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만담꾼 할머니’ 자처 역사학자
- 옛 서구인 평범한 일상 등 소개
- 고대~근대 서른일곱개 이야기
- 관습부터 법률까지 쉽게 풀어내

자기 키의 절반이나 되는 거대한 가발을 쓴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풍자한 그림 (1768). 북피움 제공

‘역사’하면 무엇이 떠오르는가. 연표의 나열, 왕조의 흥망성쇠, 외워야 할 수많은 내용, 그 내용을 이리저리 비틀고 꼬아 만든 시험 문제…. 이런 것이 역사를 지루하게 여기도록 한다. 지루하니 이해가 안 되고, 이해가 안 되니 억지로 외우는 과목이 역사인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역사를 재미있게 전달하면 훨씬 이해가 쉬울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 때가 있다. 대중이 역사를 소재로 하는 사극 드라마나 영화에 더 끌리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역사 공부는 재미없을지언정, 이야기는 재미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미가 지나치면 그 내용을 둘러싸고 가끔 ‘역사 왜곡’ 논란도 발생한다.

30여 년간 서양 고대사를 공부했고 군산대학교 역사학과 교수로 학생을 가르치는 역사학자 정기문이 역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저자는 “역사학은 과학이면서 문학”이라고 말한다. 역사가는 과거의 사실, 사실과 사실의 연관 관계를 실증적으로 밝혀낸다. 그러나 사실을 복잡한 수식 언어 법칙으로 표현하기보다 흥미로운 이야기로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최고의 역사가는 ‘나이 드신 할머니’란다.

“재치 있는 만담꾼 할머니는 어린 손녀나 동네 사람들에게 그들이 알 수 있는 언어로 그들의 동감을 얻어 가면서 삶의 여러 이야기를 해준다. 무언가 배울 것이 있고, 생활하는 데 유익하다면 금상첨화이지만, 그저 심심풀이 땅콩이어도 좋다.” 저자는 이 책에서 만담꾼 할머니를 자처한다.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를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거시적으로 재구성했다.

과거를 살아간 사람들의 소소하고 평범한 삶이 현재의 사람들에게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된다. 저자는 역사책이 주는 즐거움은 옛이야기처럼 즐겁게 읽다 보면 ‘역사’라는 인류의 사고와 행동양식의 거대한 변화를 파악하는 동안에 저절로 인식의 지평이 확장된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고대 이집트부터 로마 제국을 거쳐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 사람은 어떻게들 살았을까? 이 책은 현대인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기기묘묘한 관습과 법률, 당대의 사고방식, 수많은 사건과 사람들로 가득 찬 서른일곱 이야기보따리를 여섯 밤에 걸쳐 풀어놓은 이야기 역사책이다. ‘고대 왕국과 제국, 그리고 민주주의’ ‘로마 제국 흥망사’ ‘중세 기독교의 이중생활’ ‘천년의 암흑, 그래도 삶은 계속되었다’ ‘천년의 밤이 지나고 새벽이 밝아오다’ ‘빵과 잠,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의 갈림길’의 여섯 개 장으로 구성됐다.

고대인은 긴 머리가 초능력의 원천이라고 여겼다고 한다. 삼손은 들릴라에게 머리카락이 잘려 힘을 잃었고, 스파르타의 병사들은 전투 전에 각별히 머리를 세심하게 손질했다. 대머리가 되면 큰 낭패였기에, 이집트와 로마인은 가발을 즐겨 썼다. 가발은 17세기에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책에는 당시 풍속을 담은 그림도 있다.

“여성들은 예쁘게 보이기 위해서 높이가 자기 키의 절반이나 되고, 몇 개의 층으로 쌓은 가발을 쓰기도 했다. 남자의 경우 주로 정치가들과 성직자, 변호사, 의사 같은 전문직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가발을 사용했다.” 헤어스타일은 동서고금·성별을 불문하고 중요한 문제, 인류 역사의 한 단면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