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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네시아 자바섬 족자카르타에 있는 세계 최대의 불교 사원 보로부두르를 정면에서 바라본 모습. 하나의 건축물에 압도적인 예술과 종교 정신이 압축돼 있다. |
- 독보적인 존재감의 사원 건축
- 사각형과 원형을 결합한 구조
- 현실·우주·깨달음의 세계 상징
- 1만명 등장하는 세계최대 부조
- 부처의 서사를 정교하게 표현
보로부두르(Borobudur)는 ‘언덕 위에 세워진 승방’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으로, 인도네시아 자바섬 중심부 족자카르타에 있는 세계 최대의 불교 사원이다. 족자카르타는 한국인에게 다소 낯설 수 있지만 수도 자카르타와 발리 사이에 있는 역사와 문화의 도시로, 우리나라에 비유하자면 자카르타가 서울, 족자카르타를 경주라고 보면 된다.
전체 인구의 약 87%가 이슬람교 신자인 인도네시아에 세계 최대 불교 유적이라니, 뜻밖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사원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초, 불교를 국교로 삼았던 사일렌드라 왕조 시기에 건설된 것이다. 왕조가 자바에서 세력을 잃고 다른 지역으로 옮겨간 뒤 13세기부터 이슬람화가 진행되면서 방치되었고, 이어 인근 므라피 화산의 분출로 화산재에 오랫동안 묻혀있었다. 화산재 속 깊은 잠을 자던 천 년을 훌쩍 넘긴 이 고대 유적은 1814년 네덜란드인들의 발굴 작업으로 다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1973년부터 1982년까지 유네스코의 지원으로 본격적인 복원이 이루어져 오늘날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식민 지배가 남긴 상처는 늘 크고 깊지만, 역설적으로 세계적 유산을 발굴하고 복원하는 계기도 되니 인간사 참 모순이다 싶다.
■독보적인 존재감의 불교 사원 |
| 보로부두르 회랑의 부조. 기단을 둘러싼 난간에 불교적 형상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1만 명이 넘는 인물이 등장한다고 전해진다. |
인도네시아 답사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날씨다. 늘 hot-hotter-hottest, 덥고 더 덥고 가장 더운 날씨뿐이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보로부두르에 도착했을 때는 가랑비가 적당히 내려주었다. 마치 부산에서 발리를 거쳐 족자카르타까지 온 수고가 기특해서, 그렇게 해서라도 기어코 유적을 보려는 마음이 가상해서, 더위에 구애받지 말고 마음껏 둘러보라며 보로부두르가 건네준 선물 같은 비였다.
일반적으로 불교 유적지의 사원은 탑과 여러 부속 건축물이 어우러져 구성되지만, 보로부두르는 단 하나의 건축물에 영혼을 갈아 넣어 승부수를 건 듯하다. 바로 이 점에서 보로부두르는 세계 불교 사원 가운데서도 독보적인 존재감으로 빛난다. 첫 조우에서 가슴을 휘몰아치게 만든 그 강렬한 아우라, 감히 중생의 언어로는 논하기조차 버거운 압도적 예술이었다. 혹시 비 때문이었을까. 유적을 감상하다 보면 날씨가 때로는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참 묘했다. 그 순간 ‘인도네시아’라는 나라의 이미지가 확 바뀌고 있었다. 물론 보로부두르를 보기 전과 본 후, 한 나라에 대한 마음의 변화를 탓할 생각은 없다. 뜨거운 감동 앞에서 그게 무슨 대수라고, 오히려 너무나 당연한 일 아닌가.
멀리서 보면, 보로부두르는 사각형 건축물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는 전체적으로 높이 약 35m에 달하는 5개의 정사각형 테라스와 3개의 원형 테라스, 그리고 최상단의 중앙 스투파로 이뤄진 총 9단(階)의 구조다. 단일 건축물이라는 점도 특별하지만, 사각형과 원형을 결합한 이 구조는 너무 독창적이다. 불교가 태동한 인도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건축 디자인이라고 한다. 알고 보니 만다라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특별히 고안된 구조였다. ‘만다라(Mandala)’는 ‘본질을 담은 것’, 즉, 마음의 본질인 깨달음을 의미한다. 불교에서 만다라의 구조는 사각형 위에 원형이 놓인 형태로, 사각형은 인간이 발을 딛고 살아가는 현실 세계를, 원(圓)은 무한한 우주와 깨달음의 세계를 상징하는데, 보로부두르는 이러한 만다라의 구조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건축물이다.
