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보존과학실은 종종 응급실을 떠올리게 한다. 언제, 어떤 유물이 들어올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예고 없이 도착한 ‘환자’들을 맞이하는 보존과학자들은 의사처럼 유물의 상태를 살피고, 어떤 치료가 필요한지 판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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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엽환두대도(왼쪽)와 이를 엑스레이로 찍은 사진. 부산박물관 제공 |
올여름, 기장 고촌리 고분군에서 발굴된 철기 유물이 한가득 보존과학실 문을 두드렸다. 먼저 기록용 사진 촬영이 진행되었다. 보존실의 사진은 전시용이 아니다. 유물이 가진 손상 상태를 가장 정확히 기록하기 위한, 말 그대로 ‘진단 사진’이다. 카메라 속 유물은 겉보기엔 그저 흙덩이일 뿐이지만, 우리는 그 안에 숨겨진 오랜 이야기를 찾고 있다.
다음 단계는 엑스레이(X-ray) 투과 조사 촬영을 한다. 건강검진에서 신체 내부를 확인하듯 X-ray는 흙과 부식물에 싸인 유물의 진짜 모습을 드러내 준다. 그리고 그 순간, 예상치 못한 문양이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에는 단순한 원형의 칼손잡이로 추정했지만, 영상 속에는 세 잎이 조화롭게 펼쳐진 삼엽문(三葉文)이 선명히 드러나 있었다.
손잡이의 중앙에는 좌우로 넓게 뻗은 두 잎과 그 위에 네모지게 마무리된 한 잎.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다. 정제된 미감이 깃든 문양이었다. 이렇게 드러난 유물이 바로 삼엽환두대도(三葉環頭大刀)다.
환두대도는 원삼국시대부터 만들어져 오랫동안 한반도 곳곳에서 사용된 큰 칼이다. 손잡이의 삼엽 장식은 단순한 예쁜 무늬가 아니라 신분과 권위, 그리고 수호의 의미를 담고 있다. 삼엽환두대도의 출토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이번 발견은 고대 한반도의 무기문화와 지역 간 교류를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이 칼은 1500년 동안 땅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 긴 세월 동안 철은 부식과 변화로 흙과 녹이 단단히 결합되었다. 겉흙을 슬쩍 털어낸다고 해서 본래 모습을 되찾을 수는 없다. 그래서 보존과학자들은 X-ray 사진을 참고하며 부식층을 아주 조심스럽게, 조금씩 깎아낸다. 마치 먼지를 걷어내듯, 잃어버린 원래 표면을 찾아가는 일이다.
보존과학실에서 마주한 이 작은 철조각은 단순한 금속 덩어리가 아니다. 그 안에 옛사람들의 기술 미감, 그리고 잊히지 않은 손길의 흔적이 깃들어 있다.
오늘도 세월의 흔적을 하나씩 걷어내며, 이 유물이 다시금 찬란했던 옛 영광을 되찾아 박물관 전시실에서 관람객과 마주할 그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