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록·허구가 천의무봉 얽힌 소설
- 동서양 명시·자작시 곳곳 등장
- 난세풍운과 건국의 야망 표현한
- 이 대하소설 자체가 한 편의 시
- 당의 명시인 두보 이상은 위징
- 특히 좋아했던 천재 이하까지
- 작품에 인용하며 생명력 표현
나라는 망했으나 산하는 여전하다. 참 수연(愁然)한 대목이다. 나림 이병주가 즐겨 인용하는 두보의 시다. ‘춘망(春望)’ 한 대목 “국파산하재(國破山下在)”는 ‘바람과 구름과 비’ 앞부분에 인용된다. 대하 서사의 웅장함과 처연함을 한 마디로 압축하는 서시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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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시안에 있는 역사 테마파크 대당부용원에 당나라 때 천재 시인 이하(李賀)를 기리는 조각과 그의 유명한 작품 ‘마시(馬詩)’가 새겨져 있다. 나림 이병주는 이하 시인을 특히 좋아했고 그의 작품을 자주 인용했다. |
이 시는 장편소설 ‘산하’에도 나오고 나림이 필화를 겪게 한 장편 에세이 ‘조국의 부재’ 서두에도 등장한다. 1960년 ‘새벽’에 실린 ‘조국의 부재’는 돈이든 권력이든 힘 가진 자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고 경향의 식자(識者)를 격동시킨 명문으로, “조국이 없다. 산하가 있을 뿐이다”로 시작한다. 인류 역사와 한국사를 관통하는 통찰에 전율이 이는 글로 국파산하재의 나림 버전이다.
나림의 문장은 소설보다 오히려 에세이에서 더 빛난다는 평이 많다. 나는 둘 다 좋다. 문사일체(文史一體)의 정수를 구현한 사마천과 에세이스트 루쉰을 사숙하고, 레토릭의 절정 고수 니체를 깊이 연구했으며 소설의 새 지평을 연 도스토옙스키 전문가인 나림의 문장은 소설과 에세이 모두 명문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더해 나림은 탁발한 시인이기도 하다. 자작시가 작품 곳곳에 자연스레 배치되고, 한시(漢詩)를 비롯한 숱한 동서양 명시가 적재적소에 촌철살인으로 인용된다.
특히 ‘바람과 구름과 비’는 한시와 자작시의 향연이다. 난세 풍운의 험한 곡절을 기록하고 건국의 그랜드 디자인을 그리는 대서사에 붙인 ‘바람과 구름과 비(碑)’ 타이틀 자체가 시다.
■슬픔과 고뇌의 시가 많구나! |
| 1989년 KBS가 방영한 드라마 ‘바람과 구름과 비’ 한 장면. |
누구나 마음에 시가 있다. 슬픔과 고통은 누구에게나 예외를 두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가끔 감당하기 어려운 기쁨의 순간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인생은 기쁨보다는 슬픔과 고뇌가 더 많다. 누구나. 인생 칠정 희로애락애오욕(喜怒哀樂愛惡欲) 중 오직 3개만 기쁘고 사랑스럽고 즐거울 뿐이다. 나머지 4개는 버겁고 괴롭다. 당시(唐詩) 300수나 송사(宋詞) 300수 중 후세의 공감을 얻어 애송되는 시 대부분은 애상(哀傷)시다.
‘바람과 구름과 비’도 기쁨에 겨워 쓴 시, 환락의 감탄은 적고 고뇌와 수탄(愁嘆)의 시는 많다. 원호문의 시 “국가불행시인행(國家不幸詩人幸)”이 바로 그런 맥락이다. 나림은 이 대목을 ‘바람과 구름과 비’ 뿐만 아니라 ‘행복어 사전’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인용한다. 세상에 행복한 시인은 없다. 나라가 불행해야만 시인이 행복하다면 그 행복이 행복일 수는 없다. 시는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란 나림의 뜻이다. “시는 시인의 운명이 완성되는 것을 증오한다.” 두보의 절창이다.
나림은 장자 풍이다. 소설 ‘장자에게 길을 묻다’는 장자의 상상력에 나림의 상상력을 더한 걸작 중 걸작이다. 나는 나림의 장자에 대한 헌사로 읽었다.
‘‘바람과 구름과 비’에는 ‘장자’의 “혜고부지춘추(蟪蛄不知春秋)”가 인용된다. 대하소설 ‘지리산’에도 “매미는 가을을 모른다”는 문장이 나온다. 하루살이 버섯은 초하루와 그믐을 알 수 없고, 매미나 쓰르라미는 봄가을을 모른다. 짧은 생은 긴 생을 이해할 수 없고, 작은 지식으로 큰 지혜를 파악할 수 없다. 사실 혜고(蟪蛄: 여치 쓰르라미 매미 등으로 번역됨) 뿐 아니라 사람도 인간과 세상을 아는 척해서는 안 된다. 인정과 세사를 조금이라도 제대로 이해하려면 인간 심연과 세상의 넓음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선뜻 나설 일이 아니다.
한 무제가 쓴 문학작품인 ‘추풍사’의 “환락극혜애정다(歡樂極兮哀情多)”가 등장하면 긴 겨울밤의 질펀한 축제도 사그러진다. 환락이 절정에 이르면 오히려 슬픔의 정이 스민다는 뜻이다. ‘추풍사’는 로맨티스트 최천중의 최애 시다.
