는 동서고금의 식담이 생겨났을까? 그만큼 함부로 먹으면 안 되거니와 전문적인 기술을 습득한 이들에게 의탁해 먹어야 하는, 삶과 죽음 속 ‘경계의 음식’이기도 하다.

하여튼 겨울 끝머리에 맛본 밀복회 한 접시는 동해 주문진행을 기껍고도 흔쾌하게 했다. 또 하나의 ‘천계옥찬(天界玉饌)의 밀복’이 동해의 깊고 큰 물결처럼, 아직도 뱃속에서 크게 일렁이며 사람 마음을 요동치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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