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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60> 부산 해물탕

쇠투구에 끓여먹던 전골…전후엔 자갈치 해물 왕창, 이젠 고급요리 신분상승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5-04-15 19:13:05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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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시대 무관 모자였던 ‘전립’
- 그 모양 닮은 냄비요리가 효시
- 부산 값싼 해물 넉넉하게 넣어
- 여럿 모여앉아 먹던 ‘수중전골’
- 당면·우동사리로 안주 삼기도
- 투박해도 서민이 사랑했던 맛

부산에는 부산시가 선정한 향토음식 13가지가 있다. 돼지국밥, 밀면, 곰장어 요리, 복어요리, 아귀찜, 붕장어 요리, 생선회, 동래파전 등 전국적으로도 잘 알려진 음식과 더불어 재첩국, 붕어찜, 낙지볶음, 흑염소 불고기, 그리고 해물탕이다.
부산의 중장년층에게 많은 사랑을 받은 ‘수중전골’. 해산물 채소 당면 등을 넣고 끓여 먹는 음식이다. 고급 해산물을 넣은 요즘의 해물탕보다 소박한 재료를 사용했다.
그중 반 이상이 수산물 식재료로 조리한 음식이란 점이 특징적이다. 부산은 한반도 동해와 남해를 끼고 해안선 따라 동서로 길게 이어진 지형을 갖고 있다. 이 때문에 사시사철 동해의 한류와 남해의 난류가 교차해 다양하고 풍성한 어족을 어획하고 있다. 게다가 대도시이기에 생산과 소비가 역동적으로 이뤄지는 곳이라, 이 해산물을 식재료로 하는 음식 또한 오래전부터 발달해 왔다. 그중 해물탕은 부산이기에 향토음식으로 입지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을 모두 갖춘 음식이다. 동해와 남해의 바다 식재료가 다량으로 수급이 가능하고 그 소비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깔끔한 국물이 매력적인 향토음식

수중전골에 우동사리를 넣은 모습.
해물탕은 말 그대로 갖가지 해산물을 넉넉하게 넣고 끓여낸 탕이다. 우선, 탕(湯)은 기본적으로 국보다 더 오래 끓이고 더 진한 맛을 내는 국물 요리로, 국보다는 고급 식재료를 활용한 요리가 많다. 식재료에 따라 갈비탕 설렁탕 염소탕 보신탕 삼계탕 오리탕 용봉탕 추어탕 해물탕 등이 있겠다.

해물탕은 주로 조개류 갑각류 두족류 등의 해산물과 콩나물 무 대파 버섯 등의 채소를 넣고 얼큰하게 끓여서 먹는다. 여러 가지 채소와 칼칼한 국물을 곁들여 먹는 조리법은 매운탕과도 비슷하다. 그러나 매운탕은 주 식재료가 생선이나 생선부산물로 끓여내고, 해물탕은 생선을 제외한 해산물을 중심으로 끓여내는 것이 다르다.

부산의 해물탕은 다른 지역의 해물탕과는 몇몇 차이점이 있다. 우선 국물이 진하지 않고 깔끔하고 시원하다는 점이다. 이는 무와 콩나물 등 채소를 넉넉히 넣기 때문이기도 하겠고, 맵싸하면서도 속 시원한 간의 양념으로 국물을 내기에 그렇기도 하다. 이를 부산 사람들은 속을 다스리는 술국으로도 즐긴다. 그리고 국물이 끓자마자 바로 해물을 꺼내어 먹는다는 점도 특별하다.

부산은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 한국전쟁 시절에 이르기까지, 근현대사의 거친 파고를 견뎌낸 곳이다. 부산에 정착한 여러 지역의 이주민들이, 신산한 삶 속에서도 가족의 끼니를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아야 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하기에 적은 양의 조악한 음식을 함께 먹고, 덜어주고, 나눠 먹어야 했던 것. 식재료 또한 마찬가지라 기존 식재료 대신 흔하고 열악한 식재료로 대용하고, 복잡한 조리법은 간단하고 빠른 조리법으로 대체해, 여러 식구가 함께 둘러앉아 먹는 음식이 발달하게 된 것이다.

김홍도의 ‘춘절 야유도’. 전립투로 보이는화로에 고기를 구워 먹고 있다.
부산의 해물탕도 처음에는 그런 범주의 음식이었다. 자갈치시장을 중심으로 제철의 싸고 넉넉한 해산물과 채소를 한 양푼이 가득 넣고 한데 끓여 먹었던 것. 해물탕이 끓으면 우선 해산물을 건져 먹으며 허기를 속이다가, 국물이 진하게 닳을 때쯤 푹 익은 채소와 국물로 밥에 비벼 먹기도 하고 소면을 말아 배를 채우기도 했다.

이렇게 시작된 ‘부산 해물탕’은 지금은 아주 고급 해산물 요리로 변신, 부산을 대표하고 있다. 우선 해물탕 재료부터 큰 변화가 있다. 대부분의 해물이 생물에서 활 해산물로 바뀌었고, 그 종류도 다양하고 고급 수산물로 채워졌다는 것이다.

