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기 기획인 ‘신선한 유산’展
- 역사관과 예술의 협업 신선
부산근현대역사관(부산 중구 대청동) 기획전시실에서 ‘2025 테마교류전 황성준 기증사진전 MADE IN BUSAN’이 지난달 29일 개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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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달 29일 부산근현대역사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린 ‘황성준 기증사진전 MADE IN BUSAN’ 개막식에서 관람객이 연구진(오른쪽)의 설명을 들으며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
오는 8월 31일까지 길게 이어지는 이 기획전은 자못 관심을 끈다. ‘부산의 제1세대 상업광고 사진가’로 꼽히는 고(故) 황성준 작가가 약 40년에 걸쳐 찍은 작품 가운데 산업과 상업 측면에서 부산의 기세가 특별히 활기찼던 1960~1970년대 풍경을 전시하기 때문이다. 그 속에 부산이 빛났던 시기가 있고, 이 도시 정체성의 바탕이 만져진다. 이 정도 역사를 간직한 도시라면 부산은 여전히 뭔가 할 수 있다고 조용히 다짐하는 관객도 꽤 있을 법했다.
이 전시를 보러 가는 길에는 기대감을 품게 하는 요소가 또 하나 있다. 부산근현대역사관의 명물인 금고미술관에서 지난 3월 25일 시작해 오는 8월 17일까지 여는 광복 80주년 기획전 ‘신선한 유산, 예술로 미래를 열다’를 함께 볼 수 있기 때문이다. 6·25 한국전쟁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1129일 동안 이어졌는데, 부산은 그중 1023일 동안이나 임시수도였다. 어려웠던 그 시기 대한민국을 품고 지킨 부산에는 ‘피란수도’의 문화유산이 남았고 이를 바탕으로 피란수도 부산유산의 세계 유산 등재(현재는 잠정 목록으로 등재됨)가 지금도 추진되고 있다. 미술 작가들이 피란수도 부산유산에 달라붙어 예술로 새롭게 가꾸고 오늘의 시민 앞에 선보이는 전시가 ‘신선한 유산, 예술로 미래를 열다’이다. 산업과 예술이라는 렌즈로 부산이라는 도시를 한 장소에서 볼 수 있으니 일석이조 아닌가.
■상업광고 사진에서 만난 활력
지난달 29일 부산근현대역사관 2층 기획전시실 앞에서 ‘황성준 기증사진전 MADE IN BUSAN’ 개막식이 간소하게 열렸다. 고 황성준 사진가의 유족과 함께 사진가 김진철 씨도 참석했다. 황성준 사진가의 제자인 김진철 작가는 2024년 스승이 남긴 귀중한 상업광고 사진을 부산근현대역사관에 기증한 사람이다. 기증자와 유족을 개막 현장에 초대해 고마움을 전하는 모습은 인상 깊었다.
전시에는 1960~1970년대를 중심으로 부산 산업 현장을 담은 생생한 사진 200여 점을 엄선해서 걸고, 영상에 담아 소개도 한다. 압도할 만한 규모를 자랑하는 전시라기보다 세심하게 들여다보며 속에 담긴 뜻을 곱씹기에 좋은 현장이었다. 상업광고 사진을 찍는 사람이 드물고 상업광고 사진에 대한 인식이 높지도 않았을 그 시절, 1935년 울산에서 태어나 1968년 부산으로 온 사진가 황성준이 찍은 수많은 사물과 현장은 지금 부산 문화사를 풍성하게 해주는 중요한 유산이 됐다.
작가가 부산에 정착한 1968년은 부산이 대한민국의 성장 엔진처럼 산업과 상업에서 몸을 일으킨 시기다. 부산의 향토 백화점(미화당백화점의 셔틀버스 사진이 눈길을 끌었다), 거칠고 활기차게 돌아가는 공장, 다종다양하며 산뜻한 외관의 각종 제품, 그걸 만드는 노동자 모습을 보다 보면 ‘1960~1970년대 부산에서 이 모든 일이 이뤄졌다고?’ 하는 놀라움과 긍지가 생길 듯했다. 보성다이아몬드 색연필, 백설표 밀가루, 대선 오가피주, 세신실업 수저세트, 내쇼날푸라스틱, 아피스 필기구, 금성사 선풍기 사진 앞에서 관객은 시간여행을 했다.
■예술과 만난 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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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근현대역사관 금고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신선한 유산, 예술로 미래를 열다’ 전시의 여상희 작가 작품으로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를 형상화했다. |
‘신선한 유산, 예술로 미래를 열다’를 보기 위해 지하 1층 금고미술관으로 내려섰다. 지난 3월 25일 개막했을 때도 이 전시를 봤으니, 두 번째 관람이다. 이 기획전은 우선 발상이 인상 깊다. 기록 자체에만 집중할 것 같은 ‘역사관’이 과감히 예술과 협업해, 과거에서 전해져 오는 문화유산을 오늘의 눈으로 재해석하고 새롭게 가꿔보자는 기획 의도다. ‘지금-여기-우리’라는 틀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는 데는 많은 예술인·인문학자가 동의한다.
이 전시는 현장에 내걸린 작가 소개와 작품 소개 글·영상을 조금은 적극적으로 참고해 가며 관람하면 더 좋을 듯했다. 전시장에서 작품 정보 등에 별로 의지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느낌을 받아 간직하는 방법은 물론 좋은 접근법이다. 하지만 이 전시의 경우 예술 작업의 대상이 된 부산 피란수도 유산이 각각 ‘역사성’을 띠기에 작품 정보를 참고해 가며 맥락을 잡아나가는 방법은 장점이 선명했다.
이 전시의 피란수도 유산과 작가는 다음과 같다. ▷우암동 소막 피란주거지(김제원) ▷아미동 비석 피란주거지(여상희) ▷부산항 제1부두(김서량) ▷유엔묘지(구지은) ▷하야리아 기지(김유경) ▷미국대사관 겸 미국공보원(유은석) ▷국립중앙관상대(김유리)▷임시중앙청(박지원)▷경무대(금진). 김제원 작품에서 섬유를 직접 짜서 걸쳐놓은 이유를 느끼고, 여상희 작품에서 아미동 비석 주거지를 재구성한 효과를 체감하며, 김서량 작품에서 부산항의 소리·빛을 독특하게 접하는 식으로 전시는 여정처럼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