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비 만들기 등 체험 콘텐츠도

검은 화면 위로 나비들이 날아다닌다. 붉고 하얗고 노란 나비들의 힘찬 날갯짓에 이끌려 화면을 응시하고 있으면 어느새 그들이 하나둘 모이고 그곳에서 하얀 여인의 얼굴이 피어난다. 수많은 감정과 기억, 상처와 치유의 과정을 견디고 자신을 드러낸 여인. 실제를 보는 듯 생생하게 영상으로 되살아난 나비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내기까지의 서사를 전해주는 안내자가 되었다. 회화를 미디어아트로 구현한 이선경 작가의 ‘신과 함께’는 생생하고 또렷한 영상이 더해져 신비로운 화면이 더욱 선명하게 와닿는다.

강시라 감독의 ‘노반’. 오케이앤피 제공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점들이 빛을 내거나 모양을 바꾸며 모였다가 떨어지기를 반복한다. 수많은 점이 만들어낸 화면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연결되는 새로운 세계를 펼쳐놓는 것 같다. 그리고 바닥에는 도시의 다양한 모습이 겹치고 사라지며 새로운 풍경을 만든다. 미디어아티스트 강시라 작가의 ‘노반’은 흔적을 지우지 못하고 또다시 새로운 것을 쌓는, 현대의 중첩된 풍경을 시각적으로 펼쳐놓는다.

오케이앤피(부산 해운대구 해운대해변로)에서 열린 ‘부산발 미디어아트-무빙이모션(Moving Emotion)’은 부산 미디어아트의 현재와 미래를 짚어보는 새로운 시각의 전시다. 휴대전화 속에서, 운전하며 바라본 대형 전광판에서, 미디어아트는 이제 일상에서 자주 만나는 예술 장르로 자리매김했다. 전시는 친숙한 예술 형식이 된 미디어아트, 그중에서 부산 미디어아트의 현재는 무엇인지 되짚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됐다. 아트랩(샵메이커즈)이 주최·주관하고 오케이앤피·데자뷰영상·스페이스토핑·동서대 인터네셔널컬리시 등이 협력하며 부산의 독립출판 플랫폼과 전시기획사, 미디어 전문 제작사, 대학 등 다양한 곳이 참여한 것도 의의가 있다.

미디어아트로 탄생한 이선경 작가의 '신과 함께'. 오케이앤피 제공

전시는 부산에서 활동 중인 미디어 아티스트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부산의 1세대 미디어아티스트 이광기와 주목받는 미디어아티스트 강시라, 캐나다 출신으로 부산에 정착해 활동 중인 크리스 미소 등이다. 또 부산 경남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이선경 조은태 작가의 회화도 영상으로 재구성해 미디어아트 작품으로 선보였다.

특히 이들은 ‘텍스트힙’이란 키워드를 중심으로 영상·회화와 텍스트(문학)를 결합해 ‘읽히는 이미지, 보이는 문장’이란 새로운 예술 언어를 제시한다. 미디어를 통해 다원예술로 확장하는 미디어아트의 매력을 전하려는 시도다.

새로운 협업 시스템 아래 색다른 시도를 한 실험적인 전시이지만 어린이와 성인 모두 즐기기에 부담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나비 만들기 등 놀이 같은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미디어아트가 어렵고 낯설지 않은, 우리의 일상에 자리 잡고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전시는 오는 31일까지 열린다. 유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