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제1전시실인 시인채 전경. |
- 서울 번잡 벗어난 인왕산 자락
- 그의 시대와 내면 만나는 여정
- 어두운 시기 우리말 시로 저항
- 유고 보존한 광양 정병욱 가옥
- 시인의 문학 통해 서울과 연결
■서울 종로구 청운동 |
| 서울 종로구 청운동 윤동주문학관의 외관. |
가을이 깊어지면 나는 윤동주의 시를 찾아 서울 종로의 윤동주문학관을 찾아가곤 한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라고 노래한 시인의 계절을 만나기 위해서다. 도심의 번잡함을 뒤로하고 인왕산 자락을 따라 오르는 길은 어느새 가을빛으로 기운다. 붉고 노랗게 물들기를 준비하는 잎새 사이로 스치는 바람은 여름보다 서늘하고, 푸르고 맑은 하늘은 들뜬 마음을 조용히 가라앉힌다.
윤동주문학관으로 가는 길은 단순히 한 문학관을 찾아가는 길이 아니다. 그것은 한 젊은 시인이 살았던 시대와 그의 내면을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시인의 아프고 슬프고 외로웠던 생애를 생각하며 걷다 보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인간이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되묻게 된다.
■생애와 문학적 의미 |
| 윤동주 |
윤동주는 1917년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났다. 그곳은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교육과 항일운동이 활발했던 곳이었다. 명동학교에서 성장한 그는 연희전문에서 공부하며 문학의 길을 걸었고, 일본 유학 중 체포되어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생을 마쳤다. 광복을 불과 몇 달 앞둔 1945년, 스물아홉의 젊은 나이였다.
그의 삶을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부끄러움’이다. 그는 무장투쟁을 전개한 독립운동가는 아니었지만, 자신의 내면을 끊임없이 성찰하며 시대의 어둠에 맞섰다. 그 정신이 가장 잘 드러나는 작품이 ‘서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이 구절은 윤동주 문학의 핵심을 압축한다. 거창한 구호 대신 자신의 마음을 먼저 돌아보고, 작은 바람에도 자신을 성찰했던 시인의 양심이다.
그러나 그의 시는 자기 성찰에만 머물지 않는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는 다짐에서 보듯, 그는 고통받는 존재에 대한 사랑과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려는 의지를 함께 품었다. ‘별 헤는 밤’에서도 이러한 정신은 아름답게 이어진다. 가을밤 별을 바라보며 지나간 사람들을 떠올리고, 자신의 이름을 별빛 내린 언덕에 써 보았다가 흙으로 덮어 버리는 장면에는 시대의 억압 속에서 살아야 했던 청년의 슬픔이 배어 있다.
하지만 시인은 언사를 절망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이라는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그는 언젠가 자신의 이름이 묻힌 언덕에도 풀이 무성할 날을 기다린다. 겨울 뒤의 봄은 민족의 해방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희망으로 읽을 수 있다. 특히 이 작품의 마지막 네 행은 정병욱의 조언에 따라 덧붙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시와 과제 |
| 윤동주문학관 제2전시실인 ‘열린 우물’의 일부 모습. 시 ‘자화상’에 나오는 우물에서 영감을 얻어, 폐기된 물탱크의 위쪽을 개방한 건축물이다. 필자 제공 |
윤동주문학관은 이러한 시인의 삶과 문학을 기억하는 공간이다. 문학관에서 육필 원고와 사진, 생애의 흔적을 마주하면 책 속의 시인이 한 사람의 젊은 문학도로 다가온다. 그의 시가 왜 지금까지 사랑받는지 그 자리에서 새삼 깨닫게 된다. 윤동주의 시에는 시대의 아픔과 개인의 고뇌, 인간에 대한 사랑과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자리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데 현재 문학관의 공간은 너무 협소하다. 운영하는 서울 종로구에서 심기일전의 전향적 생각을 해야 한다.
더불어 윤동주문학관의 역할이 과거를 보존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문학관을 찾은 사람들이 그의 시를 읽고 오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청소년이 윤동주의 삶을 단순히 ‘일제강점기의 저항시인’이라는 역사적 사실로만 배우지 않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현재의 질문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윤동주의 ‘부끄러움’은 과거의 한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내면을 향한 질문이기에 그렇다.