활전복을 비롯해 산낙지 문어 키조개 가리비 백합 꽃게 대하 심지어 랍스터까지 넣는 일명 ‘황제 해물탕’ 방식이 그 대세다. 그래도 다른 지역과 달리 끓자마자 바로 먹기에 해물은 싱싱하고 부드럽고, 국물이 깔끔하고 시원한 맛을 더한다. 해물탕과 함께 해물찜을 함께 취급하는 것 또한 예전과 다른 점이기도 하다.

■지금도 인기 옛 해물탕 ‘수중전골’

해물탕과 함께 취급하는 해물찜. 탕 종류 대신 찜을 선호하는 이들을 위해 함께 판매하는 곳이 많다.
그러다 보니 옛 부산 해물탕 맛이 그리운 중·노년층에게는 추억의 음식이 된 지 오래다. 그럴 때마다 옛 향수 삼아 먹는 해물탕 요리가 부산에 아직 있다. 바로 ‘수중전골(水中氈骨)’이다. 수중전골은 전골냄비에 각종 해산물과 채소, 당면 등을 넣고 끓여 먹는 음식이다. 새우 낚지 조개 등속을 직접 까거나 먹기 좋게 장만을 해, 육수가 끓고 해물이 익으면 바로 먹을 수 있다. 한때 국제시장 한 곳에는 수중전골 골목이 생길 정도로 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원래 전골은 옛날 전쟁 때 병사들이 쇠로 만든 투구를 벗어 그 안에 음식을 만들어 먹었던 것이 그 유래라 전해진다. ‘전골(氈骨)’의 뜻은 조선시대 무관의 모자인 ‘전립(氈笠)처럼 생긴 그릇(骨, 골)’, 전립골(氈笠骨)과 ‘전립 모양의 냄비’, 전립투(氈笠套) 등에 요리를 한 음식을 이르다가 이후 ‘전골’이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투구를 뒤집어 놓은 듯한 전골냄비에 육수를 넣고, 고기나 해물 등속과 채소를 넉넉하게 준비해 바로바로 익혀서 먹는 것이 전골 요리이다. 그 대표적인 것이 궁중요리인 ‘신선로’가 되겠다. 주 식재료에 따라 여러 음식으로 조리해 먹을 수가 있는데, 불고기전골 염소전골 오리전골 해물전골 낙지전골 두부전골 버섯전골 등이 있겠다. 부산에는 각종 해산물을 넣고 끓여 먹는 ‘해물전골’을 수중전골이라 부른다.

‘수중전골’은 1975년 자갈치시장 인근 국제시장의 한 골목 안에서 시작된다. 근처에는 미화당백화점 유나백화점 삼천리백화점 등 당시의 쟁쟁한 고급 잡화점과 다양한 의류, 구두 등을 취급하는 패션 골목이 즐비해, 유동 인구가 부산에서 가장 많았던 시기였다.

주변의 고등어구이를 팔던 ‘고갈비골목’과 다양한 주전부리를 팔던 ‘먹자골목’도 늘 사람들로 넘쳐났다. 이즈음 자갈치시장에서 매일매일 공급하는 제철 해물로, 얼큰한 양념과 더불어 시원하고 칼칼한 국물의 해물전골을 제공했던 것. 가격이 저렴했기에 주로 젊은 층이 많이 드나들었는데, 대학생, 직장인, 주변 시장상인 등과 주머니가 가벼운 서민들도 심심찮게 드나들면서 전국적으로도 그 명성을 크게 얻게 되었던 것이다.

40~50년 전 청춘을 보낸 이들에게 수중전골 집은 아련한 추억이 새록새록 묻어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수중전골 속 해물로 먼저 빈속을 허겁지겁 채운 후, 육수를 계속 보충해 달래서 술추렴을 이어가기도 하고, 밥을 비벼 배를 채우기도 했던 것이다.

저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으니 세 사람이 2인분을 시키거나, 네 사람이 3인분을 시켜도 주인장들은 너그러이 눈을 감아주었다. 가끔 여윳돈이 있을 때면 그나마 당면이나 우동 사리를 주문해 안주를 대신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요즘도 수중전골 집을 찾는 이들이 있다. 주로 옛 입맛이 그리운 이들이거나 타지의 젊은 청춘들이 부산의 향토음식을 먹어보기 위해 찾는 것이다. 그러나 한 지역의 ‘노포의 맛’은 그 지역과 지역 사람들에게 입맛이 길들었기에, 그 맛의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다.부산을 추억하는 노포의 맛, 또는 부산 서민들이 한때 사랑했던 해물탕이란 점을 이해하고 먹어보는 것이, 부산 수중전골의 그 투박하고 쓴맛이 돌 정도의 칼칼한 맛을 이해하기 쉬울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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