그렇기에 보로부두르는 불교의 세계관인 삼(3)계, 즉 ‘욕계’ ‘색계’ ‘무색계’로 표현되어 있다. 1단계인 욕계(1~5층 사각형 기단부)는 중생들이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곳이고, 2단계 색계(6~8층 원형 테라스)는 욕심은 어느 정도 극복한, 욕계보다 높은 정신적 세계다. 마지막 3단계인 무색계(중앙 스투파)는 욕망과 물질에서 벗어난 해탈의 경지다. 가는 길은 욕계를 지나 색계로, 다음에는 무색계의 단계로 올라가게 되어 있다. 걸음을 옮기는 과정에서 불교적 깨달음의 단계를 체험하도록 설계된 것이다. 그렇구나,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구나!
비를 맞으며 깨달음의 세계로 향하는 길에서 숨을 멈추게 한 것은 바로 회랑의 부조들이었다. 보로부두르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도 세계 최대 규모의 이 부조들 때문이다. 기단을 둘러싼 난간에는 시계 방향으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에서 시작해 탄생, 수행 과정, 가르침에 이르기까지 불교적 형상들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다. 이 부조를 일렬로 세운다면 길이가 4.4㎞에 달하고, 부조 속 인물 수는 1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접착제 없이, 겹침 없이 완성된 부조 패널은 총 2672개이며, 부처님상은 504개에 이른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부조도 있지만, 지금 바로 튀어나와 연꽃으로 툭툭 치며 세상 너무 무겁게 살지 말라고, 다 버리면 가벼워진다고 말할 것 같은 생생한 부조들도 많다.
기단 난간의 부조를 감상하며 계단을 오르다 보면, 마침내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스투파, 종 모양의 탑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스투파들은 세 개 원형 단에 총 72기가 배열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가장 거대한 스투파 하나가 우뚝 서 있다. 각 스투파 안에는 불상이 안치되어 있으나, 현재는 30% 이상이 두상을 잃은 상태다. 스투파의 겉면은 마름모꼴 문양으로 장식되어, 그 틈새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되어 있다. 부처님을 탑 안에 모시고 창을 내어, 그 신비로운 세계를 엿볼 수 있도록 설계한 것이다. 속세가 아닌 부처님의 세계를 공간 안에 구현하다니, 얼마나 경이로운 발상인지, 창의성의 극치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스투파의 설계자는 틀림없이 신의 영감을 받았을 것이다.
■깨달음을 주는 만다라의 세계종탑 지붕이 사라져 밖으로 드러난 가부좌의 부처님도 조용히 비를 맞고 있었다. 그 부처님이 바라보는 방향으로 눈길을 돌려보니, 짙은 녹음 위로 옅은 안개가 피어오르며 현실인지 비현실인지 알 수 없는 몽환적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만다라의 세계였다. 희노애락(喜怒哀樂)과 번뇌 집착에서 벗어난 자유, 본래 실체 없는 것임을 깨닫고 구애받지 않는 경지,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상태,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이었다.
누구나 수행을 통해 공(空)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태생부터 불완전한 인간에게 과연 쉬운 일인지는 모르겠다. 바람 한 점에도 흔들리는 것이 인간의 마음, 세상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평온을 유지한다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폭풍 같은 감정에 휩싸여 고요를 바라기 어렵더라도, 그래서 완전한 깨달음에 이르지 못하더라도, 그 길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고 믿는 것이 오히려 편할 수 있다. 그래도 만다라의 세계에서 공(空)을 마주한 사람답게, 그 순간만큼은 무상(無常), 무아(無我), 세상의 모든 것은 실체 없이 늘 변한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집착을 버리자고 다짐했던 것 같다.
그러나 보로부두르를 뒤에 두고 내려오면서, 만다라의 세계는 무슨,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 출구를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매며, 일부러 길을 미로처럼 만들어 상점들을 모두 거쳐 가도록 만든 보로부두르 관광지 상술에 거칠게 불만을 퍼붓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욕계에 내려온 것이었다. 이렇게 조그만 불편에도 분노를 일으키는 어쩔 수 없는 욕계의 중생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별수 있으랴. 그래도 만다라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답게, 화가 치밀었던 감정을 곧바로 내려놓고, 상점에서 일하시는 분들에게 조용히 ‘파이팅’을 외치며 보로부두르의 출구를 빠져나왔다. 성냄을 내려놓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깨달음을 그렇게 빨리 잊어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부처님 오신 날’이 다가온다. 문득 보로부두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잠시나마 공(空) 속에서 번뇌와 집착의 걸림 없이 자유로웠던 그곳은 여전히 평안할까. 지금도 세속의 무게를 내려놓고 바람처럼 가벼워지고 싶을 때면 만다라의 세계, 보로부두르를 떠올린다. 욕계의 중생을 따뜻하게 바라보며 미소 짓고 있을 보로부두르, 인간의 고통을 품어 자비로 감싸주는 영원의 사원으로서 오래도록 마음속 위안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분명, 그럴 것이다.
최진숙 전 영산대 글로벌학부 교수·‘한국유적지기행’‘아시아유적지기행’‘세계10대유적지기행’ 저자·유적지 기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