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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 전경. 규모와 건축 기술 모두 최고 수준의 사원으로, 건축물을 에워싼 탑이 균형과 조화를 이뤄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처럼 보인다. |
- 500여 년 밀림에 묻혔던 유적
- 12세기 수만명이 30년간 지어
- 1.5톤 석재 운반 등 미스터리
- 1500개의 압사라 부조 ‘경이’
- 지금도 복원하며 비밀 푸는 중
‘화양연화’라는 홍콩영화가 있다. 왕가위 감독이 연출하고 장만옥과 양조위가 주연을 맡아, 사랑했지만 끝내 닿지 못한 쓸쓸한 아름다움을 담아낸 작품이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남자 주인공은 앙코르와트 벽의 구멍에 조용히 비밀을 속삭인 뒤 흙으로 메운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마음을 그 속에 봉인함으로써, 그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빛나는 ‘화양연화’에 있었던 비밀을 영원히 묻어버린다.
영화 속 주인공이 비밀을 묻어둔 앙코르와트, 영원히 감춰져 있을 것만 같던 이 유적은 어느 날 불현듯 세상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최악의 학살, 소위 ‘유식한 자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그 시신들을 집단으로 매장했던 ‘킬링필드’에서였다. 어둡고 무서운 역사의 땅, 비극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 한가운데에서 지상에 구현된 천상의 세계가 나타난 것이다.
■유령도시로 불린 ‘사원의 도시’전설로만 내려오던 이 거대한 예술 작품은 500년이 넘도록 밀림에 묻혀 있었다. 전설의 내용도 흥미롭다. 앙코르와트가 있던 정글 숲에는 유령도시가 있고, 누구라도 그 정글 속의 유령도시를 발견하게 되면 죽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그 유령도시는 수백 년 전에 머리가 일곱 개 달린 뱀을 신으로 모시는 부족들이 세운 도시인데, 누군가 반란을 일으켜 약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살된 후 영혼만 남은 도시라고 전해졌다. 이 전설은 킬링필드의 비극과 기묘하게 겹쳐지지만, 사실로 확인된 것은 없다.
그런데 1860년, 프랑스 자연학자 앙리 무오가 전설 때문에 원주민들이 발을 들이지 못했던 그 유령도시를 마침내 마주하게 된다. 엄청난 돌들로 이루어진 장대한 광경을 처음 마주한 순간, 그는 놀라움과 충격, 그리고 깊은 감동에 휩싸여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고 전해진다. 충분히 그 장면이 그려진다. 인류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으며 위대한 유산이 세상에 드러난 기적 같은 순간이었다. 원주민들은 유령도시가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앙리 무오의 탐험과 기록을 계기로 서구에 알려지기 시작했고, 그 결과 앙코르와트는 지금 유령도시에서 세계 최고의 유적지가 되었다.
‘앙코르(Angkor)’는 ‘도읍(도시)’이고 ‘와트(Wat)’는 사원을 뜻하기 때문에, 앙코르와트는 ‘사원의 도시’라는 뜻이 된다. 12세기 초 인도차이나반도를 지배했던 크메르 왕국의 황제 수리야바르만 2세가 세운 사원으로서 수만 명이 약 30년에 걸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천상 세계를 지상에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그 거대한 규모와 섬세한 구조를 보면 정말 천상 세계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건축물이다. 길이 5㎞가 넘는 깊은 해자와 3.6㎞ 길이의 외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동서 1.5㎞, 남북 1.3㎞의 직사각형 건축물에는 돌이 보여줄 수 있는 지상 최고의 예술 작품들이 있다. 실로 세계 최대 규모의 종교 건축물이라 할 만하다.
앙코르와트의 정문에 들어서기 전, 해자 너머로 바라보면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산처럼 보인다. 산봉우리 같은 네 개의 탑이 중앙의 산봉우리 탑을 에워싸며 솟아 있다. 언뜻 보면 나무를 깎아 만든 목재 같지만 천만에, 모두 석재다.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지 마라. 모른다. 모든 구조물은 동-서로 뻗은 축을 중심으로 세워졌으며, 외벽은 십자형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앙코르와트가 찬란히 빛나는 이유는 이 모든 구조가 하나의 산처럼 어우러져 완벽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다.
앙코르와트의 탑들은 계절별로 태양이 뜨는 위치에 맞추어 설계된 것이라고 하는데, 특히 중앙탑은 춘분과 추분의 일출과 정확히 일직선으로 정렬된다. 모든 탑은 회랑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탑 양쪽에 있는 문들은 코끼리가 지나가도 될 정도로 넓다고 하여 ‘코끼리 문’이라고 부른다. 이 회랑들을 걸으며 기둥들 사이에 있는 천장을 한번 올려다보는 것이 좋겠다. 아름답게 장식된 연꽃들이 보는 이들의 심장과 발길을 멈추게 하고 회랑 기둥에는 아직 크메르 문자도 남아 있는데, 놀랍게도 색채가 생생하다.
