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망울이 하나둘 터지고 바람에서 살랑살랑 봄 냄새가 느껴지는 요즘, 보사노바 듣기 좋은 날씨다. 1950년대 후반 브라질에서 탄생한 보사노바는 봄은 물론 여름 가을 겨울 계절을 가리지 않고 꾸준히 사랑받는 음악이다. 더할 나위 없이 딱 적당할 정도로 흥겹고, 거슬릴 것 없이 편안하지만 때론 애잔하고 처연하고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보사노바 음악이 흐를 때면 늘 ‘인생은 보사노바지’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이 재즈 록 메탈 레게 발라드일 때도 있겠지만 이왕이면 보사노바 같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이기도 하다.
한창 보사노바를 찾아 듣다 보사노바 연주자의 이야기를 담은 애니메이션 ‘그들은 피아노 연주자를 쐈다(포스터)’를 발견했다. ‘치코와 리타’의 감독이 만든 보사노바 애니메이션 영화라니, 제목은 좀 수상하지만 보사노바의 푸른 바다에 풍덩 뛰어들 듯 감상했다.
우선 재즈와 보사노바를 좋아하는 음악 팬들에겐 강추하는 애니메이션이다.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 주앙 질베르토 같은 보사노바의 전설들은 물론 엘라핏츠 제랄드, 빌 에반스 같은 재즈 뮤지션들의 마법 같은 연주들이 넘치도록 흐른다. 그러나 정작 이야기는 충격적이고 무섭다. 단 한 장의 앨범을 남기고 투어 중 갑자기 실종되어 버린 피아니스트 ‘테노리우 주니오르’에 관한 이야기다. 1960년대 남미의 군부 독재정권 시절, 아무런 이유 없이 길거리에서 끌려가 고문 받고 죽임당한 수많은 희생자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에 보사노바 열풍이 불었지만 정작 보사노바의 본고장에선 이런 끔찍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만약 다른 때였다면 그저 과거 야만의 시대에 있었던 보사노바에 얽힌 슬픈 전설 정도로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허나 시절이 시절이라 어쩐지 남 일같이 느껴지지 않는다. 과장이 아니라 2024년 대한민국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다.
전 세계가 K 콘텐츠를 즐기고 있는 동안 비상계엄이 떨어졌다. 체포 명단엔 뜬금없이 우리들의 영원한 차붐 ‘차범근’의 이름까지 있었다. 복잡하고 겁이 나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다시 보사노바의 선율과 리듬에 귀를 기울여 본다. 죄 없는 피아노 연주자를 쏜 이들은 이제 죽고 없겠지만 그럼에도 보사노바는 여전히 대체할 수 없는 바이브를 자랑하며 수많은 플레이리스트 속에 살아있다. 보사노바 네버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