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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의 기사식당 대표 메뉴 돼지불백 정식에서 쌈을 싼 모습.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낸 돼지불고기와 밥, 찌개, 쌈 채소 등으로 한 상을 차린다. |
- 도시 팽창에 물류업·교통망 확대
- 밤낮 모르던 운전 종사자들 위해
- 끼니 제공을 넘어 쉼터 역할까지
- 초량육거리·연산교차로 등 밀집
- 저렴한 백반·찌개·국밥메뉴 갖춰
- 든든한 한끼로 고단한 삶 다독여
한 도시의 급격한 확장은 여러 요인이 있기 마련이다. 대표적으로 산업화 과정이나 정책적인 도시개발, 이에 따른 대규모 인구 유입 등을 꼽을 수가 있겠다. 1970년대 서울과 1980년대 부산이 대표적이다.
도시의 개발과 확장 속 도시의 규모가 커지면, 이와 더불어 물류산업과 교통망 또한 급격하게 확대된다. 그 변화의 과정에서 모든 인적 물적 유통의 원활한 이동을 책임지던 이들이 있었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밤낮없이 도시 교통망의 최일선에서 종사하던 운전기사가 바로 그들이다.
한창 도시의 몸집을 키우던 시기, 이들 운전기사의 끼니와 잠시의 휴게공간을 제공하던 곳이 있었다. 바로 기사식당이다. 운전기사들은 직업 특성상 식사 시간이 불규칙하고 언제라도 운송 업무에 복귀할 수 있어야 하는 긴장감, 절대적 운동량 부족 등에 의해 입맛이 까다롭다. 이런 운전기사들을 위해 탄생한 것이 기사식당이었던 것.
한때 ‘입맛 까다롭기로 운전기사 따라갈 사람 없다’라는 말이 있었다. 기사식당 주인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던 말이다. 하루 반나절 이상을 운전석에서 갇혀 지내야 하는 그들로서는, 당연히 한 끼 식사마저도 입안이 껄끄러울 수밖에 없겠다. 움직임이 극히 제한적인 데다가 끼니마저 제때 챙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식사 시간이 잠깐의 휴식 시간이자 몸 한 번 크게 움직이는 운동 시간이기도 했다. 식사 시간만큼은 편안한 마음으로 여유롭게 식사를 즐기고 싶었을 그들. 이런 기사들의 마음을 자기 식구처럼 챙겨주는 곳이 기사식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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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 동구 초량육거리 불백거리(옛 초량 기사식당 골목) 모습. |
■운전기사를 위한 서비스 공간부산의 기사식당은 1980년대 전후 급격한 도시화와 대중교통 확대 과정에서 운전기사들을 대상으로 하는 맞춤 식당으로 시작되었다. 주로 부산의 관문인 부산항, 역전이나 버스터미널 부근을 중심으로 부산의 주요 지역을 연결하는 대형 교차로, 원도심 인근 등 교통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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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쪽부터 김치국수, 대패삼겹살, 생선구이, 돼지국밥, 돈까스 |
기사식당의 공통적인 특징은 유동 인구가 많고 교통수요가 높은 지역 주변에 소재하기에, 언제라도 고객 서비스가 가능한 곳이라는 점과 손님을 태우기 전까지 차를 대고 쉬기 좋은 장소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운전기사들을 주 고객으로 하기에 기사들의 입맛에 맞는 다양한 메뉴를 저렴하고 넉넉하게 제공한다는 점 또한 매력적이다.
한때 기사식당은 음식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간이 샤워 시설과 잠시의 수면 공간을 갖춘 곳도 있었고, 잔돈 환전과 피로회복제 제공, 저렴한 비용의 세차 서비스까지 제공해 주기도 했다. 말 그대로 운전기사들을 위한 ‘운전기사 원스톱 서비스 공간’이었던 셈.
그래서 기사 식당은 기본 5가지의 갖춰야 할 덕목이 있다고 했다. 기사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음식 맛이 좋아야 하는 건 기본이고, 다양한 메뉴를 갖춰야 하며, 가격이 저렴하면서 양 또한 푸짐해야 한다. 그리고 주차 등 편의 시설 활용이 편한 곳에 있어야 한다.
