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밀양 송전탑·생탁 노동자 파업
- 생생한 현장 목소리 영화 기록
- 佛서 쉬며 외연확장 필요 인지
- 지역 첫 독립다큐 영화제 개최
- “불합리한 현실 시민에 알릴 것”
“지난 20여 년은 현장의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 몰두했던 것 같아요. 이제는 ‘그 목소리를 어떻게 더 많은 시민에게 전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려 합니다.”
 |
| 그가 다큐멘터리 영화의 확산과 연대를 고민하던 끝에 올해 처음 선보인 제1회 부산다큐필름페스티발 행사 모습이다. 부산다큐필름페스티발 제공 |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을 기록한 ‘밀양 아리랑’(2014), 생탁 노동자 파업을 다룬 ‘깨어난 침묵’(2016), 주한미군 사드 배치 논란을 담은 ‘소성리’(2017)…. 늘 현장의 최전선에서 소외된 이웃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은 박배일(44) 감독이 최근 야심찬 시도를 선보였다. 지역 최초의 독립 다큐멘터리 전문 영화제 ‘부산다큐필름페스티발’(이하 부다페스트)을 개최한 것이다(국제신문 지난 7일 자 14면 보도).
지난 7~9일 열린 제1회 부다페스트는 무사이극장(북구 화명동)과 사상인디스테이션(사상구 괘법동)에서 단편 3편과 장편 8편 등 총 11편의 작품을 상영하며 성공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최근 부산 수영구 수영동의 카페 인디샷에서 박 감독을 만나 이번 행사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20여년전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어렵게 생계를 잇던 이웃 노부부와 우연히 대화를 나눈 것을 계기로 제가 알던 세상과 현실이 너무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분명 국가의 지원이 필요한 분들인데도 전혀 도움받지 못하고 계셨죠. 이러한 불합리한 현실을 향한 분노가 저를 지난 20년간 카메라 앞으로 이끌었습니다.”
 |
| 지난달 19일 부산 수영구의 한 카페에서 박배일 감독이 인터뷰를 한 뒤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태훈 기자 |
박 감독은 2007년 이웃의 가난한 노부부의 삶을 담아낸 단편 ‘그들만의 크리스마스’를 시작으로 주류 미디어가 비추지 못한 현장의 목소리를 영화로 알렸다. 그러던 중 그는 2023년 3월 갑작스레 한국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향했다. 누구보다 굳건히 현장을 지킨 그였기에 지역 영화계에서도 다양한 추측이 오갔을 정도로 예상 밖의 행보였다.
그를 현장에서 잠시 물러서게 만든 건 투쟁 끝에 마주한 무력감이었다. 함께 활동하던 박종필, 이강길 감독이 잇따라 세상을 떠난 일도 마음속에 큰 충격으로 남았다. 박 감독은 1년 반 동안 파리에 머무르며 잠시 창작을 멈추고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투쟁해 왔는데 계속해서 실패를 목격하다 보니 허무함이 쌓이더라고요. 쉬어가는 시간을 갖지 않으면 이대로 영영 현장을 떠나버리게 될 것 같아 한국을 잠시 떠났습니다. 그리고 파리에서 그간의 활동을 되돌아보며 결론을 내렸어요. 그동안 목소리를 기록하는 데 집중했다면 이제는 ‘어떻게 그 목소리가 시민에게 들리게 할까’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요.”
박 감독이 귀국 후 동료들과 함께 부다페스트를 기획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부산이 ‘영화의 도시’로 불리지만 독립 다큐멘터리를 극장에서 접할 기회는 많지 않다. 그는 독립 다큐 창작자들의 활동을 독려하는 한편 시민이 현장의 목소리를 직접 마주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자 했다. 이를 위해 부다페스트에서 모든 작품 상영 후 감독 및 출연진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는 관객과의 대화(GV)를 진행했다. 또 영화계 관계자를 초청해 독립 다큐의 현실과 미래에 관해 짚는 강연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부다페스트는 내년에 더욱 외연을 넓힌다. 올해는 초청작 중심의 구성이었지만 내년부터는 공모제를 도입해 더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예정이다. 상영관도 기존 두 곳에서 강서구까지 확대한다.
영화제 외에 박 감독은 시민을 대상으로 한 다큐멘터리 교육에도 힘쓰고 있다. 시민이 다큐멘터리 영화를 좀 더 친근하게 느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그가 속한 제작사 오지필름은 2012년부터 다큐멘터리 제작 워크숍 ‘깨세 아카데미’를 운영 중이다. 이 워크숍을 통해 탄생한 단편 4편이 이번 부다페스트에서 특별 상영되기도 했다. 이와 함께 박 감독은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도 차근차근히 하고 있다. 현재는 가덕도를 소재로 한 신작을 작업하고 있다.
“저는 스스로를 ‘영화를 만드는 노동자’라고 생각해요. 좋고 싫어서가 아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영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어떤 방식으로든 현장과 연대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알릴 겁니다. 영화제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쌓이면 언젠가 시민에게도 현장의 목소리가 닿을 것이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