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초상 120점에 얽힌 이야기
- 문신이자 화가 강세황 그린 2점
- 이명기가 그린 초상에는 ‘기품’
- 자화상에는 내면 세계까지 담아

인터넷에 자기 공간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더 근사한 프로필 사진을 찍느라 고심한다. 다행히도, 자기 얼굴을 스스로 수없이 찍어보고 수정해 원하는 사진을 마침내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기계로 찍는 사진에도 구구절절 사연이 많은데, 수많은 붓질로 완성되는 초상화에는 얼마나 많은 이야기가 얽혀 있겠는가.

왼쪽 그림은 이명기가 그린 ‘강세황 초상’이다. 1783년, 비단에 색, 145.5×94.0㎝,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오른쪽은 강세황 선생 본인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다. 1782년, 비단에 색, 88.7×51㎝, 국립중앙박물관. 태학사 제공

‘알고 보면 반할 초상’은 이성훈 부산박물관 학예연구사가 조선시대 초상화에 얽힌 다양한 이야기를 다룬 책이다. 저자는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에서 ‘조선 후기 사대부 초상화의 제작 및 봉안 연구’로 박사학위(2019)를 받은 뒤, 한국 미술사 관련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우리나라 초상화의 예술적 가치뿐 아니라 사회사적 시각에서 그 제작 배경, 유행, 기능 등을 분석한 연구를 계속해 오고 있다.

이번 책은 조선시대 초상화 120점을 분석하여 ‘기억과 추모, 권위와 욕망의 그림-초상화로 읽는 조선의 사회문화사’를 전해준다. 초상화의 미술사적 의미와 흐름을 밝힐 뿐 아니라, 어떤 배경에서 그려졌으며, 어떤 역할을 하고 어떤 힘을 발휘했는지, 단순한 그림 이상의 무언가로 여겼던 당대 사람들의 인식은 무엇인지, 정치 사회 문화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 추적한다.

조선시대에 초상화 제작을 의뢰받은 화가에게 요구된 가장 중요한 사항은 누구라도 주인공을 단번에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닮게’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송나라 유학자 정이의 “터럭 하나라도 더 많으면 곧 다른 사람이 된다”는 말이 자주 인용됐다. 화가들은 주인공 모습을 더 닮게 그리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면서 회화 기법상 큰 진전을 이루었다. 외형 못지않게 내면 즉 정신적인 면을 드러내는 것도 중시됐다.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어진’, 충성심의 증표로 왕이 하사한 ‘신하 초상’, 각 당파나 학파의 정통성을 과시하기 위해 그려진 ‘스승 초상’, 지방 수령과 백성의 이해관계에서 생겨난 ‘목민관 초상’, 출사와 은일 사이의 고뇌가 담긴 ‘사대부 초상’, 사랑과 애도의 마음이 담긴 ‘벗과 가족의 초상’. 초상화를 보고 있으면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태조 어진’과 ‘윤두서 자화상’처럼 본 초상화도 있지만, 대부분 조금 낯설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뛰어난 화가였던 강세황(1713~1791)을 그린 그림 두 점을 보자. 먼저 정조의 명으로 이명기가 그린 ‘강세황 초상’. 관복을 입고 의자에 앉은 모습에서 기품이 느껴진다. 또 한 점은 강세황이 그린 자화상이다. 자화상에서 강세황은 관모(오사모)를 쓰고 도포(야복)를 입은, 격식에 맞지 않는 차림이다. 자화상 상단 좌우에 직접 쓴 자찬문은 이런 복식을 착용한 까닭을 설명한다.

“저이는 어떤 사람인가, 수염과 눈썹이 하얗다./ 관리의 갓을 쓰고 야복을 입었네./ 마음은 산림에 있으나 이름은 조정의 명부에 올라 있음이 보인다./ 가슴에는 만 권의 서적을 간직했고 필력은 오악을 옮길 수 있다./ 세상 사람이야 어찌 알겠는가, 나 홀로 낙으로 삼는다./ 늙은이의 나이는 70이고, 옹의 호는 노죽이다./ 스스로 초상화를 그렸고 찬문도 스스로 지었다./ 이해가 임인년이다.” 오사모와 야복은 각각 ‘출사’와 ‘은일’의 상징물이다. 상반되는 두 가치 사이에서 고뇌하는 강세황의 내면세계를 자화상에서 표출했다.

초상화든 자화상이든, 외형은 물론 정신까지 담아내려 한 조선시대 초상화를 보고 있자니, 화가와 그 앞에 앉은 주인공이 상상된다. 보이는 것은 터럭 하나까지 그려내고, 보이지 않는 것도 그려야 하는 고난도 작업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