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시 구절이 있다. “드디어 깜깜한 어둠 속에 묻힌/ 시의 하얀 뼈가 보인다”(고 이해웅 시인 2004년 시집 ‘곡선의 저녁’에 실린 ‘두엄’ 끝 대목) 작가 김담이(사진)가 최근 펴낸 첫 소설집 ‘경수주의보’를 읽으며 이 시가 자꾸 떠올랐다. 왜 그랬을까?

많은 예술가는 사물·현상의 본질에 가닿고 싶어 한다. ‘본질’은 궁극·심연·밑바닥·고갱이 등으로 바꿔도 된다. ‘하얀 뼈’라는 시어 또한 비슷한 말이다. 예술가마다 그런 하얀 뼈에 다가서는 경로와 방식은 다르다. 사뿐사뿐 나긋나긋 경쾌하게 다가가기도 하고, 무겁고 세게 육박하는 예술인도 있다. 후자의 경우, 작품이 다소 불편하거나 낯설어진다 해도 공포·기괴·그로테스크(괴상함) 등의 세계를 곧잘 넘나든다. 그렇게 밀어붙이면, 하얀 뼈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수주의보’는 후자에 속한다.

단편소설 8편 가운데 맨 앞에 나오는 ‘당신을 위한 낯선 천국’부터 얼얼하다. “모나크나비가 2000마일을 날아 따뜻한 모나크로 돌아오는 시기에 모나크를 찾아오는 사람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관광이 목적인 사람과 죽음이 목적인 사람.”(16쪽) 죽음·가난·폭력과 관광·휴양이 극명하고 교차하는 모나크에서 펼쳐지는 출구 없는 폭력세계와 난맥상은 읽는 이에게 한 가지 질문을 던진다. 사람은 왜 이다지도 절실하고 처절하게 자기 목적에 매달리는가? 심지어 각자의 목적은 왜 이렇게 다른가? 대체 인간은 뭔가? 이 질문이 ‘하얀 뼈’에 해당한다.

두 번째 작품 ‘집으로 가는 길을 알려 주세요’에서는 반전이 일어난다. 환상이 섞인 우화풍의 이 작품은 사랑스럽다. 예술가에게 바치는 소설 같기도 하고,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사람들이 꿈과 순수함을 잃거나 버리지 않기 바라는 마음에서 쓴 우화로도 다가온다. 줄거리는 이렇다. 책을 열아홉 권이나 낸 잘나가는 아동문학가인 남자가 외국 문학행사에 다녀왔더니 모든 게 사라지고 없다. 함께 사는 그녀도 없어졌다. 단서는 텅 빈 집에 남은 약도와 전화번호뿐이다.

그 약도에 의지해 길을 나섰지만, 여정은 엉망진창 뒤죽박죽이다. ‘이 세상’의 질서와 가치가 통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에 들어와 버린 이 잘나가는 아동문학가는 과연 ‘집’을 찾아갈 수 있을까? 독자는 문득 이 남성이 자기 모습이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낭만적 진실’은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면서 집필에 매달리지만 아무런 진전도 이루지 못하는 극작가가 자신을 “수집가”라고 밝힌 신비한 여성의 도움으로 먹고사는 문제에서 놓여나지만 그 상태에 안주하면서 ‘수집품’의 문으로 들어서는 이야기를 담았다. ‘유령들’ ‘태양 속으로 한 발짝’은 기괴하게 변해버린 공상과학 같은 세계에 내몰린 인간군상을, ‘경수주의보’는 잘나가는 강자의 세계에 우연찮게 편입한 가난한 문학가가 눈 뜨는 과정을 보여준다. 김 작가는 2022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동화 당선으로 등단했다. 장편동화 ‘올해의 5학년’으로 제39회 눈높이아동문학대전 아동문학부문 대상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