대도시 부산에도 많은 기사식당 골목이 있었고 그 시기에 따라 부침을 거듭했다. 그중 대표적인 곳이 부산역 인근의 초량육거리, 전포동의 카센터 골목, 연산교차로 즉석 국숫집 골목, 사상 터미널 돼지국밥 골목, 온천장 일대 등이 유명했다.
그중 초량육거리의 초량불백 거리는 부산에서 가장 대표적인 기사식당 밀집 지역이었다. 부산역과 가깝고, 도로변을 따라 주차하기 편해 오래전부터 택시 기사들의 쉼터이자 식사 장소로 인기가 많았다. 산복도로 입구와 영주 터널 고개 위에도 고만고만한 기사식당이 들어서 있었다.
전포동 카센터 골목은 과거 전포동 카센터와 공구상가가 밀집해 있던 전포 공구길(전리단길) 부근으로 과거 차 수리와 정비를 위해 찾아오는 기사들이 많아 자연스럽게 기사식당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 주변은 시외버스, 장거리 택시, 시내버스 기사들이 빈번하게 이동하던 교통의 요충지였고, 연산교차로 또한 주요 부도심을 잇는 곳이자 지하철 환승의 중심지였다. 온천장 일대 역시 도로망이 잘 갖춰져 있고 주차가 편해 운전기사들이 많이 모이던 장소 중 하나였다.
■다양한 메뉴, 강렬한 맛이들 기사식당에서 제공하는 음식에는 여느 식당과는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우선 운전기사들의 깔깔한 입맛에 맞추려다 보니, 전체적으로 음식들이 칼칼하고 짭짤하니 맛이 짙고 강렬하다. 그리고 그때그때 입맛에 따라 골라 먹어야 하니 메뉴가 다양해야 한다. 이 때문에 여러 반찬을 갖춘 백반이나 한식 뷔페 스타일, 찌개와 고기 음식이 더불어 나오는 세트 메뉴 등이 인기가 많았다.
그중 부산 기사식당의 대표적인 음식이라면 단연 ‘돼지불백(돼지 불고기백반)’이다. 매콤달콤한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낸 돼지불백은 밥과 찌개, 쌈 채소가 정갈한 한 상에 차려져 기사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 주었고, 지금은 부산 향토음식으로 자리 잡기도 했다.
부산 서부시외버스터미널 주변에는 돼지국밥집들이 많아 운전기사들이 빠르게 한 그릇을 비우고 이동할 수 있는 돼지국밥을 주로 먹었고, 연산교차로 거제시장 방향 뒷골목에는 입맛 없는 택시 기사들을 위해 즉석에서 바로 삶아 말아 주는 즉석 국숫집들이 모여 있었다. 잔치국수, 비빔국수, 김치 국수, 열무국수, 콩국수, 회국수, 소고기 국수 등 다양한 입맛의 국수로 기사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다.
그 외에도 진하게 끓여낸 김치찌개,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동태찌개에 선짓국밥, 추어탕, 불고기전골 등에다가 대패삼겹살, 생선구이, 석쇠불고기에 이르기까지, 무한리필의 넉넉한 밥과 반찬, 찌개와 불고기 등을 한 상에 올려, 이보다 더 든든한 밥상이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근래에는 운전기사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과 여행객들에게 가성비 좋은 로컬 맛집으로도 인기가 높다. 특히 MZ세대에게는 레트로 감성의 핫플레이스로 부산의 필수 미식 코스로도 사랑받고 있기도 하다.
부산의 도시화, 산업화 과정 속 묵묵히 자기 자리를 지켜낸 운전기사들. 지금은 이런 급격한 도시화 과정이 그들과 그들이 애용했던 기사식당을 오히려 밀어내고 있다. 시대가 변하고 도시의 환경이 바뀌면서 많은 기사식당이 사라지고 있거나 다른 고객을 위한 식당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도로변 한구석에는 운전기사를 기다리는 기사식당이 존재한다. 그들의 피곤한 어깨를 다독이고, 그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 해 먹이는, 가족과 같은 기사식당. 그들이 도로 끝, 멀리 깜빡깜빡 간판 불을 밝히고 있기에 그나마 도시의 밤은 안온해지는 것이리라.