나림은 난해시(難解詩)로 소문난 당나라 시인 이상은의 ‘금슬(錦瑟)’을 한 구절 한 구절 해설하기도 하고, 광통교 책방에 막 입수된 공자진의 ‘정암문집’을 읽어주기도 한다. 공자진은 뛰어난 시인이며, 청말 개혁가와 혁명가에게 깊은 영향을 준 대사상가다. 나는 중국 사상을 공부하는 학도로 나림이 공자진의 저술까지 숙독하고 있는 데 놀랐다. 과연 나림의 경지는 어디까지일까. 깊게 숨을 들이켜고 다시 나림을 공부하게 된다. ‘나림학’, 기초 닦기가 요원하다.
■빼어난 시인의 뛰어난 시당나라의 유명한 문신 위징이 쓴 ‘술회’의 한 대목 “인생감의기, 공명수부론(人生感意氣,功名誰復論)”도 나림 애창시다. 나림이 15세부터 애송하던 시다. 중학생이 일본 이와나미 문고판 ‘당시선(唐詩選)’에 실린 이 시를 읽고 해설하는 대목에서 백부가 흐뭇해하는 장면이 ‘지리산’에 나온다. ‘바람과 구름과 비’의 최천중이 뜻 맞는 인사를 만날 때마다 함께 외며 의기를 모은다. “의기투합하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인생에 굳이 공명을 논할 이유가 없다”는 골기 그득한 사나이의 호언이다. 그 호언은 세월에 꺾이고 세상에 바래면서 대개 허언으로 끝나고 만다. 국사(國師)다웠던 위징 정도 되어야 비로소 술회할 수 있는 경지다.
나림이 특히 좋아했던 시인이 중국 당나라 때의 이하(李賀)다. “이태백이 천재라면, 백거이는 인재이며, 이하는 귀재(鬼才)다.” 심장을 토하듯 시를 쓰다 24세에 백발이 되고 27세에 요절한 귀재 이하에게 나림은 동병상련을 느꼈다. 귀기(鬼氣) 어린 재능을 맘껏 펼쳐보지 못한 것이 안타까웠고, 청춘을 잃어버린 세대로서 공감도 있었다. 나림은 “나의 불우와 불행은 청춘을 잃었기 때문이다”고 회고했다. 이하의 대표 시 ‘문우 진상에게 바침’ 한 대목이다. “장안의 한 젊은이, 나이 스물에 벌써 마음은 늙어버렸다. 능가경을 늘 책상에 두고 초사도 손에서 놓지 않지만, 곤궁하기만 한 인생, 저녁나절 그저 술 한 모금 마실 뿐이다.”
회재불우(懷才不遇) 천재의 적막과 허망이 물씬 느껴진다. 나림은 천재를 아끼고 좋아했다. 귀기 서린 천재라면 더욱 존경이 강하다. 나림이 역사소설로 쓴 ‘허균’이 그렇고, 뉴욕을 배경으로 한 ‘허드슨강의 강변 이야기’ 속 알렉스 페트콕이 그러하며, ‘지리산’의 박태영이 그렇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최천중을 비롯한 17인 지사의 고군분투 활약상이지만, 결국 남은 건 천재 시인 민하의 시 몇 편이다. 그렇게 보면 이 대하소설 또한 천재에 바치는 송가라 할 수 있다. 천재에 대한 송가는 허무와 절망의 역사에서 스스로 생명력을 잃지 않고 살아남은 사람들에 대한 찬사다.
천재는 내부에 엄청난 에너지를 가진 사람이다. 나림은 거기에다 “감격할 줄 아는 재능”을 더했다. 천재는 감격성에 있다. 아름다운 것을 상찬하고, 훌륭한 것에 감격하며, 착한 일을 존경하는 마음과 정열을 가진 사람이다. 그 에너지와 감격성은 일상의 굴레에 구속되지 않는다. 천재는 삶부터 죽음까지 스스로 선택하는 자유인이다.
■춤에 관한 사유나림 한시의 절정은 ‘바람과 구름과 비’ 속에서 등장인물 민하가 모(母)자와 무(舞)자를 제자(題字)로 지은 시다. “모자사주자(母字似舟字), 일견사주형(一見斜舟形), 만적인애하(滿積因愛荷), 여사불피경(如斯不避傾)”. 뜻은 “어미 모라는 글자는 배 주자를 닮았다. 얼핏 보면 비스듬한 배 모양이다. 사랑의 짐을 가득 실었으니 이렇게 기울어질 수밖에 없다”로 풀이할 수 있다. 나림의 사모곡(思母曲)이다.
무(舞)를 갖고는 이렇게 썼다. “무자사무(舞字似無), 무직환상(舞織幻像), 여순여류(與瞬如流), 종내무화(終乃無化), 무자사무(無字似舞), 무심화무(無心化舞), 무심무심(舞心無心), 불이무무(不二舞無)”. 해설하면 “춤추는 무는 없을 무와 닮았다. 춤은 배 짜듯 환상을 꾸며 순간순간 흐르다 결국 없을 무로 화한다. 없을 무는 춤추는 무와 닮았다. 무심이 춤으로 화하니 춤추는 마음이 곧 무심이다. 춤출 무와 없을 무는 원래 둘이 아니다”이다. 나림의 예술론이자, 인생론이다.
‘바람과 구름과 비’는 실록과 허구가 천의무봉으로 얽힌 대하드라마다. ‘오실오허(五實五虛)’, 절반은 실록이고 절반은 허구다. 시인 민하가 실존했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나는 귀재(鬼才) 민하의 시는 나림의 자작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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