더 놀라운 것은 여백 없이 벽면을 가득 채운 부조 벽화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선명하게 다가온 것은 천상의 세계를 알리며 춤추는 압사라다. 압사라는 힌두교에서 말하는 천상의 무희이자 여신으로, 앙코르와트에는 약 1500개의 압사라가 조각되어 있다. 이들의 춤추는 모습은 앙코르와트를 대표하는 부조 양식으로, 섬세한 손동작과 화려한 의상이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준다.
그런데 압사라를 부조했던 장인들은 과연 천상의 세계에서 이 무희들을 만났을까. 아니면 조각하는 순간, 이미 설레는 마음으로 그들을 마주했을지도 모른다. 요정처럼 아름답고 젊으며 우아한 압사라들과 함께 춤추며 천상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래서 앙코르와트는 지상에 구현된 천상의 세계가 맞다. 천국, 현생에도 있지 않던가. 누가 사후에만 있다고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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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앙코르와트의 벽면을 가득 채운 부조 벽화들. 뛰어난 예술성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
■비밀의 유적지는 현재 복원 중안타깝게도 앙코르와트에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비밀이 많다. 12세기, 그것도 작은 아시아 지역에서 이처럼 거대한 건축물이 가능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모두가 놀랄 것이다. 가장 큰 미스터리는 무게가 약 1.5t에 달하는 돌들도 많다고 하는데, 그 무겁고 많은 돌은 어디에서 온 것일까. 무엇보다 이런 건축물을 세우려면 막대한 인구가 필요했을 텐데, 그 많던 크메르인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돌들은 도시와 연결된 운하 수로를 통해 옮겨졌을 가능성이 제기되었고, 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홍수로 인한 관개 시스템 붕괴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모두 가설일 뿐, 뚜렷한 문헌이 없어 여전히 의견은 분분하다.
그러나 앙코르와트는 힌두교의 3대 신 (브라만, 비슈누, 시바) 중에서 비슈누 신에게 바쳐진 사원이었지만, 17세기 불교가 국교가 되면서 자야 바르만 7세가 불교사원으로 바꾸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처음에 힌두교 사원으로 세워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이 사원은 일반 사원과 다르게 정문이 서쪽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힌두교에서는 해가 지는 서쪽에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앙코르와트는 죽음 이후의 세계를 위해 지어진 사원이라고 추정하는 것이다.
또한 이 사원은 수리야바르만 2세가 처음부터 자신의 장례용 사원으로 지었다는 주장도 있다. 그 근거로 회랑에 새겨진 부조들이 시계 방향이 아닌 역순으로 배치되어 있는데, 이는 힌두교 장례 의식이 역순으로, 즉 시계 반대 방향으로 표현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곳이 그의 ‘납골당’이라는 추측이 나왔다. 더구나 중앙 탑 속에서 항아리가 발견되었는데, 이는 유해를 담은 장례용 항아리였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앙코르와트’의 원래 이름조차 알 수 없으니, 힌두교 비슈누 사원인지 왕의 장례용 사원인지 확실히 단정할 수는 없겠다.
현재 캄보디아는 국가 차원에서 복원 정비 사업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어, 머지않아 앙코르와트의 숨겨진 비밀이 밝혀질 것이라 믿는다. 인간의 기술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이미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인공지능(AI) 역시 기존 데이터를 분석해 앙코르와트의 미스터리를 푸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다만 유적지 복원 사업에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최근 한국도 앙코르와트 보존 복원 사업을 지원하는 문화재 협력 양해각서를 체결했다고 하니, 참으로 반가운 소식이다. 인류의 유산을 지키는 거룩한 일에는 공동의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누구에게나 화양연화의 시절이 있듯, 모든 유적지에도 찬란한 순간이 있었다. 답사할 때마다 그 순간이 운명처럼 유적 속에 남아 있음을 느낀다. 영화가 말하듯,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고, 희미한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화양연화’. 앙코르와트 또한 자신의 화양연화 시절을 기억하는 듯, 쓸쓸한 미소를 짓고 있는 듯했다. 문득 황지우 시인의 ‘뼈아픈 후회’가 떠올랐다. “슬프다/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모두 폐허다/…”
폐허가 되어버린 화양연화 시절을 떠올리면, 왜 이토록 폐허 같은 쓸쓸한 후회만 밀려오는지 모르겠다. 그 순간 후덥지근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고, 대지와 밀림 사이로 하루를 마감하는 해가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 있었다. 저리도 아름답고 서러운 일몰이라니! 울컥하는 마음에 애써 크게 외쳐보았다. 화양연화 시절의 앙코르(Angkor), 다시 앙코르(encore)! 앙코르(encore)!
최진숙 전 영산대 글로벌학부 교수·‘세계10대유적지기행’ 저자·유적지 기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