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구한 한국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통일신라 8세기가 갖는 의미는 특별하다. 석굴암과 불국사, 성덕대왕 신종으로 대표되는 이 시기는 문화 예술의 정점이자 황금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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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왼쪽 사진)와 금동보살입상.
부산박물관 제공 |
부산은 통일신라의 수도 경주와 멀리 떨어져 있어 이 시기의 수준급 유물을 만나기 어려운 환경이었지만, 부산박물관은 통일신라 8세기 제작의 국보 두 점을 소장하고 있다. 바로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와 ‘금동보살입상’이다.
사리호는 거무스름한 곱돌 표면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766년(신라 혜공왕 2년) 지리산 중턱의 산청 석남사 관음암에 봉안되었음이 밝혀졌다. 오늘날에도 그 터에는 통일신라 석탑 조각이 남아 있어 조선 후기 폐사된 고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부산박물관의 조사 연구로 이 사리호는 본래 높이 108㎝의 석조비로자나불좌상 중대석 안에 봉안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이는 한국이 중국·일본보다 앞서 8세기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래형 지권인(智拳印) 비로자나불상’을 만들었다는 결정적 증거이다. 사리호에 이어 현재 산청 덕산사로 옮겨진 석조비로자나불좌상도 국보로 지정되었다.
1986년 국보 제233호로 지정된 사리호는 처음 ‘영태2년명 납석제호’로 불렸다. 이후 원래의 위치와 의미가 규명되면서 ‘산청 석남암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납석사리호’로 명칭이 바뀌었다. 그리고 2024년 국가유산청의 지원으로 기록화 사업을 진행하면서 CT 촬영과 X선회절분석(XRD) 등 첨단 과학조사를 실시했는데, 재질이 납석이 아닌 활석임이 드러났고, 바닥에 새겨진 이두에 대한 해석도 새롭게 이뤄졌다. 앞으로 ‘활석사리호’로 명칭을 변경해야 될지도 모르겠다. 과학이 천년 비밀을 풀어낸 셈이다.
금동보살입상은 1978년 김지태 회장으로부터 기증받은 부산박물관의 첫 국보로, 높이 34㎝의 통일신라 8세기 후반 작품이다. 통일신라 금동불상은 1m가 넘는 불국사 금동불에서부터 소형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이처럼 30~40㎝ 안팎의 불상은 드물다. 없어진 광배·대좌까지 합치면 50㎝를 넘는 중대형 불상이다. 머리 보관은 별도로 만들어 씌울 수 있게 제작되었고, 양팔은 조립식으로 끼운 형식이다. 풍만한 몸매와 긴장감 있는 옷주름, 세련된 조형감과 뛰어난 주조기법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예술성과 국제적 감각을 동시에 보여준다. 이렇듯 부산이 보유하고 사랑하는 국보 2점은 역사를 바꾸고 8세기의 예술세계를 아름다운 시선으로 연결한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개관 48년을 맞은 부산박물관은 끊임없는 조사와 연구를 통해 유물의 가치를 확장하며 부산 문화의 자존심으로 자리 잡았다. 우리나라 선사~근현대를 넘어 전시 영역과 규모를 확장하고 세계적인 미술관과 협업해 글로벌 문화 공간으로 변화하고 있다. 현재 전시 중인 ‘거장의 미술, 셰익스피어부터 500년의 문학과 예술’ 교류기획전이 그 예이다.
지난 4년간 국제신문 ‘수장고에서 찾아낸 유물이야기’ 연재는 오늘로 마무리된다. 긴 시간 소중한 지면을 함께해준 국제신문에 깊이 감사드린다. 부산박물관의 국보처럼 부산 문화가 앞으로 빛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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