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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1~24일 벡스코에서 열린 ‘아트부산 2026’에서 관람객들이 김은주 작가의 21m 대형 작품을 살펴보고 있다. 이원준 기자 |
- 아트부산 21m 대형 작품 화제
- 아르코 ‘도약사업’ 등 잇단 성과
- “연필로 쌓아 올린 야생 에너지
- 나를 키운 부산의 바다 닮았죠”
김은주(61) 작가는 30년 넘게 ‘연필’과 ‘종이’로만 작업했다. 작은 연필을 팔과 어깨가 아파 들 수 없을 정도로 긋고 또 그어 완성한 작품은 요동치고 꿈틀대는 저항의 몸부림(‘인체’)이 되고, 솟구치는 물결이 모인 ‘바다’가 되고, 일렁이는 바람에 흩날리는 ‘이파리’와 ‘꽃’이 된다. 사람의 키를 훌쩍 넘은 대형 작품을 오로지 가녀린 연필심으로 일궈낸 끈기와 뚝심. 그를 ‘연필의 구도자’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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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주 작가가 지난 15일 부산 동래구의 작업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30년 넘게 연필과 종이로만 작업한 그는 인체와 바다, 꽃과 잎 등을 담은 대형 작업을 선보이며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김성효 선임기자 |
하지만 작가는 그런 수식어에 무심하다. ‘그림이 좋아’ 작가가 됐고, ‘진짜 그림을 그리고 싶어’ 연필 드로잉 작업을 택했고, 작은 공간에서 ‘큰 그림’을 그리고 싶어 대형 작품을 선택한 그는 ‘남들의 평가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강단으로 부산에서 수십 년째 작업하고 있다. 긴 시간 연필을 쌓아 올려 만든 에너지 넘치는 화면처럼, 오랫동안 인내와 고뇌의 작업을 이어온 시간이 쌓여 그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가 완성됐다.
김은주 작가의 작업은 이미 국내외 전시와 아트페어를 통해 입소문이 났다. 그런데 그의 작업이 요즘 더욱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부산문화재단의 ‘포커스온-시각예술 분야’에 선정돼 그동안의 작업을 정돈해 정리 중인 그는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2026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에 부산 작가로 유일하게 선정됐다. 공신력 있는 기관의 지원 아래 서울은 물론 해외까지 뻗어나갈 기회가 마련된 것이다. 또 지난 21~24일 열린 부산 최대 아트페어 ‘아트부산 2026’에서 21m 크기의 대형 작업을 선보여 국내외 컬렉터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지난 15일 작업실에서 만난 김은주 작가는 “대형 작품을 전시할 장소를 만나기 쉽지 않은데 아트부산에서 기회가 닿아 선보였다”며 “주택에 작업실이 있어 좀 답답했는데 ‘이곳에서 가장 큰 그림을 그려보자’고 마음먹다 보니 큰 작품이 많다”고 소개했다.
1992년 부산여자대학교(현재 신라대) 미술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2001년 부산미술협회의 ‘제1회 오늘의 작가상-청년작가상’ 수상자로 주목받으며 데뷔한 그는 1990년 KBS전시실(부산)에서 개인전을 시작한 이후 꾸준히 부산과 서울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아트페어까지 소화했다. 생활하듯 그림을 그리는 그의 작업실은 흩날린 연필심 가루가 쌓여 까맣고 반질반질하다.
“제가 계산하지 않는 것이 시간과 돈입니다. 큰 작품을 완성하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는 질문이 많은데, 1층 생활공간과 2층 작업실을 오가며 밥 먹듯이 작업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 얼마나 걸리는지 알지 못해요. 대중적인 작업도 하지만 큰 작품을 선호하는 이유는 저를 드러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순화되지 않은 야생의, 저의 범주 안에서 공격적으로 그리는 작업이 스스로를 일깨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어느 순간 ‘탁’하고 완성된 걸 보면 기분이 좋아요.”
김은주 작가의 초기 작업은 날 것 그대로를 드러낸 강렬한 인체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그것이 계기가 되어 일렁이는 바다와 꽃, 잎으로 변화했다. 그러면서 ‘그리는 대상’보다 ‘그리는 행위’ 자체에 집중한, 특별한 호흡과 리듬을 머금은 추상과 구상을 넘나들고 있다. 작가는 대학 시절 시행착오를 겪으며 남의 평가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연필 드로잉에 집중하게 됐다고 소개했다.
“대학 때 미국식 드로잉 수업을 받았는데, 입시 미술에만 매달렸던 제게 ‘진짜 그림’을 알려준 시간이었어요. 또 유화를 배우면서 색의 층을 쌓아 올리는 과정에 감동했어요. 이 두 가지 기억이 기반이 되어 연필을 쌓아 올리게 된 것 같아요.”
서울에서 전시하고 싶다는 생각에 ‘청년작가상’ 상금을 들고 무턱대고 인사동 문을 두드렸던 신인 작가는 이후 부산과 서울에서 수십 차례 전시를 소화하며 부지런히 시간을 쌓아 중견이 됐다. 그런 그의 작업 기반은 늘 부산이었다.
“저는 ‘부산이 키운’ 작가입니다. 부산에서 나고 자라면서 느낀 바람, 바라본 바다, 경험했던 모든 것이 저를 만들었고 그것이 작업에 흡수되어 표현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가 지역에서 부딪치며 정진했던 것이 저를 더 특별하게 만든 것 같아요. 작업과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전시회를 열고, 그 공간에서 제 작품을 바라본 것이 또 다른 작업의 원동력이 되었지요.”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운동복을 챙기며 작가는 덧붙였다. “그런 의미에서 건강한 몸으로 오래 부산에서 작업하고 싶어요. 싫어하는 운동을 시작한 것도 ‘오래’ 작업하고 싶어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