■광양 ‘정병욱-윤동주 문학관’ 기대윤동주의 흔적은 서울에만 머물지 않는다. 전남 광양 망덕포구에는 ‘윤동주 유고보존 정병욱가옥’이 있다. 이곳은 윤동주와 연희전문을 함께 다닌 후배 정병욱이 시인의 친필 유고를 어렵게 보존했던 곳이다. 광복 후 이 유고가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되면서 윤동주의 이름은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문학의 역사는 이렇게 창작과 보존, 그리고 계승이 이어질 때 완성된다. 이런 의미에서 전남 광양에서 준비하는 정병욱-윤동주문학관은 매우 의미 있는 공간이 될 수 있다. 서울의 윤동주문학관이 시인의 삶과 작품을 중심으로 그의 정신을 기억하게 한다면, 광양의 문학관은 윤동주의 유고를 지켜낸 정병욱의 삶과 두 사람의 문학적 인연, 그리고 한 편의 시가 어떻게 역사 속에서 살아남아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망덕포구라는 장소는 윤동주 문학의 또 다른 지리적 의미를 갖는다. 북간도 명동촌에서 태어난 윤동주는 서울에서 공부했고 일본에서 생을 마쳤다. 그의 시는 광양에서 보존되어 광복 이후 세상에 나왔다. 이처럼 서로 멀리 떨어진 장소들이 한 시인의 삶과 문학을 통해 이어진 것이다. 명동촌이 탄생의 공간이라면 서울은 문학과 청춘의 공간, 광양은 유고 보존과 문학 계승의 공간인 셈이다.
윤동주를 기억하는 일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문제도 있다. 그의 출생지인 북간도는 오늘날 중국 영토에 속하며, 중국 조선족 사회에서는 윤동주를 조선족 시인으로 바라본다. 이러한 현실의 인식 차이를 단순한 대립으로만 바라보기보다, 윤동주의 문학을 함께 보존하고 연구하며 더 넓은 세계에 알리는 방향으로 나아갈 필요가 있다. 문화의 영역에서는 국가와 민족 사이의 다툼보다 상호 협력을 통해 문화유산을 미래의 자산으로 가꾸어야 한다.
■이 시인이 우리에게 남긴 교훈윤동주의 삶과 시가 보여주는 중요한 의미는, 그의 시가 우리 민족의 가장 어두운 시기에 우리말로 쓰였다는 데 있다. 당시 우리말과 민족문화가 억압받던 상황에서 그는 우리말로 자신의 양심과 시대의 아픔을 기록했다. 그의 저항은 크고 거친 목소리가 아니라 조용한 자기 성찰의 언어로 이루어졌지만, 그 울림은 오히려 오래고 크게 지속되었다.
우리 문학사에 항일 저항 시인은 그 수가 많지 않다. 한용운 이육사 심훈 이상화 김광섭 윤동주 등이 그 대표적인 이름으로 기억된다. 그 가운데 윤동주는 매우 독특한 자리에 있다. 그의 시는 민족의식을 드러내면서도 개인의 내면을 깊이 파고든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역사적 저항의 기록인 동시에 인간의 양심에 대한 서정적 고백으로 읽힌다.
■가을 나들이에서 만나는 별 하나가을날 윤동주문학관을 나서며 다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아직 낮이라 별은 보이지 않지만 밤이 되면 수많은 별이 떠오를 것이다. 윤동주가 바라보았던 별과 우리가 바라보는 별은 같은 별이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그 별빛은 그대로 이어져 있다. 한 시인의 생애는 스물아홉 해로 끝났지만 그의 시는 끝나지 않았다. 정병욱이 유고를 지켰고, 광복 후 책으로 세상에 나왔으며, 오늘 우리는 그 시를 읽으며 다시 그의 삶을 생각한다.
서울 윤동주문학관에서 광양 정병욱 유고 보존 현장으로 이어지는 길 또한 그의 정신을 현재로 불러낸다. 윤동주문학관으로 향했던 가을 길은 결국 시인을 만나러 가는 길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 길이었다. 시인은 떠났지만 시는 남았고, 사람은 사라졌지만 지키려 했던 정신은 이어졌다. 오늘 우리가 그 별빛을 그윽이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그 정신을 다음 세대에 건네기 위해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