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 찾은 서양인 위한 풍속화
- 그림에 한글로 작품 설명 적어
종이 낱장에 연하게 채색된 그림(가로12.8㎝, 세로19.2㎝)이다. 우측 상단에는 ‘사당판노름ㅎ、는모양(사당 판노름하는 모양)’이란 그림을 설명하는 제목이 있고, 아래에는 붉게 낙관의 흔적이 남아 있다. 그림은 조선 후기 사당패(社堂牌)의 공연과 수입 활동의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엽전 꾸러미를 든 한량(閑良) 앞에서 사당(社堂)이 치마를 살짝 걷어 올리고 공연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는 모습과 사당의 뒤편으로 거사(居士) 한 명이 소고를 두드리고 있는 모습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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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산 김준근의 사당 판노름 풍속화. 부산박물관 제공 |
사당패는 조선시대에 전국을 떠돌며 춤과 노래, 곡예 등 다양한 연희를 펼치던 여성 중심의 유랑 예인 집단이다. 주로 여성(사당)과 남성(거사)이 함께 활동하는데 사당이 춤과 노래를 하고, 거사는 소고나 손북을 치며 흥을 돋워 공연을 통해 생긴 수입으로 살아갔다.
조선 후기 사당패 풍속을 그린 이 그림의 작자는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이다. 기산은 김준근의 호(號)이며, 그의 생몰년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19세기 말 부산 원산 인천 등의 개항장에서 서양인들에게 조선의 풍속화를 그려 판매한 화가이다. 관혼상제, 직업, 놀이, 형벌, 세시풍속 등을 소재로 당시 조선의 다양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풍속화를 많이 그렸는데, 배경 없이 인물을 중심으로 묘사하고, 작품의 내용을 설명하는 화제(晝題)를 화면에 한글로 적어놓은 게 특징이다.
19세기 말 ‘은둔의 나라, 조선’이 개항하자 학자 정치인 군인 상인 여행자 등의 서양인들은 각기 다른 목적으로 조선을 방문했다. 이들은 방문 목적에 맞춰 조선의 각종 물품을 수집했는데, 가장 인기 있었던 것 중 하나가 기산의 풍속화였다. 기산 풍속화는 그들에게 연구 자료, 기념품, 선물 등으로 수집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들이 고국으로 가지고 간 풍속화는 각국의 ‘민족학박물관’ 혹은 ‘민속박물관’에 소장되어 학술 자료로 이용된 점이다. 총 22곳 국내외 박물관에 1500점 이상 소장되어 있는데, 소장처 22곳 중 16곳이 유럽과 북미에 있는 박물관이다. 기산 풍속화가 예술적 가치보다는 인류학적 견지에서 조선의 문화나 풍속을 알려주는 물질문화의 하나로 전시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 민족학박물관들에는 조선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일본 동남아시아 등 18~19세기 서양인들이 다녀간 지역에서 가져온 각종 물품과 그림들이 상당량 남아 있다. 당시 서양인들의 취향에 따른 풍속화를 따로 제작하는 상점들이 생겨나 거대한 그림 시장을 이루었고, 이 그림들을 ‘수출화(export painting)’라고 불렀다. 수출화는 서양인들의 기호에 따라 제작된 그림이기 때문에 순수한 국내 소비를 위해 제작된 그림들과 구별되는 특징이 있었다.
수출화의 특징들을 기산 풍속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조선시대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의 풍속화에서 볼 수 있는 서사적 맥락이나 풍자와 해학 넘치는 표정이 없이 인물들이 무심한 표정이다. 놀이의 즐거움과 긴박감, 노동의 건강함과 고달픔의 장면에도 생동감을 찾기 어렵고, 대상자를 이미지 중심의 무감각한 존재로 그리고 있다.
또한 전통적으로 작가의 작화 의도를 집약해서 보여주는 화제(畫題)에 “··· 하는 모양”, “··· 하고”로 주로 표기하고 있음을 볼 수 있는데 구매자인 외국인을 위한 상품 설명서 형식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산 풍속화의 특징들은 구매자인 외국인을 위한 시선을 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회화와 구별된다.
19세기 말 서양인들에게 수출화로 제작된 기산 김준근의 풍속화는 예술 작품이라기보다 상품으로 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조선 후기 민중집단의 삶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재현하는 자료로서 가치는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